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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로마를 걷는 순례자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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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08 ㅣ No.1904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로마를 걷는 순례자의 걸음”

 

 

로마! 이름만으로도 찬란히 빛나는 제국의 이름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세계 최고였으며 그 나라의 시민권을 지니는 것조차 자랑이었던 국가였다. 로마에 복속되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당연한 과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제국이 사라진 이후로도 로마라는 이름과 문장을 이어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힘써왔는가? 그러나 지금의 로마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져 유럽연합 내에서도 그다지 발언권을 크게 지니지 못하는, 이탈리아라는 한 나라의 수도일 뿐이다.

 

그런 로마를 순례하기 위해 떠나는 비행기의 기내 풍경은 흥미롭다.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로마 여행의 시작을 기대하면서 비장한 눈매로 여행책자에 적힌 세세한 식당까지 체크하는 젊은이들, 세계 최고 문화를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프레젠테이션을 가다듬는 사업가들, 어디를 가든 인생샷만 남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여행객들 그리고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으며 성지의 의미를 되새기는 신자들의 모습까지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기원 후 3세기 경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로마의 아우렐리아 성벽은 여전히 거대하고 웅장하다.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자그마한 부족국가였던 로마는 지중해 전 지역을 지배했는데, 당시로서는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훌륭한 황제는 신으로 격상되었으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의 힘은 지구 끝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4황제 중 한 명이었던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중심이자 근원이 되기 시작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친위대가 자리하고 있던 라테라노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고, 로마의 사도이자 그리스도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무덤과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성 바오로의 유해가 모셔진 장소에 바실리카를 지어 봉헌하면서 자신이 제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100년도 지나지 않아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종교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로마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당들이 지어졌고 그 성당들 안에는 세계 최고 미술품들이 장식되었다. 어떤 교황은 로마에서 2주간 이상 머물지 않는 이들과는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그 로마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이유까지 더해지면서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로마 교구의 교구장인 교황은 세상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었고 그가 가진 권력의 힘은 더욱 더 커져갔다. 교황의 한마디에 전쟁이 일어나고 교황의 한마디에 나라의 왕이 바뀌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교황과 교회의 권력이 높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즈음에 교회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도전은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아주 작게 시작되었으나 그 파장은 교회를 뒤엎을 정도로 커져갔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걸어야 하는 도시이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로마가 가진 위대함과 세계사 안에서의 비중 때문이라도 도시를 걷는다는 것이 예의처럼 생각되어진다. 그렇게 발품을 잘 팔기만 한다면 로마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베르니니, 카라바조까지 세상을 살아가며 한번쯤은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천재들을 만난다. 웬만한 성당 한편에는 미술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이 늘비하다. 카타콤베에 있는 성당에 들어서서 조각상 하나를 스쳐 지나가다 무심코 들여다본 작품 설명에는 “Gian Lorenzo Bernini(잔 로렌조 베르니니)”라고 적혀있고, 로마시청을 올라 V를 그리며 몇 장 사진을 찍고 난 후 귀에서 들리는 가이드의 설명은 그 계단을 설계한 이가 미켈란젤로라고 말한다. 그리 화려해 보이지도 않고 이름도 어려운 산 루이지 데 프란세시 성당의 맨 뒤에서 더위를 피할 겸 잠시 묵상하고 나가려다 웅성거리는 이들을 따라 성당 벽면을 보면 카라바조의 그림이 걸려있다. 로마에 순례자가 들러야 하는 곳이 얼마나 있는 걸까? 로마에 2주일 이상 머물지 않은 사람과 인사조차 안 한다는 이야기가 왜 생겼는지는 로마를 방문하기만 하면 절로 이해된다.

 

물론 아무리 순례를 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로마에서 가장 맛있다는 젤라또 집의 주소를 챙겨오게 되며, 명품은 아니어도 이태리제 가방 하나쯤은 들고 돌아와야 한다는 소박한 소망도 지니고 온다. 결코 비싸지 않은 와인 한잔에도 감탄을 해줘야 하고, 지나가는 페라리와 포르쉐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쯤 남겨보고 싶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장면이 기억난다면, 공주가 계단에서 했던 아이스크림 먹는 역할도 해보아야 한다. 당연히도 트레비 분수에 동전 하나쯤은 던져놓고 와야 한다. 여긴 로마니까 말이다.

 

진실의 입으로 알려진 로마시대의 하수도 뚜껑에 손을 넣고 사진만 찍고 그냥 돌아나와서는 안 된다. 그곳은 2,000년 전에 지어진 코스메디안 성당의 입구일 뿐 아니라 성 발렌티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장소이며 돌아온 가톨릭 정교회의 거룩한 미사가 매일 봉헌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페인 광장의 계단은 가난을 중심으로 시작된 프란치스코회의 갈래 안에서도 가장 작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미니미 수도회의 삼위일체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제일 더운 여름에 눈이 내린 곳에 지어졌다는 성모 마리아 성당의 이야기를 웃음 지으며 들어서는 안 되는데, 주님의 구유 조각과 예로니모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은 중국교회의 일부였던 조선교회를 새로운 대목구로 만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칙서가 발표된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나보나 광장에서 사진만 찍고 와서는 안 된다. 그 광장의 중심에는 초세기부터 공경받아온 아녜스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제발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베르니니의 발다키오에만 집중하지 말자. 그 성당의 지하에는 베드로 성인의 무덤이 있다. 그래서 베드로 성당인 것이다.

 

로마는 어디로 눈을 돌리든 빛나는 도시이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쌓아놓은 빛나는 과거와 현재가 담겨져 있는 도시다.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당에는 “new”라는 말이 붙어있다. 최소한 1,000년쯤 되는 건물이어야 주목을 끌 수 있다. 이렇듯 로마는 세상의 어떤 곳과도 다른 시간계산법이 통하는 곳이다. 오래된 건축물 안에서 역사가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교의 나선형적인 성장의 시간도 들어있다.

 

교회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다. 외부적인 도전에 힘으로 맞서야 했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외적인 성장을 발판으로 내적인 쇄신의 기회를 놓친 것도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도전은 안에서 자라난다. 그 내적인 도전의 도화선은 언제나 그리스도이며 복음이다. 800년 전 로마에서 멀지 않은 자그마한 언덕에 자리 잡은 아씨시에서 젊은 청년이 그 도전을 삶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세상 곳곳에서 그 도전의 불씨는 이어져 왔지만 교회는 주목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도전을 억누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용광로의 불길은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식을 줄을 모른다. 그 불길이 세상과 교회를 향해 넘쳐흐르기 시작했을 때에야 우리는 그 힘을 주목했다.

 

세상 전체를 사랑했던 2,000년 전의 예수처럼 그 청년도 세상 전체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죽음이라는 절망조차 “자매”로 부르며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 묘사대로라면, 그는 키도 작고 그리 잘생기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맨발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늘과 땅과 생명과 죽음마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뿐이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만큼 위대한 존재이다. 로마의 모든 것들이 아무리 빛나도 인간만큼 빛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그 위대한 인간이 위대함과 빛나는 자질을 갈무리하고 작아져야만 더욱 위대해 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 요한바오로2세가 말년에 고개조차 더 이상 제대로 들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미사를 거행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위대한 거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던 교황이 저렇게 늙고 병들어 어떻게 교회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걱정도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뒷담화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늙고 병들었던 교황은 “젊고 힘 있으며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위대해 보이는 자신이 교회를 이끌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늙고 병든 자신이 자리를 잡고 있음으로써 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분은 거룩한 성령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로마는 위대하다. 그리고 빛나는 도시이다. 로마에는 가톨릭의 교회의 권위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례를 하는 모든 이들은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하늘나라로 가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빛나야 한다. 수백 가지의 다이아몬드 빛 같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 어떤 마전장이도 그같이 하얗게 만들 수 없을 만큼 새하얀 빛을 내야 한다. 교황이 가진 8가지 칭호 중 하나처럼 우리들 모두가 “종들의 종”이 되어야 하며, 섬기고 봉사하지만 사랑만으로 그 대가를 바라는 온유함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또한 한 사람의 순례자로 로마를 다니며 그 걸음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이유다.

 

[평신도, 2020년 봄(계간 67호), 김원창 미카엘(평화방송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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