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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로 선포되는 천주교 서울 순례길: 일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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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16 ㅣ No.1785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로 선포되는 천주교 서울 순례길 (3) 일치의 길


순교 신심으로 찬란히 피어난 한국 천주교회

 

 

일치의 길 

 

천주교 서울 순례길 중 ‘말씀의 길’은 신앙 선조들이 자발적으로 복음 말씀을 받아들여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것을 묵상하는 길이다. ‘생명의 길’은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길이다. ‘일치의 길’은 순교자들의 순교 신심을 본받아 신앙의 빛을 밝힘으로써 교회와 일치를 이루고 새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원하는 길이다.

 

일치의 길은 중림동약현성당 - 당고개순교성지 - 새남터순교성지 - 한강 순례길 - 절두산순교성지 - 노고산성지 - 용산성심신학교 - 왜고개성지 - 삼성산성지 29.5㎞ 구간으로 조성돼 있다.

 

▲ 당고개순교성지

위치 : 서울 용산구 청파로 139-26

 

당고개순교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10명의 순교자가 처형된 곳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9명의 순교 성인이 탄생한 거룩한 땅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 처형지로 끌려갈 때 잠시 머물며 쉬어갔던 곳이기도 하다.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따르면 포졸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김대건 신부의 풀어진 상투를 다시 묶어 주었고, 김 신부는 고개를 들고 시선을 좌우로 돌렸다고 한다.

 

당고개 순교 성인으로는 박종원(아우구스티노), 홍병주(베드로), 권진이(아가타), 이경이(아가타), 손소벽(막달레나), 이인덕(마리아), 홍영주(바오로), 최영이(바르바라), 이문우(요한) 등 9위가 있다. 이들과 함께 당고개에서 순교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복자품에 올랐다.

 

▲ 새남터순교성지

위치 : 서울 용산구 이촌로 80-8

 

새남터순교성지는 기해ㆍ병오박해 때 성직자 11명과 교회 지도자 3명이 군문효수형(죄인의 목을 베어 군문 앞에 매다는 형벌)을 받고 순교한 곳이다. 한강 모래 터로 조선 시대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해 왔으며 군문효수형을 받은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됐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치명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새남터 첫 순교자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와 김대건 신부 등 성직자와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여기서 처형됐다.

 

새남터 순교 성인으로는 앵베르(제2대 조선대목구장)ㆍ베르뇌(제4대 조선대목구장) 주교, 모방ㆍ샤스탕ㆍ김대건(안드레아)ㆍ브르트니에르ㆍ볼리외ㆍ도리 신부, 현석문(가롤로), 정의배(마르코), 우세영(알렉시오) 등 11위가 있다.

 

순교 복자로는 주문모 신부가 있다. 파리외방전교회 프티니콜라 신부와 푸르티에 신부도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순교했다.

 

▲ 절두산순교성지

위치 :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조선 시대 한강 버들꽃 나루라 불렸던 양화진 잠두봉에 자리한 절두산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 가운데 한 곳이다. 1866년부터 1873년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목이 잘려 순교해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게 됐다. 대표적인 절두산 순교자로는 하느님의 종 박래호(요한 사도), 김이쁜(마리아), 이의송(프란치스코), 이붕익(베드로), 김한여(베드로), 김진구(안드레아), 김큰아기(마리아), 이기주(바오로), 이용래(아우구스티노), 박성운(바오로), 원윤철(요한 세례자), 유마오로, 강요한 등이다.

 

▲ 노고산성지

위치 : 서울 마포구 백범로 35 서강대 가브리엘관 앞

 

노고산은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처형장과 가까이 있어 순교자들의 시신이 매장됐던 곳이다. 성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의 시신이 4년간 매장돼 있었다. 1839년 새남터 처형지에서 세 성인의 시신을 몰래 빼 와 노고산에 매장한 박 바오로가 무덤이 탄로 날까 두려워 1843년 자신의 선산이 있는 삼성산으로 이장했다.

 

또 1838년 형조 옥에서 순교한 이호영(베드로) 성인과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 기해박해 때 포도청 옥에서 순교한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시신도 순교 후 이장하기 전까지 이곳 노고산에 묻혔다. 병인박해 때에는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 전장운(요한)ㆍ우세영(알렉시오) 성인, 새남터 순교자 정의배(마르코) 성인의 시신도 노고산에 안장됐다.

 

▲ 옛 용산신학교 

위치 : 서울 용산구 원효로 19길 49 성심여고 내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는 1887년 개교한 한국 교회 첫 번째 근대식 신학교이다. 1902년 봉헌된 예수성심신학교 성당은 성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ㆍ김대건 신부,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가 모셔졌던 곳이다.

 

성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ㆍ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1901년 시복 재판 때 삼성산성지와 미리내성지 묘소에서 발굴된 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겼다가 선교사들의 유해는 명동대성당 지하 소성당으로,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용산신학교 성당 제단에 모셔졌다.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는 용산성직자 묘소에 안장됐다.

 

▲ 왜고개성지

위치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40길 46 군종교구 주교좌 국군 중앙성당

 

왜고개는 조선 시대 기와와 벽돌을 굽던 곳으로 ‘와고개’ ‘와현’ ‘와서현’(瓦署峴)이라 불렀다. 서울 명동대성당과 중림동약현성당의 벽돌도 이곳에서 구웠다.

 

왜고개는 노고산처럼 형장과 가까워 새남터와 서소문 밖 순교자들의 시신을 매장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7명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시신이 33년간, 그리고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 남종삼(요한), 최형(베드로)이 43년간 매장돼 있던 곳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이 임시 매장됐다가 미리내성지로 옮겨지기도 했다.

 

▲ 삼성산성지   

위치 : 서울 관악구 호암로 454-16

 

삼성산성지는 기해박해 순교자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의 시신이 1834년 박 바오로에 의해 노고산에서 이장된 후 1901년 시복 재판을 위해 발굴된 후 용산신학교 성당으로 모셔질 때까지 묻혀 있던 곳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16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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