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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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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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31 ㅣ No.1233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

 

 

교회는 50일 동안 부활시기를 보냅니다. 부활시기 동안 우리는 죽음을 이긴 사랑의 승리뿐 아니라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 또한 찬양합니다. 부활 전야에 우리는 마음속 어둠 안에 있는 부활초에 불을 밝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훤히 밝히기 위해서이지요. 부활시기 동안 예수님의 부활로 불을 밝힌 새 생명은 우리 안에 딱딱하게 얼어 있는 것을 녹이기 위해 우리 몸과 영혼 깊이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부활시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체념의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신 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생명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부활절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마태오 복음사가가 잘 설명해 줍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무덤을 보러 갔다고 전합니다(마태 28,1). 여기 쓰인 그리스어 단어는 여인들이 예수에 대해 생각한 것, 그들에게 한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그들이 그분에 대해 묵상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마태 28,2). 여인들은 부활한 그분이 아니라 무덤 외부를 보았지만 부활의 순간을 직접 경험합니다. 부활 사건을 시작하는 주님의 천사가 있습니다.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립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천사가 한 일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는 모두 예수 부활의 신비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부활을 묘사합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음 이후에 부활하리라는 것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천사가 내 삶에 들어와 나를 막고 가두고, 나를 억압하고 나 자신으로 살기를 내버려 두지 않는 돌을 굴려 버린다면 내 안에서 어떤 것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부활이 시작됩니다.

 

이제 마태오 복음사가는 무덤 앞을 지키던 유다인 경비병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부활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보이는 세상의 반응을 묘사합니다. 경비병들이 떨었다는 것은 분명 부활을 보고 보인 반응입니다. 죽음의 경비병은 예수님의 무덤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우리의 참된 자기를 무덤에 묻혀 있게 하고, 우리 안의 참 인간이 깨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경비병입니다. 경비병은 두려움과 슬픔의 무덤에 그대로 있으라고 밀어 넣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부활의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돌이 굴려질 때 천사가 내려옵니다. 무덤 경비병들이 떨고 까무러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부활하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다면, 새 생명력과 자유를 얻은 우리 삶에서도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방해하는 돌에 막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일어서서 무덤 경비병이 마음대로 우리를 억압하게 두지 않습니다. 옛 삶의 방식은 두려움에 떨고 그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굴려 간 돌 위에 앉은 천사는 부활의 신비를 의미합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마태 28,5-6). 천사는 두 여인에게 무덤을 직접 보여주고 자기 말을 믿게 해 줍니다. 그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그 결과는 보았습니다. 천사는 이제 그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할 사명을 줍니다. 큰 기쁨으로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도 안고 갑니다. 그들이 본 것이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내적으로 깊이 동요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인들이 체험한 예수님의 현현을 묘사합니다. 가는 도중 예수님이 여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절하고 경배합니다. 예수님은 천사가 그들에게 했던 말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형제’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들은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실패와 비겁함은 용서받았습니다.

 

여인들은 부활하신 분을 만나 형제들에게 전할 그분의 소식을 믿었습니다. 이와 달리 경비병들은 수석 사제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렸습니다”(마태 28,11). 로마 군인들이 부활을 알리는 사람이 됩니다. 유다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을 퍼트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 이 거짓말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을 단지 상징으로 이해하여 믿게 만드는 잘못된 가르침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믿도록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부활은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분이 여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부활과 부활하신 분에 대한 믿음은 당시에 일어난 정확한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만으로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사실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분은 그것이 정말로 일어난 것인가와 같은 무익한 토론을 하느라 되돌아가지 않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에서 나타나길 바랍니다. 우리는 안락함에서 일어나야 하며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사회의 모든 경향에 반하여 반란을 감행해야 합니다. 부활이 생명과 사랑을 위해 일어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봄호(Vol. 41), 글 안셀름 그륀 신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번역 김혜진 클라라(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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