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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청탁금지법, 의식혁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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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1364

[경향 돋보기 -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돌아본다] 청탁금지법, 의식혁명의 시작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또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지났다.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맨 처음 이 법을 제안한 것은 2011년이었다. 입법 필요성이 제기된 때부터 법 시행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까지 거치며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데 아직도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부패가 그만큼 복잡하고 뿌리가 깊다는 뜻이다. 한국이 부패 사회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시인하는 사실이다. 이제 외국 언론까지 한국의 부패 문제를 이야기한다.

 

박근혜 · 최순실 사건이 몇 달째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 부패의 제조창인 박근혜 대통령이 거짓말과 꼼수로 요리조리 위기를 빠져나가면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탄핵 정국이 우리 눈앞을 가리고 있는 것은 한국의 부패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부패 문제를 연구하는 독일 베를린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ancy International)’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168개국의 2015년도 청렴도 순위에서 한국은 37위를 기록하고 있다. 청렴도는 100점 만점에 56점이니 낙제점이다. 청렴도가 낮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부패지수(CPI)가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부패는 정상 사회가 유지되는 운영법칙을 수시로 흔들어놓는다. 도덕률은 땅에 떨어지고, 자기 이익만을 노리며 이웃과 사회를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기주의가 정의를 비웃는 사회다. 타락이다.

 

 

청탁금지법이 생긴 이유

 

청탁금지법은 한국을 도덕적인 나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면 우리도 뿌리 깊은 부패를 뽑아내고 대가성 유무에 상관없이 청탁은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부패의 첫 단계인 청탁문화를 불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결과제라고 외친다. 대가성은 기득권층이 법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데 대가성을 남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청탁금지법이 부정하고 있는 법률 ‘갑질’인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이 청탁금지법을 환영하는 이유다. 2015년 3월 3일 국회가 재석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26명, 반대 4명, 기권 17명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청탁금지법을 가결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청탁금지법이 생기게 된 이유는 넥슨지티(주)의 김정주 회장에게서 주식을 제공받아 130억 원의 대박을 누린 혐의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된 진경준 검사장에게 무죄를 판결한 재판에서 얻은 교훈과 정의감 때문이다.

 

검찰은 진 검사장이 김 회장으로부터 받은 뇌물이나 다름없는 130억 원 상당의 주식에 대해 뇌물 대가성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유도했다. 진 검사장을 고발한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기자회견에서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은 넥슨지티 김 회장의 적극적인 뇌물 공여와 진 검사장의 노골적인 뇌물 수뢰의 결과”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봉급쟁이인 진 검사장이 4억 원이라는 돈을 환가성이 보장되지 않은 주식에 투자한 것은 도박이며, 김 회장으로부터 넥슨 주식 매입이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비리 혐의로 구속된 진 검사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핵심 혐의인 ‘넥슨의 공짜주식’은 직무 관련성(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검찰과 재판관의 대가성 부재 판결은 앞으로 항소심에서도 공방이 예상될 거라고 언론은 보도하지만, 역설적으로 청탁금지법을 만든 구실을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진경준 검사장 사건 외에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도 인용된 대가성의 남용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대가성 남용에 ‘사형’을 선고하는 청탁금지법을 제안했던 것이다.

 

 

청탁금지법의 후폭풍

 

청탁금지법은 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입법으로 찬사를 받는 법이지만 법률로 가결될 때까지 여러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언론계와 사학 교직원, 대한변호사협회 등으로부터 위헌 소원을 당했다. 청탁금지법이 사회적 강자인 언론계와 사립학교 교직원, 대한변호사협회 등 막강한 조직의 이익을 침해하는 법이라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제안 단계부터 힘 있는 조직으로부터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오해와 도전을 받은 것이다.

 

공직자의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법이라더니 왜 언론과 사학 교직원들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느냐는 비판도 받았다. 그래서 네 개의 위헌소추를 당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소원을 제기한 이익집단의 주장이 언론의 자유나 교육의 목적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최후에 제기된 후폭풍은 부정청탁을 금지한 내용이 언론인과 교육자들의 대인관계에 제약을 가하는 소비 억제 영향으로 음식업과 농축수산업, 유통업, 숙박업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특히 화훼농과 음식업종은 피해가 컸다.

 

이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불찰이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될 때까지 18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후폭풍의 예측과 대책이 가능했다. 그런데 관계부처가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는 데 등한시하였다.

 

다행히 국민의 다수는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적극 찬성하고 그 성공을 위해 협력을 다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국민의 가슴에 불붙인 부정청탁 금지운동이 성과를 거두어 우리 사회에 도덕 재건운동을 일으키는 계기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만약 청탁금지법이 몇 년만 일찍 제정되었어도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최순실의 대통령 인사개입은 이미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다.

 

 

청탁금지법의 적응

 

한국갤럽이 청탁금지법 시행 두 달이 지나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71%는 청탁금지법을 지지한다. 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청탁금지법의 후폭풍을 빨리 잠재우고 이 땅에서 부정청탁을 불식하는 운동이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청탁금지법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저항과 불안이 없지 않았다. ‘공직자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률 명칭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의 적용 대상이 공직자인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그 적용 대상에 추가되어 법안에 대한 심의가 지연되기도 했다.

 

맨 먼저 문제를 제기한 곳이 언론계였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인데, 권력이 행동 결과에 재제를 가할 수 있는 법률에 언론을 포함시킨 결과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항의했다. 언론은 그 기능상 이해관계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취재를 위한 장기적 목적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잡다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식사나 선물, 애경사에 들어가는 3만 원(식사), 5만 원(선물), 10만 원(애경사)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본인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접대하고 접촉해야 하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또 기자들의 취재를 돕는 기관들과의 관계도 간단치가 않다.

 

언론인들은 바쁘고 복잡한 기자 활동을 간섭받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방임해 주기를 바란다. 언론기업 사주와 피고용인인 언론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언론인 활동은 서구의 언론인과 비교해서 좀 색다른 면이 있다. 이런 문제는 경영주와 기자, 프로듀서 노조가 만나 토의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꼭 변호사협회나 기자협회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언론 자유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론은 본디 민주주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주권자인 국민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기타 선출직 대표들 사이에서 서로 정보와 의견을 원활히 교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은 공공의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특권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도 잊지 말아야 할 대원칙이다. 사립학교 교직원을 공직자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교육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크게 반발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언론이나 교육이나 민주사회와 시민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한국에서 사립학교 교직원 문제는 학부모와 교사 관계에서 빚어지는 촌지 문제가 서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윤리문제가 될 수 있다. 박근혜 · 최순실 사건을 계기로 외국 언론에서까지 한국사회의 부패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된 현실을 감안하면 청탁금지법의 제정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파생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은 이제 정착 단계에 들어선 인상이다.

 

 

청탁금지법의 긍정적 효과

 

이제 남은 문제는 청탁금지법의 제정 목적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국민의 71%가 지지하고 성공을 비는 법이니만큼 부패의 시작인 청탁을 금지하는 일에 국민 모두가 잘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청탁금지법은 그동안 크고 작은 논란에도 모든 국민이 부정청탁으로 처벌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쓰는 예민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법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학부모들은 상담하려고 담임선생님에게 가는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학교에 상담하러 갈 때면 무엇을 사들고 가야 할까? 고민이었고 부담이 되었는데 이제 음료수 한 병도 사갈 수 없게 되니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 좋다.” 청탁금지법은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국민의 일상생활에 새바람이 불 것 갔다고 보도했다. 바로 청탁금지법이 발효된 지난해 9월 28일부터 국민 ‘5천만의 일상이 바뀐다.’며 국민의 의식이 바뀔 것 같다고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준된다면 한국의 정치와 함께 국민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의식혁명을 보게 될 것 같다.

 

* 장행훈 바오로 - 언론광장 공동대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이사 편집국장과 김대중평화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장행훈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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