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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4차 산업 혁명 담론의 실상과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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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5 ㅣ No.1478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4차 산업 혁명 담론의 실상과 허상

 

 

말의 힘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남의 말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은 누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말로 영향을 주는 일은 개인 간에 흔히 일어난다. 이 일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영향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그런데 만일 미국 대통령이 대놓고 어느 나라를 말로 공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그러한 일을 지난해에 경험했다. 2017년 8월,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서로에게 쏟아 내는 가시 돋친 말 때문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들이 주고받은 말을 ‘폭탄’이라 불렀다. 실제 그들의 말은 말에 그치지 않고 전쟁에 이를 수 있었다.

 

 

담론과 담론의 힘

 

우리가 하는 말에는 대부분 의도가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가짜 뉴스’처럼 기본적으로 남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는 말들도 흔하다. 어떤 경우든 공적 영역에서 이런 의도를 가진 말들은 개인과 집단이 만들고 유포한다. 가벼운 파도처럼 일렁이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큰 손해를 끼치거나 심지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한 나라를 파멸에 이르게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런 의도로 만들어내는 말이 ‘담론’(discourse)이다.

 

담론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만일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이 한국의 신용 등급을 한두 등급 떨어뜨리겠다고 발표한다고 하자. 그러면 순식간에 국내 주가는 폭락한다. 외국 투자자들이 불안하다고 시장에서 돈을 빼간다. 외국 은행들이 일제히 우리나라에 대출을 해 주지 않거나 이자율을 높인다. 국내 은행 대출 이자가 올라가고, 대출을 많이 받은 기업들이 도산한다.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연체에 걸리거나 저당을 잡힌다. 이처럼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생성 유포되는 담론은 한 나라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담론의 힘은 크다. 예컨대 아직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북’이란 담론은 한국인의 막연한 안보 불안에 기댄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개인 또는 집단에 씌우는 올가미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체가 불분명한 말임에도 많은 이가 쉽게 이 말에 동조한다. 그러면 이 낙인이 찍힌 개인과 집단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 굴레에서 평생을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제4차, 그리고 혁명

 

‘제4차 산업 혁명’의 개념은 2016년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포럼 대표인 슈바프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대략 증기 기관과 기계화로 상징되는 제1차 산업 혁명, 전기 에너지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특징인 제2차 산업 혁명, 전자 공학을 바탕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주도한 제3차 산업 혁명의 연장에서 현재 새롭게 나타나는 변화를 가리키는 정도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인공 지능과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블록체인, 바이오 기술 등 요즘 화제가 되는 신기술들, 이 기술들의 융합과 사회적 파급효과를 아우르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이 개념에서 ‘제4차’와 ‘혁명’이라는 단어가 관건이다. 이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제4차’라는 단어는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벌어지는 사태를 이전에 없었던 현상으로 이해하면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혁명이라 부를 수 있으면 적어도 산업 영역에서는 인류사에서 네 번째에 해당하는 큰 변화가 된다. 이 측면을 강조하는 이들이 ‘제4차 산업 혁명론자’들이다. 반면 큰 변화는 맞지만 ‘혁명’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반대편에 선다. 두 입장이 반대되는 것만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에도 무엇인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까닭이다.

 

이 담론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어떤 이가 인공 지능이 미래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 주장하고, 유명한 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이 이에 동조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 분야의 기술을 다루는 기업의 주가는 순식간에 치솟는다. 관련 분야의 기술들을 보유한 기업들의 주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대학 연구소들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는다. 이 분야와 관련된 소식들이 언론에 계속 도배되고, 대학교 학과의 입학 성적 순위가 달라지며,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교육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처럼 경제 관련 담론들이 현대 사회에서 큰 힘을 갖기 때문에 누가 이 주장을 펴는지, 어떤 의도가 깔렸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4차 산업 혁명 담론

 

이 담론을 유포하는 이들은 다음의 네 가지를 주요 근거로 삼는다. 첫째, 기존 세 차례 산업 혁명과 달리 변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빠르다. 정보 통신의 혁명을 주도하는 디지털 기술들이 여러 영역에서 빠르게 융합되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한 예다.

 

둘째, 현재 나타나는 변화들이 기술 영역에 그치지 않고 국가 간, 기업 간, 산업간, 그리고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하는 이른바 ‘시스템 충격’(Systems Impact)수준에 가깝다.

 

셋째, 기술이 생활에 일으키는 변화들, 특히 인간과 기계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사이버 물리 시스템’의 등장도 전례가 없다.

 

마지막으로, 생산과 물류, 유통 전 단계에 걸쳐 이러한 기술 변화의 성과인 소프트웨어 측면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출현하는 것도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한마디로 현재 진행되는 변화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질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은 새로운 변화와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건 맞지만 제4차 산업 혁명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첫째, 이 시기가 혁명적이었는지는 지금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앞의 세 혁명도 후대가 평가한 결과다.

 

둘째, 생산 혁명과 산업 혁명을 구별해야 한다. 현재 담론이 말하는 변화 양상들은 거의 생산 혁명에 가깝다. 반면 산업 혁명은 사회 전반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담론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집단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현재 ‘제4차 산업 혁명’을 담론화하는 주체는 선진국과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이들은 이 담론을 선점하면 해당 분야의 플랫폼도 차지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변화는 ‘제3차 산업 혁명 후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시각

 

우리나라도 큰 도시를 벗어나면 금세 농경 사회를 만날 수 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제1차 산업 혁명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 사회 담론’이 등장한 이십 년 전에도 비슷했다. 정보 사회를 운위하던 당시에도 지구 인구의 절반은 라디오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들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유포하는 이들은 새로운 기술 혁명이 이러한 것들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일례로 전화가 전혀 없는 사회에 이동 전화 기술을 도입하면 유선 전화 단계를 거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중국이 이런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이 주장에서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유선에서 무선, 무선에서 위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기술이 있고 문화도 있다. 인간과 기술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넓은 영역의 문화가 존재한다. 이 바탕에서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도 발전한다. 따라서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같은 전화기를 사용한다 해도 이를 운용하는 체제와 기술을 가진 한국과 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중국은 큰 차이가 있다. 제4차 산업 혁명 담론에는 이런 현실을 감추는 측면이 있다.

 

 

그래도 귀는 기울여야 한다

 

이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제4차 산업 혁명 담론에 거리를 두면 곤란하다. 이는 마치 미국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만 여겨서 이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다가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경우에 비할 수 있다. 이 시대가 제3차 산업 혁명의 고도화된 단계이든 새로운 단계이든, 무엇인가 새롭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변화가 지금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산업화된 국가들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머잖아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꿔 놓으리라는 것도 명확하다. 따라서 현상을 제대로 읽고 그 안에서 좋은 점을 찾아 이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나 이 사회에서 한창 생존에 힘써야 하는 연령대에 속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 박문수 프란치스코 -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자문 위원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 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저서로 「디지털 영성」 등이 있으며, ‘정보 사회의 그리스도교: 가톨릭교회의 미래 전망’ 등의 논문을 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박문수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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