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4: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6 ㅣ No.600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4)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작자 미상 작에서 미술사 주요 작품으로 우뚝

 

 

- ‘십자가의 그리스도’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속에 죽어가는 그리스도가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다.

 

 

처음으로 소개할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은 생존 작가인 김병기(루도비코, 1916~) 화백의 ‘십자가의 그리스도’이다. 이 작품은 김병기 화백이 성미술 전람회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으로 현재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동안 작자 미상으로 돼 있다가 지속적 연구를 통해 김병기의 작품임이 밝혀졌다. 또 작가가 생존해 있어 작품에 대한 증언을 듣고 참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출품작 중 하나다.

 

 

장발의 루도비코 세례명 물려받으며 입교

 

김병기는 1916년 평양에서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였던 김찬영(1893~1960) 화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가와바타화학교와 동경문화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귀국 후 1947년 월남한 그는 1953~1958년 서울대학교에서 예술론과 회화실기 등을 강의했다. 김병기는 본디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했으나 서울대 재직 시절 장발을 통해 가톨릭에 입교했다. 작가의 증언에 따르면 김병기의 대부였던 장발은 자신의 세례명인 루도비코를  세례명으로 물려주었다고 한다.

 

김병기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당시 출품작 중 가장 성화답지 않은 성화였다”고 회고하며 “다소 반항적이었던 화풍”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날카로운 선들이 오가는 화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고통 속에 숨져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추상적으로 표현됐으며, 화면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붉은 원은 석양을 나타낸 것으로 화면 구성상 필요에 의해 도입한 것으로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표출된 역삼각형 구도가 훗날 자신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그리스도교 정신을 상징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글 · 작품 경향 통해 아르 사크레 영향 추측

 

김병기는 1955년 월간 「가톨릭청년」 1월호 기획 기사 ‘교회와 문화’ 중 미술 부문에서, 프랑스 도미니코수도회에서 현대 미술가들을 영입해 완성했던 앗시성당(Notre-Dame de Toute Grâce de Plateau d’Assy)과 앙리 마티스의 방스 로사리오경당(Chapelle de Rosaire de Vence)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당시 유럽의 교회미술쇄신운동에 따른 새로운 종교미술의 경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0년 이래 불란서에서는 두 개의 미술적인 성당이 건조되었다. 하나는 며칠 전에 서거한 거장 마티스의 창의와 노력에서 이루어진 ‘방스’의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꾸-튜리에’ 신부의 제창으로 레제, 루오, 류로사, 보나르, 브락크 등의 일류의 미술가들이 대량으로 참가하여 만들어진 앗시의 성당이다. 두 성당의 소개로써 우리들은 불란서의 현대미술이 가톨릭교회와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 알 수 있었다. 오늘에 있어서도 역시 불란서의 미술가들은 교회에 협조하는 그들의 신성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회는 교회대로 새로운 호흡으로서의 현대미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중략) 현대에 있어서처럼 종교적인 주제나 모티브가 미술에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카테고리의 하나로 대우를 받아본 시기는 없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 이번에 앗시나 방스의 두 성당이 가지는 미술적 종교적 의미는 큰 것이 있다. 앗시성당에 참가한 미술가 중 루오 이외 몇몇 사람을 가톨릭 예술가로 볼 수 있으며 나머지 작가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특히 레제 같은 반종교적인 사람이 성당 장식에 참가했다고 하는 사실은 그것을 받아들인 교회 측의 용단과 더불어 흥미가 있다. 이 점을 지적하여 이번 성당과 현대 미술을 결부시키는 일에 공헌이 큰 성 도미니코회원인 꾸튜리에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미술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신앙심을 가진 천재를 바라고 싶기는 하나 그런 천재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는 재능이 없는 신자보다 미신자의 천재가 오히려 좋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영적 감정을 가진 자의 심리와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에 ‘정신적 테마’에의 헌향에 스스로 예정된 사람들이다’라고”.(김병기, ‘교회와 문화’, 「가톨릭청년」, 1955년 1월, 64~65쪽)

 

김병기의 작품을 프랑스 아르 사크레(L’Art Sacré : 유럽 교회미술 쇄신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만 단정해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겠으나 그의 남긴 글과 작품 경향들로 미루어 그 영향 관계를 유추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마치 에스키스(스케치 초안)를 하듯 다듬어지지 않은 선들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 기본적인 구성에서 앙리 마티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습작 드로잉과의 영향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앙리 마티스는 프랑스 아르 사크레 운동의 하나로 건축된 프랑스 방스의 도미니코 수녀원 내에 있는 로사리오경당 전체를 자신의 작품으로 완성했다. 그 중 세라믹 벽화로 제작된 14처 중 제12처를 위한 습작에서 여러 차례 지우기를 반복하며 최종적으로 몇 개의 선으로 집약하여 완성한 드로잉 습작이 남아 있는데 몸 중앙을 가로지르는 X자 선과 구체적인 형상이 생략되고 직관에 따라 그어진 선들의 움직임으로 완성된 인체의 모습 등에서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나타난 표현과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겠다.

 

김병기가 「가톨릭청년」에 발표한 글을 통해 쿠튀리에 신부가 이끌었던 아르 사크레 운동이 우리나라 가톨릭 미술계에 소개되고, 당대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재능 있는 미술가들을 교회로 영입해 교회미술을 쇄신하고자 했던 아르 사크레 운동이 상대적으로 가톨릭 성미술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 거의 동시대에 전파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현존하는 작가의 가장 오래된 작품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2014년 교회 언론을 통해 현존하는 작가의 가장 오래된 작품임이 밝혀져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김병기:감각의 분할전’에 전시됐다. 이 전시를 통해 60년 만에 공개된 그의 작품은 가치를 재평가받았고 이후 2016년 ‘가톨릭 성미술 재조명전’에도 다시 출품돼 일반 신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한국 가톨릭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0년 1월 6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1,67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