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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진짜 친구가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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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28 ㅣ No.777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진짜 친구가 사라진 이유

 

 

김치 통을 붙잡고 울다

 

인터넷도 없었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화라도 한 통 하려면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국제 전화로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미국에서 공부했던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시골의 작은 대학에 교수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드디어 어렵게 공부했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온 것이다.

 

혼자서 짐을 꾸려서 이사를 가던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큰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국제 전화를 해서라도 친구들과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한국에서는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문득 김치를 먹고 싶은 욕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한 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한국 물건을 파는 상점에 갔다. 총각김치를 큰 것으로 한 통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자기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 김치 통을 붙잡고 울면서 김치 한 통을 다 먹어 치웠단다. 밥도 없이 김치만 먹었는데도 짜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미국에 홀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쌓였던,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에 대한 헛헛함이 가장 한국적인 음식인 김치에 대한 식욕으로 나타난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서 시공의 제약 없이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누리 소통망(SNS)이 확산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나와 연결된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상대방도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때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SNS 시대의 친구

 

SNS 덕분에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친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면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가 친구의 정의가 점점 변한다는 것이다. 지난날에 친구는 나와 거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함께 공부하고, 영화도 같이 보며, 술 마실 때마다 불러내거나, 싸움을 할 때도 같은 편이 되는 사람 말이다. 심지어는 화장실도 함께 가야 하는,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대상이 친구였다.

 

따라서 친구라는 자격을 얻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다.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프랑스의 격언처럼 친구가 되려면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오랜 시간에 걸친 상호 작용의 역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SNS를 통해서 수많은 친구와의 연결이 수월해졌다. 그 반면, 한 명의 친구와 공유하는 목표나 활동의 수는 지난날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영어 공부를 함께하는 친구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따로 두게 된 것이다. 덕분에 서로 친구가 되려고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크게 줄었다.

 

친구와 공유하는 목표와 활동이 적어졌기 때문에 친구와의 관계를 끊는 것도 무척이나 쉬워졌다.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의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다른 ‘영화 친구’를 찾으면 된다. 지난날의 친구는 너무 다양한 목표와 활동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나 갈등이 생기더라도 친구 관계를 단절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친구의 자격을 얻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면서 친구 관계를 단절하는 데 드는 비용도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관계의 단절이 나한테만 쉬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방도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 따라서 SNS로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서비스라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 결과 SNS로 연결된 친구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이 친구들을 친구로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할수록, SNS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SNS에 몰두하더라도 상대방은 아주 작은 것만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에 소수의 친구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요즘은 다수의 SNS 친구들에게 배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SNS를 통해 연결된 친구의 수가 많아질수록 친구 간의 관계의 강도는 약화된다. 친구는 많아졌으나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공간의 친구 관계에 몰두하다가 정작 현실의 중요한 관계를 손상시킨다는 것을 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갑자기 침묵이 흐를 때처럼 난감한 상황도 없다. 침묵이 주는 불편함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려고 새로운 화제를 던진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다시 대화하게 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전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대화의 양은 크게 줄어들었다.

 

 

스마트폰과 식사하는 사람들

 

일요일 점심시간에 혼자서 집 근처의 순두부집에 갔다. 콩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후식으로 주는 아주 진한 콩물이 별미인 곳이다. 그 집 매운 순두부의 맛이 입에 잘 맞고 부담도 없어서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날이면 가끔 들른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음량을 높여 놓았던 라디오를 켰을 때 갑자기 터져 나오는 소리처럼 손님들끼리 대화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일요일 점심이라 그런지 가게가 손님들로 꽉 찼고, 대부분 가족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순두부를 먹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혼자 오는 손님이 꽤 있는, 집 앞의 일본식 우동집으로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매운 순두부의 유혹을 참지 못해 자리에 앉아 버렸다.

 

잠시 뒤 맞은편 탁자에 중학생 딸과 함께 온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 또 가족 손님이었다. 곧 가족의 대화 소리가 울려퍼지겠다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딸의 시선은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자판을 두드리느라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각자 주문을 끝내자, 아내의 시선도 스마트폰을 향했다. 남편은 가지고 온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

 

남편이 먼저, 다음으로 아내가 식사를 끝냈다. 딸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한마디 던졌다. “우리는 다 먹었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고,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가게에 들어와서 나가기 전까지 했던 말은 음식 주문과 아버지의 “우리는 다 먹었다.”가 전부였다. 식사는 가족과 함께했지만,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스마트폰과의 식사였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닌, 스마트폰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심지어는 연인조차도 같은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있지만, 정작 식사는 각자 스마트폰과 함께하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맺는 공간이 현실 세계에서 온라인상의 공간으로 옮겨 가면서 정작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에는 너무 소홀하다. 물론 스마트폰이 주는 장점은 아주 많다. 하지만 마음이 연결된 관계를 얻으려면 가끔은 스마트폰의 연결을 끊고, 따뜻하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연결되기 때문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11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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