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강론자료

2018-10-28.....연중 제30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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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10-27 ㅣ No.2273

연중 제30주일 (나해)

예레미야 31,7-9           히브리 5,1-6              마르코 10,46-52

2018. 10. 28.(시몬/타대오**사도) 이태원

주제 : 구원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삶에서 우리는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게 듣는 소리에서 좋은 소리를 반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대표적인 좋은 소리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내가 칭찬을 들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에게 다가오는 칭찬의 소리를 기대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일에 내 생각대로만 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빨리 깨닫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적게 실망하고, 힘든 일을 적게 겪는 방법입니다 .

 

예리코에 살던 사람, 자신의 눈으로는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던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자신이 살고 있던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는 열려있었기에 자신의 귀로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행동을 결심한 그는 예수님을 다윗임금의 후손이라 부르며,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현실을 변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말입니다 .

 

눈먼 사람이 외친 소리가 자기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본다고 생각했던, 육신이 멀쩡한 사람들의 귀에는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자신의 눈으로 보는 일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눈이 먼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자코 있으라고, 떠들지 말라고 막습니다. 그렇게 꾸짖은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이어서, 눈먼 사람은 그 기적의 놀라움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바를 결정했던, 눈이 먼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를 질렀으며, 다음 순간에는 그에게 특별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으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다른 개인의 삶에 관심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세상이 발전한다면서, 사람의 삶이 바빠진 탓이고, 신경을 쓸 일이 많아진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나의 삶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그들의 삶에 내가 하는 행동이 손해로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내 가 무조건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갖는 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는 히브리백성들에게 바빌론유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들의 삶에 희망은 보이지 않고 현실이 암담하다고 생각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에서 빛은 사라진 것이 분명한데도, 예레미야예언자는 그런 상황에 빠져있는 히브리백성들을 향하여 희망의 소리를 선포합니다. 예언자는 정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예레미야예언자와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는 예언자의 선포를 어떻게 이해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희망을 선포한 예언자가 처해있던 현실도 백성의 상황과 다른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사람은 다음 순간에 자신의 삶에 만들어질 미래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예언자의 선포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남북한의 대화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통치자를 두 번이나 만나고, 남북한 접경지역의 JSA에서 군부대의 초소들이 없어지는 때에, 우리의 상황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삶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일은 큰 변화를 부르는 일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 삶을 달라지게 하는 본보기를 예수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다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을 통해서 보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뜻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예수님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나의 삶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려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고, 나의 삶에 좋은 결실이 생기게 하는 나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드러내는 자세는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나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싸움이나 질투(嫉妬)라고 말할 수 있고, 내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하느님께서도 나의 청원에 응답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기도(祈禱)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같거나 비슷한 설명일 수 있지만, 그 모습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기도를 얼마나 하는 사람일까요, 기도가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질투를 드러내도 괜찮다고 여길까요? 내가 하는 선택에 따라서 나의 현실 모습은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지혜를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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