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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교회음악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예수님의 몸과 죽음, 그리고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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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7 ㅣ No.2656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예수님의 몸과 죽음, 그리고 모차르트

 

 

고전 음악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서른다섯 살에 요절한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230년이 되어 가지만, 그가 남긴 음악들은 여전히 전 세계 여러 매체와 수많은 음악당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의 인간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영화는 모차르트를 무척 유쾌한 웃음소리를 지닌 인물로 그렸다. 그의 독특한 웃음소리에서 엿볼 수 있듯, 영화 ‘아마데우스’는 인간 모차르트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이함을 가진 천재이지만, 동시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모차르트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그의 음악적 천재성과 묘하게 결합하는 듯하다. 온갖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 군상들로부터 한 발짝 비켜난 것같은 천상의 아름다움과 내적으로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함으로 반짝이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런 이유로 이 꼭지의 제목인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에 가장 잘 어울릴 대상을 꼽자면 그것은 아마도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이 아닐까 싶다.

 

모차르트는 35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많은 명곡을 남겼다. 교향곡과 독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등 그가 남긴 작품들은 거의 모든 장르의 고전 음악에 펼쳐져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의 음악 양식에 정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 음악에도 모차르트가 남긴 발자국은 선명히 남아 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대부분의 종교 음악은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궁정 음악가로 일했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순수한 천재로 묘사했지만, 사실 그는 매우 세속적인 인물이었다. 모차르트는 무대를 넓혀 더 큰 곳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자 고향이자 일터였던 잘츠부르크를 벗어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고, 또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 모차르트가 바라던 기회는 그가 스물다섯 살 때 찾아왔다. 그 기회를 얻고자 고향을 떠났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잘츠부르크를 떠나 대도시인 빈으로 이사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모차르트가 남긴 종교 음악

 

결국 빈이란 고장은 모차르트의 짧은 생의 종착지가 되었다. 잘츠부르크를 떠난 뒤, 사실상 프리랜서 작곡가가 된 그는 종교 음악을 작곡할 일이 거의 없었다.

 

1787년 모차르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오페라 ‘돈 조반니’가 그의 예상과는 달리 흥행에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실패를 경험한 뒤로 그의 형편은 점차 나빠졌고, 설상가상으로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런 그가 죽던 해인 1791년에 작곡한 두 곡의 종교 음악은 종교 음악사에 길이 빛날 명작으로 남았다.

 

그 두 곡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미완의 걸작 ‘레퀴엠’(Requiem)과 ‘아베 베룸 코르푸스’(Ave Verum Corpus)이다. 그중 아베 베룸 코르푸스는 가톨릭 성가집 194번 ‘성체 안에 계신 예수’(Ave Verum)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이 곡을 쓸 무렵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빈에서 멀지 않은 바덴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지방의 음악가이자 모차르트의 친구인 안톤 슈톨이 그녀를 돌봐주었다. 슈톨은 그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위한 음악 작곡을 모차르트에게 부탁했고, 모차르트는 46마디에 불과한 매우 짤막한 성가로 응답했다. 짧지만 이 성가는 모차르트 말년을 영롱함으로 가득 채운 보석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다.

 

Ave verum corpus, natum

성체 안에 계신 예수

de Maria Virgine,

동정 성모께서 낳으신 주,

vere passum, immolatum

모진 수난 죽으심도

in cruce pro homine,

인류를 위함일세,

cujus latus perforatum 

상처 입어 뚫린 가슴 

unda fluxit et sanguine.

물과 피를 흘리셨네. 

Esto nobis prægustatum

우리들이 죽을 때에 

in mortis examine.

주님의 수난하심 생각게 하옵소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

 

이 곡의 라틴어 가사는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종교시이다. 이미 모차르트 이전에도 많은 작곡가가 이 시로 찬미가를 지었다. 가사에는 예수님의 몸과 그 안에 새겨진 십자가의 고통, 그리고 우리 인간의 죽음을 묵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본디 아베 베룸 코르푸스에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간구하는 구절이 끝부분에 이어진다. 곧,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수난하심을 묵상한 뒤, 간구의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를 듣노라면 성체의 신비와 그 안에 새겨진 고통, 그리고 주님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과, 그 고통이 성체를 통해 하나의 ‘몸’으로 인간과 합일을 이루는 신비를 묵상케 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한없이 겸손하고 경건하게 들려온다.

 

모차르트의 종교 음악에서 죽음 앞에선 인간의 경건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모차르트가 짧은 생을 마치던 해에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차르트 말년의 음악에서는 이전과 달리 반음계와 대위적인 요소가 한층 더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대위적인 요소를 통해 그는 당시 한물간 것이라고 생각되던 지난날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의 한 구성 성분으로 녹여냈다.

 

또한 반음계적 요소들은 그의 말년의 음악에 수수께끼와 같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안락하고 편안한 음악이 아닌 불안하고 중심을 잃은 것 같은, 죽음을 앞둔 위태로운 인간성이 만들어 낸 창조적인 결과물이기도 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는 모차르트 말년의 음악이 지닌 대위적이며 반음계적 요소가 함축된 명작이다. 그의 이 짧은 성가는 예수님의 몸을 통해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이끌며, 듣는 이의 마음에 커다란 공명을 일으킨다. 이는 죽음을 앞에 둔 인간 모차르트의 내적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 정이은 안드레아 -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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