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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의 말기와 연명의료결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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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0 ㅣ No.1392

[특별기고] 생의 말기와 연명의료결정에 관하여


호스피스 · 완화돌봄… 존엄한 삶을 위한 권리

 

 

- 호스피스·완화돌봄은 기본적 간호와 함께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을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가톨릭교회는 말기 환자들이 호스피스·완화돌봄을 받기를 권장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법률의 제정 과정에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정부와 사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톨릭 신자로서 생각하고 알아둘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많은 분들이 나중에 받게 될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에 대하여 미리 결정하고 의향을 표시하는 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이 법률에서 그런 의향을 표시하는 문서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가 있습니다. 이 두 문서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작성합니다. 각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가서, 문서 작성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작성합니다. 작성한 문서는 등록기관에서 전산으로 입력하여, 나중에 어느 의료기관에서든 조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가 병원에서 담당의사와 면담하며, 담당의사가 작성합니다. 이때 담당의사는 질병 상태와 치료법 등에 관하여 환자에게 설명하고, 환자는 자신의 의향을 담당의사에게 이야기합니다. 작성한 문서는 병원에 전산으로 입력됩니다.

이 두 문서 중 가톨릭교회가 권장하는 문서는 ‘연명의료계획서’입니다.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둘 수 있으나, 질병의 말기에 담당의사와 면담하여 다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것을 권고합니다.

 

 

품위 있는 죽음? 결국 ‘삶’의 문제

또 많은 분들이 염려하는 것이 바로 품위 있는 죽음입니다. 여기서 품위 있게,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혹시 그것은 죽는 순간까지 ‘존엄하게 산다’는 뜻이 아닐까요?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이 바로 존엄한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국 ‘삶’의 문제입니다.

 

 

죽을 권리?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

세상에서는 죽을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품위 있는 죽음이 ‘삶’의 문제라면, 이것은 ‘생명권’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살려두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죽음을 수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권’이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입니다. 살아 있는 환자를 죽이지 않고, 불필요하고 무익한 의료행위를 고집하지도 않으며, 환자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말합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환자 - 의사의 대화와 협력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으려면, 무엇이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행위인지를 판별해야 합니다. 이때 담당의사의 판단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명의료결정은 환자나 의사의 일방적인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환자와 의사가 만나 ‘대화’하고, 적절한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연명의료계획서’를 권장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문서를 작성하는 동안 담당의사와 환자의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돌봄은 부담? 인간됨의 기본 모습

생의 초기에 아기가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하듯이, 생의 말기에도 우리는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부모가 아기를 돌보는 것이 마땅하고 인간적인 모습이듯이, 말기환자와 임종자를 적절하게 돌봐드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마땅하고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현재 많은 분들이 돌봄을 필요로 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될 것을 염려하십니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적절한 사회적 돌봄이 실현되는 여건이 마련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호스피스ㆍ완화돌봄? 역시 삶의 이야기

이렇게 적절한 돌봄의 여건을 마련하는 좋은 예가 호스피스ㆍ완화돌봄입니다. 호스피스ㆍ완화돌봄은 말기환자가 통증완화, 증상조절, 영양-수분 공급, 위생관리 등의 기본적 간호를 받고,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실 모든 환자는 전인적인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말기환자일수록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호스피스ㆍ완화돌봄은 치료의 가망이 없을 때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닌, 유한한 삶의 마지막을 잘 살기 위해 가는 곳입니다. 즉 호스피스ㆍ완화돌봄 역시 삶의 이야기입니다.

 

 

고통은 무의미? 구원에 이르는 고통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고, 고통을 나누는 것은 마땅하고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고통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우리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고통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말기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나누도록 노력하면서도, 그 고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고통의 순간에 십자가의 예수님과 일치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7일,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주교회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관한 지침과 해설’ 발표

 

숨넘어가는데 녹음… ‘연명의료결정법’ 우려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을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졸속 시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올해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관한 지침과 해설’을 승인하고 최근 이를 발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그대로 시행될 경우, 생명 경시의 우려가 있다고 표명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때 가톨릭 교회 가르침에 따라 고려해야 할 점을 다룬 지침과 해설을 담았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7일 생명주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오래전부터 이 법률이 생명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에 부합하고 생명 존중 정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현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가톨릭교회의 별도 양식(병사성사 요청 여부 등)을 배려하기 어려운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톨릭교회는 19세 이상 성인이 언제든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보다는 아플 때 병원에서 의사와 함께 상의해 의사가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더 활용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충분한 지식과 정보 없이 결정이 이뤄질 경우 오히려 환자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와 대한암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 등 13개 단체는 4월 25일 공동 성명을 내고 “말기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이 편하게 돌아가시는 것을 돕기 위해 제정된 법이 입법 취지와 반대로 무의미한 연명의료 조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연명의료 결정법 세부 내용을 규정한 시행령ㆍ시행규칙 제정안이 진료 현장에 적용하기에 문제점이 많다”면서 “혼란을 막기 위해 시범 사업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처벌 조항은 유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률과 하위 법령에서 △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사 확인을 위해 녹음 진술을 받도록 하는 내용 △ 담당의사 자격에서 전공의를 배제한 점 △ 가족이 없는 경우 호스피스 이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는 점 △ 과도한 법정 서식과 처벌 규정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 기관인 포천모현센터의원 센터장 표양복(마리아막달레나, 마리아의작은자매회) 수녀는 인터넷 포털에서 펼친 ‘서명운동’을 통해, 연명의료결정법이 현실에 맞게 보완돼 올바른 호스피스 법률로 탄생하는 데 지지와 동의를 요청했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2016년 2월 제정됐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 관련법은 오는 8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 관련법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세부 내용을 규정한 시행령ㆍ시행규칙 제정안을 2017년 3월 23일 입법 예고했지만, 관련 기관 단체들은 법률과 하위법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률 시행 전 개정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7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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