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1: 3세기 (2)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2 ㅣ No.89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1) 3세기 ②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 방향을 제시하다

 

 

-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로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한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우의적 의미를 추구하던 성경 해석 방법을 어떻게 영성 생활 발전에 적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탁월한 성경 주석가였던 오리게네스는 성경 본문을 문자적 의미, 윤리적 의미, 영적 의미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특히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이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하느님과 일치하는 체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제시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신비 사상가였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

 

사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수덕 생활의 측면도 있지만,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을 이끌어 주셔야 하는 신비 생활의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 속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신비체험’(mysticism)을 하게 됩니다. 신비체험은 사도 베드로(사도 10,9-16 참조)와 사도 바오로(2코린 12,1-4 참조)의 경험에서처럼 ‘무아경’ 속에서 ‘환시’나 ‘말씀’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비체험의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안에 수많은 신비 체험가들이 있었던 만큼 그들의 신비체험 과정을 설명하려던 수많은 신비 사상가들도 있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기본적으로 플라톤 사상과 중기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영혼 선재(先在) 사상’과 ‘삼분법’의 색채를 띠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 영혼이 이미 신의 영역에 존재했었기 때문에 인간 영혼과 신의 본질이 같은 ‘동족’(同族) 관계를 이룬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본질이 같은 두 물질은 서로 섞이기도 쉬울 뿐 아니라 서로를 이끄는 성질도 있기 때문에, 인간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리게네스는 물질적 차원에서 사는 인간 영혼이 초월적 차원에 존재하는 신을 향해 상승의 여정을 걸어가야만 하느님과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

 

먼저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강론」(Homiliae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구약성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배경 삼아서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상승의 여정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했습니다. 즉,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첫 번째 노래를(탈출 15,1), 이스라엘 백성들은 브에르에 있는 제후들이 판 우물에서 두 번째 노래를(민수 21,17), 모세는 요르단 강둑에서 세 번째 노래를(신명 32,1), 판관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한 후에 네 번째 노래를(판관 5,2),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과 사울의 손아귀를 벗어난 후에 다섯 번째 노래를(2사무 22,2), 이사야 예언자는 여섯 번째 포도밭 노래를(이사 5,1),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영혼은 더 높게 올라가 신랑과 함께 일곱 번째 노래인 「아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영적 여정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주해」(Commen tarium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세상 학문 분야와 솔로몬 왕의 작품으로 여기는 구약성경을 짝지어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를 거치는 상승의 여정을 설명했습니다. 즉, 덕행의 습득을 다루는 ‘윤리학’과 창조질서에 순응하며 세상 본성을 다루는 ‘자연학’ 및 천상적인 것을 다루는 ‘형이상학’은 삶의 규범을 다루는 「잠언」과 헛되거나 유익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다루는 「코헬렛」 및 천상을 향한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다루는 「아가」와 각각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 생활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은 「잠언」에서 계명을 배우고, 「코헬렛」에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며, 「아가」에서 하느님 사랑에 빠지는 상승의 여정을 걷습니다.

 

 

사랑-신비사상

 

이렇게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과정을 다루는 신비사상을 펼쳤습니다. 즉, 「아가」에 등장하는 ‘신랑’을 그리스도로, ‘신부’를 인간 영혼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향하는 상승의 여정을 신부가 신랑을 찾는 과정으로 비유했습니다. 이후 「아가」를 바라보는 오리게네스의 시각에 영향을 받은 많은 영성가들과 영성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비체험과 「아가」를 연관 지어 묵상하고 주석하면서 ‘영적 혼인’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게다가 「아가」에 나타난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주제를 강조한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사랑-신비사상’ 혹은 ‘신부-신비사상’이라고 일컬어지면서 훗날 ‘혼인-신비사상’ 계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적 신비사상

 

한편 오리게네스는 플라톤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비사상을 전개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4권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바위 굴 안에 넣고 뒷모습만 볼 수 있게 하신 것처럼(탈출 33,22-23), 그리스도께서 바위틈을 통해 하느님을 알려 주셔서(아가 2,14 참조)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2권에서 다섯 개의 영적 감각 기관에 감지되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아가 1,12 참조) 즉, 그리스도는 영적 청각에 들리는 ‘말씀’이시고, 영적 미각으로 맛보는 ‘생명의 빵’이시며, 영적 후각이 냄새 맡는 ‘말씀의 향기’이시고, 영적 촉각으로 느끼는 육신을 취하신 ‘생명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 기관으로 느낀 각기 다른 대상은 결국 동일한 하느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서 퍼지는 거룩한 은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을 지닌 영혼만이 완전히 정화되어 성화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본질과 피조물인 인간 영혼의 본질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훗날의 시각에서 보면 오류를 지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수동적인 측면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고무되어 상승의 여정을 걷는 능동적이며 실천적인 측면을 균형 있게 언급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하는 신비 사상가로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2월 12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836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