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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이라면 덕에 앎을 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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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559

[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이라면 덕에 앎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살아서 주님께 칭찬을 듣고 싶을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 성모님을 닮고자 하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성덕을 향한 갈망은 더욱 크겠지요.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고민도 하고 애를 씁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건 ‘제대로 된 신앙’을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솔직히 지난 호에서 덕을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혹여 덕이라 하면 공자나 맹자의 말씀쯤으로 어림하며 그리스도인과 동떨어진 의미로 받아들여 지나쳐 버릴 것 같다는 우려가 생겼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덕이란 온전한 믿음으로 사랑을 살려는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제로써 가장 안타까운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계명을 매우 번거롭고 까다로운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몹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나아가 ‘싫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주님을 시시한 무당취급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픈 모습인지요? 주님께서 언제? 이러고 저런 방법으로 공을 들이면 떼돈을 벌게 해준다고 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언제? 딱 엎드려 빌면 대번에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기가 막힙니다. 그런 까닭에 믿음이 좋다는 사람도, 맹렬히 기도하는 사람도 주변에 덕을 펼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허다하니 너무 슬픕니다. 이런 모자람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성경에 콕 집어 덕을 강조하셨겠지만 말입니다.

 

 

믿음인이 덕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절실

 

성경은 코린토 교회의 볼썽사나웠던 분열이 교우들의 덕이 부족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많이 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덕을 지니지 못하면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원흉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줍니다. 코린토 교우들에게 잘못된 행실을 일일이 지적하며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1코린 10,23)라는 사도의 권고는 덕에 관한 실천지침의 요점입니다.

 

무릇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회에 덕이 되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가늠하여 실천할 때, 덕을 살아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덕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고 도모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베드로 사도도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8)라며 덕이란 모름지기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데요.

 

베드로 사도가 굳이 믿음에는 덕이 더해져야 하고 이어서 앎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에 주목해 봅니다. 물론 사도가 말하는 앎이란 세상 물정에 밝아지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앎이란 하느님을 아는 것, 진리를 깨우치는 것, 성경을 아는 것, 레지오 교본을 아는 것, 영적인 세계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믿음인이 덕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을 터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하느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단과 사이비를 대응할 재간이  없을 게 뻔합니다. 고도의 맹훈련을 받은 이단과 사이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모자랄 것입니다. 이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오직 하느님에 대한 지식뿐입니다. 그러기에 레지오 단원에게 성경지식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믿음의 재료입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베드로 사도의 마음이 떠올라 잠시 울컥하게 됩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교회의 기둥이며 반석인 지도자입니다.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나 마태오 사도에 비해서 ‘가방끈’이 짧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러웠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자람에 마음을 앓았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를 이끌어 갈 후배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여 앎을 더하며 지내라고 강권했으리라 싶은 겁니다.

 

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되 마구잡이로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마음에는 제동을 거는 절제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에서는 베드로 사도의 영민함이 확 드러나고 있는데요. 이야말로 성령의 도우심을 일깨움 받은 지혜의 소산이라 싶어 기쁩니다. 무식했던 베드로 사도의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세상지식이나 환경이 결코 성덕의 필수요건일 수 없다는 점을 뚜렷이 알려주니까요.

 

당시에 교우들에게 편지를 적을 때의 베드로 사도의 간절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가십시오.”라는 말로 매듭 짓는 글에서도 건지게 되는데요. 지식이란 결국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며 열심히 하느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임을 명심하도록 합니다.

 

 

성경읽기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 덕행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을 제대로 알고 느껴야 합니다. 나아가 느낀 바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묘한 것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다가가는 심정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아주 정직하고 친절하게 주님의 뜻을 일깨워준다는 사실입니다. 내면의 변화를 일으켜 새 삶을 살아가는 영적 쇄신을 선물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삶에 힘이 되고, 피가 되어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도록 해준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큰 은총이라는 진리를 체험하도록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덕이 있을까요? 이보다 더 훌륭한 앎이 있을까요? 그러니 힘냅시다.

 

이제 우리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 꼭 알아두라고 이르신 것, 그것을 알기 위한 노력에 미진한 모습,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도록 해주셨음에도 성경통독에 게을렀던 지난 날…

 

성경읽기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행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습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을 더 잘 이해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내처 통독에 열심을 내어 한 구절 한 구절을 넘어선 주님의 뜻을 통째로 알아내는 축복을 탐해야 합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에게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는” 축복이 있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지혜 6,10-11)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2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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