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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 공경, 모범을 따르며 전구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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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939

[경향 돋보기 - 진정한 성인 공경이란] 성인 공경, 모범을 따르며 전구를 청하다

 

 

들어가면서

 

초남이성지 개발이 시작된 지 수십 년 동안 성지 입구에 폐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타지에 사는 주인은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했다. 성지에서는 꼭 필요한 땅인지라 요셉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날마다 요셉 성인 호칭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이 갑자기 땅을 팔겠다고 했고, 그 땅을 사 제대로 생가 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남미 지역에서 선교사로 지내던 한 신부가 성지에 들렀다가 복귀한 선교지 공항에서 동료 신부에게 전해 줄 가방을 잃어버렸다. 그곳에서 분실물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려워 난감해하던 그 신부는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얼마 뒤 그 가방을 기적적으로 찾게 되었다.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에 따르면 이는 우연일 뿐이다. 그럼 이를 믿는 우리에게 성인은 다만 우리 삶에 필요한 바를 얻어 내는 걸 돕고 중재하며 간구(intercessio)해 주는 존재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본받고 닮아야 할 귀감이자 표양(exemplum)일까?

 

성인 공경은 우리 신앙에서 꼭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없어도 무방한 옵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성인을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수많은 하느님의 종과 복자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요즘, 성인 공경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과장과 협착함을 극복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67항은 성모 공경을 다루면서 “천주 성모의 독특한 품위를 숙고하는 데에서 어느 모로든 온갖 거짓 과장이나(an omni falsa superlatione) 지나치게 협착한 마음을(a nimia mentis angustia) 애써 삼가도록” 권고하는 비오 12세의 담화를 인용하였다. 이는 성인 공경에서도 유효하다. 양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공경이 생겨난다.

 

‘공경’의 대상인 성인을 마치 ‘흠숭’의 대상인 하느님처럼 신격화하여 인간을 숭배하거나,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무시한 채 오직 극적인 사건만을 다룰 때,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려야 할 흠숭이 소홀해질 위험이 있다. 그리고 덕행 실천과 같이 우리가 성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성인을 널리 기리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영웅적이고 덕행을 훌륭하게 실천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런 삶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함이다.

 

묵상하는 시간은 조금이고 수많은 성인성녀 관련 기도문을 바치는 데 기도 시간 대부분을 할애한다. 본인이 선호하는 특정 성인이 다른 성인보다 더 큰 도움을 준다고 믿으며 더 가까이한다. 성상과 성인 메달이 그대로 큰 효험이 있는 것인 양 애착한다. 이런 모습은 분명히 정화되어야 하며 사목자의 분별과 지도가 꼭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신자들의 성인 공경의 자세가 성숙하지 못하다고 무조건 폄하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말한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사랑과 희망과 믿음의 덕으로 성인에게 다가서는 행위는 거룩한 것에 대한 순전히 인간적인 추구의 표현이라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진 성령의 활동으로 힘을 얻는, 하느님에 대한 삶의 표현일 수도 있다.

 

성인 공경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이런 양극을 극복하면서 건강한 성인 공경을 하려면 균형과 조화가 요구된다. 성인의 모범으로 성장하고 그들의 전구로 도움을 받는(교회법 제1186조 참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인들에게 간구와 중재를 요청하는 것에 비하여 그들의 모범과 표양을 따라 사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 왔다.

 

성인은 하느님 대전에서 영광을 누리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전구자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귀감이자 모범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인들의 훌륭한 삶을 본받고 그 전구에 의탁해야 한다(성인 감사송2 참조).

 

 

전구자(轉求者)

 

다양한 교회 문헌을 살펴보면, 성인은 이 세상에서 앞서 살다 간 이,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증인, 이미 천상 고향에 이른 이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 친밀히 결합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받고 함께 영광을 받았으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에서 주님을 섬겼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하고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하는 이들이고 그들의 구원에 협력한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성취하려는 그들의 봉사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이기에, 자신의 나약함 안에서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인 공경은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말하듯, 좋은 것이고 유익한 것이다(bonum atque utile esse).

 

이러한 성인 공경에서 우리는 성인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온갖 은총과 하느님 백성의 생명 자체가 그 원천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성인 공경을 통하여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고 섭리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똑같은 인간으로서 현실의 삶을 살았기에 우리에게 자극과 위로가 되어 주는 성인을 공경함으로써 그들 안에서 보여 주신 하느님 사랑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 흠숭과 달리 성인 공경은 성인이 훌륭한 존재이고 남다른 업적을 남겨서 그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한 성인들 안에서 당신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기 위함이다.

 

 

모범 : 그리스도인 삶의 표양

 

성인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본받으며 주님께 대한 커다란 신앙심으로 성덕을 실천하며 모범적인 삶을 산 산 사람이기에 그들은 신자들에게 본받아야 할 적절한 모범을 제시하면서 교회를 성덕으로 더욱더 튼튼하게 강화한다(전례 헌장, 111항 참조).

 

우리는 성인의 이러한 참된 증언에서 성덕을 감지하고, 그들의 영성 전통과 오랜 역사에서 성덕을 확인한다. 이런 이유로 성인 공경에서 전구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다 간 그들 성덕의 모범을 본받는 일이다. 그리고 신뢰하는 자세로 성인께 전구를 청하는 이는 성인과 친교가 이루어지기에 자연스럽게 그 성인을 통해 드러난 성덕에 매료되어 자신 또한 그러한 덕행 실천에 자극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 자신의 성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인 공경에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그들의 성덕을 본받는 것이다. “성인들의 발걸음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다만 그들에게 공치사의 향을 올리는 것이다.”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오히려 성인의 표양을 묵상하고 따를 때에야 그들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배우게 된다.

 

성인의 모범을 본받는 데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한 성인의 삶을 절대화하면서 그것이 마치 모든 성덕의 전형인 것처럼 여기면서 무조건적으로 답습하기보다는 다양한 성인의 삶을 접하면서 그들 삶에서 공통적인 성덕의 삶에 영향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유익하다. 성인이 나고 자랐던 환경과 개개인의 기질과 성향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도자나 은수자였던 성인이 수시로 단식하고 철야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고는 가정주부가 이를 그대로 따라 하거나, 세상에 인연을 끊고 은수자처럼 살았던 성인을 본받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멀리하면서 사는 것은 생인 공경이 뜻하는 바가 전혀 아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신심 생활 입문」에서 참된 신심은 자신의 처지와 직분에 따라 각각 고유한 신심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성인 공경 또한 개인의 능력, 일, 직무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며, 해야 할 일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충실하게 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나가면서

 

수많은 시복 시성 후보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성인들의 통공으로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기계적으로 기도문만 바치기보다 한 분 한 분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하느님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이웃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점검하며, 지금의 삶을 더욱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줄을 잘 서서 어떤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 매료되어 물들고 닮아 결국 하나가 되는 삶이다. 그렇기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께 매료되어 물들어 살았고 이제는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는 신앙의 선배인 성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 또한 그들처럼 우리의 일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자 한다.

 

그러므로 참된 성인 공경은 그 성인에게만 모든 관심이 가는 게 아니라 그 성인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오히려 더욱 마음을 두게 되어, 지금의 우리 삶을 더욱더 복음적으로 살도록 이끌어 준다.

 

* 김성봉 프레드릭 – 전주교구 사제로 초남이성지에서 사목하고 있다.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했다.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영성신학을 강의하였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김성봉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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