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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한국가톨릭다도회 다도 교실 - 차는 삶과 신앙생활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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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16 ㅣ No.89

[배움터를 찾아] 한국가톨릭다도회 다도 교실


차는 삶과 신앙생활의 동반자

 

 

“주님, 저희가 차를 접할 때 / 기도하는 마음이 되게 하소서. / 언제나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 차를 달이게 하소서. // 주님, 저희가 차를 대할 때 / 정직하고 온유하며 예의 바르게 /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 중용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주님, 저희가 차를 나눌 때 / 차의 덕을 생각하며 / 그 성품을 닮을 수 있도록 /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 당신께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 이웃에게는 향기가 되게 하소서”(김현숙의 시 ‘우리가 차를 접할 때’)

 

푸르디푸른 녹차밭과 초록색 잎만 떠올려도 마음이 금방 차분해진다. 차는 그런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괜스레 황량했던 마음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깨끗한 차 한잔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흐린 눈을 밝혀 주며 어두운 마음을 다스린다. 특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따뜻한 차 한잔이 더욱 생각난다.

 

 

행다에는 정해진 법도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21 종로오피스텔 11층 2호, 소란스러운 도심 한복판 그곳에 있는 한국가톨릭다도회(회장 임차자 가타리나)의 본부 겸 교육장을 찾았다. 깊은 산속 어느 피정의 집에 들어선 듯 고요하고 청정한 공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옥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 자줏빛 고름을 맨 회원(교육생)들이 찻그릇(다구)을 준비하는 모습이 조심스럽다. 조선조 사대부가 부인의 옷차림이 다도교실 회원들의 이른바 ‘교복’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봄 학기의 기초반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의 ‘주선생’은 김성미 가브리엘라 씨(가톨릭다도회 총무)다. 주선생은 다도 교실을 모두 마치고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20-30년 동안 차 생활을 한 이들이 맡는다.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20분쯤 이론 수업을 하고 ‘행다’(行茶)수업이 진행되었다. 행다는 차를 달여 손님을 대접하거나 마시는 행위를 말한다.

 

“다포(찻상 보)걷고 차통 내리고 차 우리개 뚜껑 열고 시작합시다.” 김성미 씨가 가만히 속삭이듯 말하자 회원들은 절도 있는 품새로 찻잔을 데우고 차를 우린다. 찻상 보를 걷어 접는 일부터 차를 우리고 따르는 과정, 찻그릇 마무리까지 행다에는 정해진 법도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좌를 하고 심호흡한 뒤 목례를 한다. 그런 다음 찻상 보를 걷는데 살며시 들면서 앞으로 당겨 오른쪽 무릎 옆에서 8등분으로 접어 가지런히 오른쪽 물 버리개 뒤에 내려놓는다.

 

주전자의 물을 물 식힘 그릇에, 그 물을 차 우리개에 따른다. 그리고 찻잔에 3분의 2 정도 따라 모든 다기를 따뜻하고 깨끗하게 한다. 그동안 차 단지의 차를 차 우리개에 적당히 넣는다.

 

차를 따르는 것도 순서가 있는데 맛있게 잘 우러난 차를 세 번에 걸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차의 농도가 고루 어우러진다.

 

이제 접대를 할 차례다. 찻잔을 잔 받침 위에 올려놓고 앞에 잠시 머무른 뒤 다반 왼편에 내려놓으며 드린다.

 

차를 받은 이는 목례로 감사의 뜻을 표한 다음 두 손으로 찻잔을 들어 세 번에 나누어 마신다.

 

“첫 잔은 색을 보면서, 두 번째는 향기를 맡으면서, 세 번째는 맛을 느끼면서 마십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우리나라는 색과 향과 맛[味]입니다. 그리고 나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입이 잔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잔이 입으로 가야 합니다.”

 

다 마신 찻잔을 거두어 제자리에 정리하여 찻상 보를 덮는 것으로 행다는 마무리한다.

 

“귀한 시간 고마웠습니다.”

 

 

이론과 실기를 수반한 다도 강좌

 

차를 우리고 다구를 다루는 행위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있다더니 행다 수업 내내 침묵이 흘렀다. 오히려 주전자의 물을 따를 때 “쫄쫄쫄 물소리를 내며 따르라.”는 말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가운데 물 흐르는 소리, 곧 자연이 느껴졌다. 이것이 다도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일까? 한 모금 차를 머금은 채 맛을 음미하면서 다담(茶談)을 나누는 행다 실습 정경은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다도 교실은 이론에 실기를 수반한 교육을 하며, 기초 과정 1학기(차 생활과 예절)와 중급 과정 2학기(가루차), 고급 과정 4학기(접빈 다례) 등 7학기 동안 진행된다. 봄(3월)과 가을(9월)에 시작하는 학기는 총 13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모두 3년 6개월의 과정을 마치면 1년의 숙련 과정과 1년 6개월의 봉사 기간을 거쳐 졸업할 수 있다. 숙련 과정이란 몸과 손에 익게 하는 과정이며, 봉사 기간에는 다양한 공간에서 차 봉사를 하며 다도 교실의 ‘부선생’으로 참여한다. 초·중급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이, 봉사 기간까지 모든 과정을 마치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명의의 사범증, 곧 차 생활 지도자 자격증이 주어진다. 설립한 지 26년이 지난 지금 가톨릭다도회의 회원은 550여명이다.

 

기초반에서는 잎차를 우리고 중급반에선 가루차(말차)를 다룬다. 고급반에서는 잎차와 가루차를 함께 다루면서 손님을 불러 차를 대접하는 ‘접빈 다례’를 배운다. 강좌마다 주모경과 복음 말씀으로 시작해 차와 관련된 시를 읽고 가톨릭다도회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한다. 이론 수업과 행다 수업이 끝나면 ‘찻자리’(다담) 시간을 갖고, 영광송으로 마무리한다.

 

좀 더 살펴보자면 기초반 수업은 인사 예절과 우리 옷 바르게 입기, 차의 성분과 효능, 차의 역사, 양갱과 송화 · 콩 다식 만들기 등으로 꾸려진다. 교육 내내 행다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급반은 가루차를 우리는데 기초반과 달리 1인용 다완(사발)을 쓴다. 이때도 행다를 하고 약식이나 호두 · 잣으로 강정 만들기를 한다. 가루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다식을 먹게 되는데 곶감말이와 구운 약과, 흑임자와 서리태를 이용한 다식 등이 놓인다. 고급 과정은 심화 과정으로 잎차와 가루차는 물론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을 배우게 된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행다 발표회를 하고 신년 다례회 때는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형식의 발표회도 가진다.

 

 

가톨릭다도회의 정신은 봉사

 

한국가톨릭다도회는 1991년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천주교 차 생활 문화원’으로 시작해 199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의 공인단체가 되었다. “복음 정신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차 문화와 예절을 연구, 보전, 발전시킴으로써 복음의 토착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그동안 전통차 문화교육과 보급을 통해 더욱 충실한 신앙생활과 봉사 활동을 해 왔다.

 

서울 도봉동본당 복사단을 대상으로 한 예절 특강을 시작으로 성인 예절 교육과 다도 교육을 진행했고, 소공동체에서 필요한 차 예절 발표와 다례 발표회 등의 활동을 했다. 또한 절두산 성지에서 차를 나누는 ‘들차회’를 열고, 여러 순교 성지에서 ‘헌다’(獻茶)예절을 거행하고 차 봉사를 한다.

 

오래전부터 서울과 경기 지역의 어린이집에서 다도 예절을 가르치는 봉사도 하고 있으며, 중고생이나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과 다도 예절’ 교육도 하고 있다. 성지나 복지 병원 등에서 차 봉사를 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국제차문화대전에도 참여해 다도 체험을 진행하며 얻은 수익금을 서울대교구에 기부하기도 하는 등 봉사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가 다성이라 부르는 초의선사는 ‘차와 선은 하나’라고 했어요. 우리는 그 정신을 닮으려고 노력해요. 차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것이죠. 차는 옆 사람에게 먼저 주고 난 다음에 내가 마시기에 베푸는 것입니다.” 김성미 씨는 가톨릭다도회의 본정신은 봉사라고 강조했다.

 

임차자 회장도 “회원들이 신학교나 노인 병원, 본당 행사 때 봉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차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를 세 번 나눠 마시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돼요. 차는 우리 삶과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줘요. 봉사도 할 수 있고요. 신부님들의 사목 활동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어요.”

 

따뜻한 온기에 자신의 향기를 우려내는 그 과정에 나를 내려놓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삼가는 마음 한 곳에 어느새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이다.

 

 

다도를 배우면 삶이 풍요로워져

 

다도를 배운 이들은 차의 깊은 맛을 새롭게 느끼는 것은 물론, 생활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전한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어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전인숙 씨). “다도를 배우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삶이 다양하고 풍요로워졌다고 할까요. 탄산 음료에 익숙한 딸이 이제는 차를 원해요. 차를 통해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고요”(박은경 파비올라 씨).

 

“차의 역사와 차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차에 깊이가 있다는 걸 느껴요. 오랫동안 차 문화를 이어 가고 싶어요”(권지원 클라라 씨). “급한 성격을 고치고 싶어 시작했는데 성격도 차분해지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즐거워요”(이순 스테파니아 씨).

 

경기도 오산에서 다도를 배우러 온다는 이순자 올리바 씨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주님의 은총 안에서 차 마시는 이 자리가 정말 기뻐요.”라고 했다. 다식과 양갱을 집에서 직접 만드니 더 알뜰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회원도 있다.

 

“다도는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라고 생각해요. 고요함 속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분주함 속에서 고요함을 찾아낼 수 있는 게 다도입니다. 자연의 소리, 깊은 계곡 옹달샘에서 흐르는 소리가 이 좁은 다반(찻상)안에서 행다를 할 때 느껴지거든요.” 김성미 씨의 말 속에서 가톨릭다도회 회원들의 다도에 대한 깊은 풍미와 향기가 느껴진다.

 

은은한 차를 즐길 수 없다면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움직이면 도심 한가운데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베풀고, 봉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차는 그런 것이다.

 

이 가을 다도 교실에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의 기도와 묵상 생활과 잘 어울리는 다도, 차 생활이 널리 퍼지고 봉사를 실천하는 이가 많아져 그리스도의 향기가 차향처럼 은은하게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문의 : ☎ 010-4564-5673(총무) 한국가톨릭다도회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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