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2: 사랑은 친절합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1109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 사랑은 친절합니다

 

 

올 한 해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단순하면서도 깊은 묵상을 전해 주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가’(1코린 13,1-13)를 함께 살펴봅니다. 오늘은 사랑의 두 번째 특성으로 “사랑은 친절합니다.”라는 구절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친절하다’라는 동사는 앞서 언급한 ‘참고 기다리다’와 연결됩니다. 타인의 모습에 대하여 넉넉한 마음, 너그러운 성품을 지니는 것이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모습이라면, 친절한 사랑의 모습은 조금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특성을 드러내며 앞선 의미를 보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단어 ‘친절하다’라는 말은 그리스어 ‘크레스테우에타이’(chresteuetai)인데, 이는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 ‘크레스토스’(chrest´os)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는 다른 이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행동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준비를 갖추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향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어 상대방에게 다정한 관심을 기울이는 친절한 태도를 갖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혼동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신 사랑의 능력을 왜곡되게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다릅니다. 이는 오로지 자기만을 사랑하면서 다른 이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왜곡된 힘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생명의 길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 역시 넘치는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감사하며 자신이 그분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은 이들은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나아가 다른 이들까지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 돌보는 사람이 얼마나 편협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오로지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냐, 해가 될 것이냐.’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이들은 타인의 아픔이나 기쁨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살아갈 수 없기에 늘 외롭고 공허합니다. 또 사랑을 베풀어 본 적이 없기에 지쳐 쓰러지거나 질병 등 큰 고통을 겪게 될 때 진심 어린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도 못합니다. 친절한 사랑은 분명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친절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안에 충만한 사랑을 채워 주십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베푸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과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친절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의 태도와 마주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하루를 마감하며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으며, 나의 태도에 상대방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숙제로 써 내려갔던, 혹은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적었던 일기처럼, 하루의 모습을 살펴보고 나의 태도와 그 느낌을 적어 보는 것입니다. 남편 혹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를 주었거나 반대로 상처를 받아 심한 말로 응대했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그 느낌을 마주합니다. 직장 동료나 동네 이웃을 만났을 때 마음속에 짜증이나 화가 났던 자신의 느낌과 태도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후,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 모두 예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성령의 인도에 따라 구체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도로 마칩니다. 이러한 훈련을 교회는 ‘양심성찰’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훈련의 열매가 매일 조금씩 쌓이면 분명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굳이 머리로 이것저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몸에 밴 ‘애덕’, 즉 친절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지금 당장’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친절한 사랑이 구체적인 선행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친절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 자주 핑계를 대곤 합니다. 지금은 바빠서, 할 일이 많아서, 몸이 좋지 않아서... 하지만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사랑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사제도 레위인도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랑을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으로부터 받게 될 감사의 마음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한 마음과 태도가 몸에 배어 ‘지금 당장’ 고통 중에 있는 이를 돌본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핑계를 대며 나중에 사랑을 베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가족 중에 여러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포옹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요? 지금 당장 친절한 사랑을 함께 실천해 볼까요?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2월호, 사목국 연구실]



1,18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