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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직면이라는 뉘우침에 대하여 -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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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19 ㅣ No.1024

[영화 속 신앙 찾기] ‘직면’이라는 뉘우침에 대하여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 정확히는,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죽는 것을 뻔히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패턴’을 수없이 겪어 내야 한다. 죽은 딸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악몽’은 끝나는 듯 다시 이어져 두 시간 전의 비행기 안으로 되돌아온다.

 

시작은 비행기 좌석에서 ‘꿈’을 깨는 것으로, 끝은 딸의 죽는 순간을 무기력하게 목격하는 것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이 시간은 재깍재깍 정해진 ‘과녁’을 향해서만 흘러가는 듯하고, 이 비극 속에 ‘나’만 자꾸 도로 끌려들어 가고 끌려 나온다. 시간이 만든 감옥이자 지옥이다.

 

처음에 준영(김명민 분)은 그렇게 ‘나’의 시간만 도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같은 시간대를 돌고 있는 남자가 또 있었다. 민철(변요한 분)은 아내 미경(신혜선 분)이 택시 안에서 죽은 모습을 되풀이해서 봐야 하는 ‘도는 하루’에 갇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처럼 보이는 ‘택시’를 모는 또 다른 남자(유재명 분)가 있다. 그 남자야말로 이 비극의 진짜 열쇠다.

 

조선호 감독의 영화 ‘하루’는 이 세 남자의 끊어 낼 수 없는 업보를 들춰내며 반복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려 한다.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날마다 눈앞에서 죽는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발버둥 치는 두 남자, 그리고 ‘예정된’ 결말을 향해서만 돌진하듯 무섭게 치닫는 두 시간. 딸과 아내를 살리고 반복되는 ‘하루’를 끝내려면, 무엇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초지종부터 알아내야 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 ‘추리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같은 사건으로 엮인 세 남자지만, 실상 영화가 취한 ‘타임 루프’라는 형식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타임 루프(time loop)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공상 과학류(SF)의 하위 장르로,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같은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특정 시간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 여행’ 형식과 달리, 반복이 이야기의 뼈대이자 축이 된다. 이 반복의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요즘은 이런 형식의 영화가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주인공 한 사람만 특정 시간을 반복하곤 한다. 영화 ‘하루’는 생각과 행동에서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는 반복 경험을 하게 되는 구조다.

 

뭔가를 바꿔야만 한다. 뭐라도 바꾸지 않으면, 고통의 순간으로 꼼짝없이 ‘되돌려지는’ 이 끔찍한 반복조차 이대로 느닷없이 허망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바꿔서 적용해 보고, 다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조목조목, 차근차근. 아무리 무한히 반복될지라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어쩌면 ‘뭔가’가 아닌 ‘뭐든’ 바꿔야만 그나마 반복할 기회라도 얻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비명과 자학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어도, 그들은 어쩌면 같은 마음으로 한 가지 기도를 하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반복일지라도, 이대로 끝나는 일만은 없기를! 부디 끝내고 싶은 순간에 이 ‘반복’이 끝맺어지기를!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끝을 봐야 했다.

 

시작은 끌려 들어오다시피 되었지만, 준영과 민철은 어느새 온 힘을 다해 이 반복 구조에 끈질기게 매달려 있게 된다.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이 비밀을 꼭 풀어야 했다.

 

하나뿐인 딸을 구하려는 준영과 아내를 살리려는 민철은, 모든 노력을 다해본다.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빠른 길을 찾아 차를 내달리고, 사고 현장으로 온 힘을 다해 질주하며 사고 장소를 바꿔 보는 등 온갖 시도를 해 봐도 ‘하루’는 바뀌지 않는다.

 

그때, 그들의 딸과 아내를 죽였다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고 둘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세 남자의 처지는 다르지만, 같은 마음이다. 한여름의 아스팔트보다 더 뜨겁게 끓어오르는 복수심과 증오로 이글거린다. 문제는 주인공 세 남자가 끝내고자 하는 종결점이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는 점이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입장 차다. 그들은 존재를 걸고 사투를 벌인다.

 

 

무엇이 시간을 ‘돌게’ 할까

 

타임 루프 소재는, 사실상 인간의 깊은 회한에서 비롯된 장르라는 느낌마저 든다. 얼마나 후회되고 아프면 이런 형식을 발명해 냈겠는가. 얼마나 돌이키고 싶으면, 동일 시간 동일 조건을 수없이 반복하다 결국은 뭔가를 바로잡는 이야기를 아예 장르로 만들어 냈을까!

 

겉으로는 그들이 ‘시간’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준영과 민철이 갇힌 것은 시간이 아니라 ‘죄’다. 과거에 저지른 죄의 흔적과 그림자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준영과 딸 은정(조은형 분)은 본디 애틋한 사이였다. 그토록 사이좋던 딸과의 관계는 오히려 (억지스러운 방식으로) 딸의 물리적 목숨을 구해 놓은 뒤, 단절되다시피 틀어진다. 그는 심지어 엄마도 없는 어린 딸을 돌보지 않고 멀리 도망쳐버렸다. 

 

그런데 도피로 택한 해외 의료 봉사가 역설적이게도 그를 ‘전쟁의 성자’로 칭송받게 하면서, 불특정 다수 환자의 생명을 구한 덕에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인생의 얄궂음이랄까. 이 성스러운 칭호가 준영에겐 얼마나 괴로운 족쇄가 되었을지 관객은 말미에야 짐작하게 된다.

 

만일 심장 수술에 실패해 더는 아빠 얼굴을 못 볼지라도 지금껏 준 사랑에 감사한다던 3년 전의 딸은, 그가 무리수까지 둬 가며 살려 낸 딸은, 되레 건강해진 뒤 남보다 못하게 멀어지고 말았다. 튼튼한 심장으로 사는 대신 튼튼한 마음은 아닌 것이다. 어긋나다 못해 곧 끊어질 것 같은 부녀 관계다.

 

무엇이 이렇게 황폐하게 만든 것일까? 영화가 결말을 향해 치달아 가는 동안, 관객들은 이 ‘사막화’의 원인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준영은 어쩌면 한시도 그때 그 순간, 그 결정을 감행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잊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의사라는 직업만 아니었어도, 잠깐씩은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의사의 사명을 강조하는 그의 범세계적이고 인도주의적 ‘오지랖’도 이처럼 자신을 몰아세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강박적 태도일지 모른다.

 

3년 전의 그도 과연 이런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의사라는 직업 윤리에 극단적으로 몰두하려고 했던 그의 3년은, 실상 비윤리적 판단을 내렸던 3년 전의 잘못에 대한 마음의 빚이다. 구급차 대원인 민철의 죄 또한, 어쩌면 법적인 것이 아닌 양심에 대한 문제이다. 이 양심의 소리에 직면해야 했을 때, 그 둘은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안타까이 스러진 한 소년과 그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다.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두 남자는 직업상 남을 구하는 일에 대한 전문가였다.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순간마다 깨달으며 일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생명’이 아닌 다른 이유를 택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버리는 길을 갔다. 그리고 그 이후 마음이 닫힌 사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아빠의 무심함을 원망하다 차츰 지쳐 간다. 아빠 입장에서는 자신이 손에 묻힌 피를 딸이 알게 되느니,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게 오히려 ‘보호’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죄의식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느닷없이 인생의 방향과 궤도를 덮치고 ‘탈주’하게 만드는 듯하다.

 

민철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아내에게 준 가장 큰 상처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아내에 대해 어쩌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벽은 그렇게 꼬일 대로 꼬인 미로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준영과 민철은 마침내 도달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든 애써 잊고자 했던 한 소년의 이름, 이하루. 그 이름을 기억해 내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었다. 그 애가 그토록 살리고자 염원했던 아버지의 비통함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 주기 전에는, 이 참사는 끝내려야 끝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을 향한 돌진을, 영화 ‘하루’는 간결하고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인다.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순간은 깨달음을 향한 걸음이다. 돌아본다는 일은 결국 ‘돌봄’으로 이어지고, 관계를 이어 가는 일로 확장된다. 서로를 살려 내는 그 이어짐의 끈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뭉클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고 처벌도 달게 받게 만드는 힘이었다.

 

* 김혜원 로사 - 문화 평론가. 극예술을 통한 세상 읽기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8월호, 김혜원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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