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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교회와 노동10: 교회와 노동 연재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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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18 ㅣ No.1065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10 · 끝) ‘교회와 노동’ 연재를 마무리하며


올바른 노동…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로 이어져

 

 

-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가 2014년 12월 11일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앞 30여m 높이 광고판 옥상에서 농성 중인 케이블 방송 씨앤앰 간접 고용 노동자들을 찾아가 위로한 후 기도하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교회와 노동이라는 주제 아래서 진행된 아홉 번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를 특징짓는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삶의 질 문제 △ 노동 빈곤층과 소득 불평등의 문제 △ 노동자의 휴식권과 노조 활동의 보장 문제 △ 열악한 여성 노동의 문제 △ 국제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노동 관계법과 제도 개선의 문제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연재 기사를 통해 우리는 아직도 해결하고 개선해야 할 노동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노동 관계법과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 전문가들, 특별히 정치인들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점은 노동의 당사자인 평범한 노동자들의 각성과 주체적인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노동자의 각성과 주체적 노력의 결집을 위해 노동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연재의 마무리에 다시 한 번 노동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되돌아봅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인간의 생계 수단이 되고(노동의 경제적 의미), 자신의 인격을 노동으로 표현하고 발전시키며(철학적 의미), 노동을 통해 이웃과 결합하고 사회에 봉사한다(사회적 의미)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노동의 일반적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노동의 신학적 의미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사목헌장」 66~68항, 「노동하는 인간」 24~27항 참조)

 

 

노동의 창조론적 의미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세상을 돌보고 가꾸라는 명령이 주어졌고,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 창조 사업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노동이 곧 창조의 협력자로서의 인간 지위를 실현시키는 길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본분을 망각하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연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노동의 구원론적 의미 

 

예수님께서도 나자렛에서 양부 요셉을 도와 손수 일하심으로써 노동의 품위를 높여 주셨습니다. 이 점에서 인간은 노동해야 할 의무와 노동에 대한 권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원으로 초대받은 인간은 노동을 통해 그 수고와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에 참여합니다. 노동으로써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됩니다. 노동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길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직업 생활, 사회생활이 신앙생활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론적 의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와 종말에 실현될 하느님 나라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도래할 하느님 나라가 현세와 전혀 무관한 또 다른 어떤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노동과 수고를 통해 지금부터 준비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노동을 통한 인간의 세상 건설은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 실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세상,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몫입니다.

 

이상의 가르침만 보면 노동은 참으로 고귀하고 거룩하며 인간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노동의 의미가 온전히 실현되고 체험되지 못합니다. 앞서 언급된 여러 가지 현안 문제들이 그러한 현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노동의 신학적 의미와 영성이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의 협력과 상호 존중이 필요합니다.

 

특히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와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주는 노동자와 더불어 각자의 직무를 통해 결합하여 있으면서 서로가 기업 발전과 사회 공동선에 기여하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자본과 노동은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습니다.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도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새로운 사태」 14항)는 교회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결국은 상호 존중과 양보만이 상생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진지하게 곱씹어보고 좀더 세심하게 실현의 길을 모색해야 할 대목입니다. 노동과 자본의 상호 의존성의 참뜻은 특별히 기업이 ‘노동의 우위성’을 존중해 운영될 때 잘 드러나고 실현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자본과 노동의 협력적 관계 안에서 노동의 우위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노동이 인간 활동의 직접적 표현이고, 인간 존엄성이 우선적으로 노동하는 가운데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대하는 자본의 태도는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노동자를 무조건 경제적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 스스로도 자신을 경제의 단순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질 만능 사상이 팽배할수록 노동자 스스로 노동의 품위를 저버리고 스스로 노동의 노예로 전락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일의 노예가 되어, 노동이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타락하면, 노동은 더 이상 하느님의 창조 사업이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고 종말론적 의미도 구현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이번 연재에서 독립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국내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보수나 노동조건의 어떠한 차별도 두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현지 국가나 지방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라고 가르치지만,(「사목헌장」 66항 참조)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차별이 존재하며, 열악한 숙소 환경과 빈번한 인권 침해 등을 고려하면 그들이 불평등한 사회계층 구조의 밑바닥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17일, 유경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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