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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 (1) 건강함과 영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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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3 ㅣ No.496

[레지오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斷想) (1) 건강함과 영성생활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흔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는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건강을 얻는다고 모든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은 건강의 상실을 전제로 할 때는 의미있는 말이지만 ‘삶의 건강’을 전제로 할 때는 꼭 그렇지 않다. 건강이라는 것이 꼭 ‘육신의 건강’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해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졌느냐를 따져보면 썩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 사회가 건강 위에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지나 않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난함이 빚어낸 유치한 사회, 반성과 참회, 자기희생이나 양보라는 코드는 아예 유전자에 없는 듯한 모습, 그러한 생각들을 거부하는 어른이 많은 사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순수한 영혼을 향한 지향을 일상에서 잊지 않고 사는 건강한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 만 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몸을 갖추려면 필연적으로 튼튼한 뼈와 적당한 근육과 혈액순환이 좋아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잘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한다. 이처럼 몸의 삼대요소가 튼튼해야만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가 있듯이, 신앙에도 삼대요소를 구비해야 한다. 그 삼대요소로 해당되는 것이 자기 믿음에 대한 이해와 봉사, 그리고 기도이다.

 

첫째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이해는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하느님 말씀에 맛 들여야 한다.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예로니모)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 또한 바로 이 계시된 진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 기반이 튼튼하면 할수록 흔들리지 않으며,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과 같은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 신앙의 뿌리가 되는 것들에 무지해서는 잘못된 신심이나 사이비에 현혹되기 쉽기 때문에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다.

 


신앙의 삼대요소, 자기 믿음에 대한 이해와 봉사, 그리고 기도

 

그러나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것은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고 교리에 대해 해박하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행동에 옮겨지고 삶에 운용되어야 할 근육이 필요하다. 건강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근육과 같은 두 번째 요소는 이처럼 봉사를 통해 얻게 된다. 근육은 쓰면 쓸수록 단단해지듯이 봉사란 것도 안 해 본 사람들이나 엄살을 부리지, 하면 할수록 더 큰 일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봉사는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타인을 위해 내어주는 희생과 배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봉사는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내면에 부드러움과 겸손과 온유로 삶에 윤기가 흐르고 부드러운 살결처럼 온화함을 지녀야 한다.

 

셋째로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믿음에 대한 이해나 봉사만 있어서도 안 된다. 온전히 자신을 잡아 바치는 뜨거운 열정, 곧 혈액순환과 같은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기도에 해당한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욕망과 내적으로 무질서한 애착들과 같은 불순물들이 여과되고 정화되어 자신의 지향이 올바른지 또 자신이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며, 이를 온전히 수행해내기 위해 그분께서 함께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어떤 의사가 ‘건강’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건강이란 스스로의 무게중심에서 나온 운동과 같다.” 쉽게 말해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을 때 힘들이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무게중심을 잃어버린다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운동도 매우 힘들고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배운다고 치자.

 

처음에는 공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공을 팬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온 몸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 몸에 중심을 잡을 수 없고, 힘은 잔뜩 들어가는데 공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련된 과정을 통해 몸에 중심이 잡히면 몸에 무리한 힘을 주지 않아도 공이 날아가는 방향의 정확도와 속도가 나게 된다. 문제는 그 정도까지 되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삶의 무게중심이 분명한 사람은 자신감이 넘친다. 이때의 자신감은 넘치는 교만도 아니고, 능력이상의 것을 꿈꾸는 허세와도 분명 다르다. 이처럼 무게중심이 분명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환상이나 엉뚱한 세계에 말려들지 않는다. 자연히 삶의 깊이와 분별력이 있기에 품위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무게중심이 분명한 사람은 남들이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명에 따라서 갈 길을 걸어갈 뿐이다.

 

 

예수님은 삶의 무게중심을 늘 하느님께 단단히 매어두셨다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늘 자기 안에 정신적이고 영적인 무게중심을 놓치지 않고 살 때 건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 무게중심에서 벗어날 때 다시 중심을 찾기 위해 무리한 힘과 동작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에서 마찰과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위한 수련을 할 때나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도자들이 힘을 빼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무게중심을 늘 하느님께 단단히 매어두셨다. 죽음과 수난의 고독한 길을 눈앞에 두고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중심 안에 자기를 단단히 고정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신 중에도 홀로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셨다. 이를 통해 당신의 삶의 무게중심을 확인하신 것 같다. 이 시간은 당신께서 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단단히 매어두시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하는 일에도 기(氣)와 향(香)이 있는 모양이다. “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이란 말이 있듯이, 좋은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솟고, 글 구절에도 향기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갖추어진 사람일 때는 더 그러한 것 같다. 일할 때나 함께할 때 드러나는 내면에서 나오는 영향력을 감지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면 원래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원래 외로움도 잘 이겨내고, 어려움에도 남들보다는 배짱과 용기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또 남들 눈에 보이기에 으레 잘 하고 있다는 신뢰감 이전에 그가 이겨냈어야 할 어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려는 삶의 자세는 간과하기 일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방황하고 흔들릴 때는 틀림없이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단단히 매여 있는 내 삶의 무게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일,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고 삶의 숙제이다. 이것을 감히 자신 안에 이루어야 할 영성이라고 본다.

 

끊임없는 자기 수련의 시간을 통해 삶의 내적 통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그것을 가리켜 영성생활이라고 하지 않는다. 삶에서 오는 내적인 무게중심이 그저 몰려다니며 유명한 강사의 강의나 듣고 책 몇 권 읽었다고 쌓이지는 않는다. 영성생활이란 그리스도의 파스카의 신비를 삶으로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통합하는 수련의 시간을 배제시킨 채, 고상하게 책이나 읽고 강의나 들으면서 영성생활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월호, 이동훈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상설고해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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