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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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 (12) 성탄축제의 전례적 배경과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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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04 ㅣ No.550

[레지오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斷想) (12) 성탄축제의 전례적 배경과 요소

 

 

전례력으로 볼 때 성탄시기는 주님의 성탄 제1저녁기도로 시작되어 주님의 세례 축일로 끝이 난다. 성탄시기는 얼핏 보아서는 잘 구분이 안 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2월 25일의 성탄을 중심으로 해서 8부축제까지(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그리고 주님 공현 대축일(1월 6~8일)을 전후해서 주님 세례 축일까지이다. 성탄(Natale)과 공현(Ephiphania)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쌍둥이 축일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축일은 의도하는 바가 동일하며, 또 동일한 목적으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12월22일은 연중 24절기 중 하나인 동지(冬至)이다. 우리에게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울듯이 동짓날은 바로 어둠이 극에 달하며, 그 순간 어둠의 시대가 끝이 나고 빛의 시대가 시작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에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동짓날 먹는 팥죽의 붉은 색깔은 빛을 의미하며 그 팥죽을 먹음으로 마음속에 빛을 밝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지가 언제 올까?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이틀, 혹은 사흘 전이 바로 동지이다.

 

서양에도 동지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기 전에도 이미 유럽인들에게 이 동지제(冬至祭)는 큰 명절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사실 서양에서 동지제(冬至祭)의 유물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에게 동지는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다시 말해 빛의 세력이 어둠의 세력을 무찌르기 시작하는 날이다. 북 유럽인들에게 동지는 6개월 동안 계속되는 밤이 새벽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날이다. 이처럼 동지제가 북반구의 겨울 풍경이 새로워질 것이라는 희망의 확인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동지는 그래서 희망의 날, 약속의 날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북 유럽을 상징하는 상록 침엽수인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탄은 로마의 축제인 ‘동지(冬至)’이자 ‘승리의 태양’을 경축한 데서 기원

 

세계 인류문화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동지제가 열리는 전후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명절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이 사실은 12월25일이 아닌데, 긴긴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동지제가 열리는 동지 전후로 편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성탄을 인류문화와 조화시켜 신학화시킨 것이다.

 

전례달력으로 성탄날은 로마시대에 ‘승리의 태양’을 경축한 날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백성에게 ‘빛’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례달력 안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지는 해로, 예수님을 떠오르는 태양으로 대비시켜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성탄날과 대비점인 6월24일, 곧 하지(夏至) 근방으로 잡은 것이다. 성탄대축일인 복음도 요한복음의 시작, 어둠을 이기고 빛으로 오신 분, 어두운 세상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러 오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세례자 요한과 대비시켜 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요한 1,1-18).

 

이처럼 서방교회의 성탄은 로마의 축제인 ‘동지(冬至)’이자 ‘승리의 태양’을 경축한 데서부터 그 기원을 두어, 이교의 태양신 숭배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야말로 참 태양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4세기부터 예수 성탄 축제를 지내게 되었다.

 

한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1월5일과 6일 사이의 밤에 시간과 영원의 신 에온(Aeon)의 탄생을 경하하는 축제가 있었고, 또 이미 2세기에 예수님의 세례를 이날 기념하면서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비로소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하던 이단이 있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이러한 이교도의 풍습과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서 1월6일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다가 곧 이어 예수님의 세례와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첫 번째 기적도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자 요한에 의한 그리스도의 세례 등을 공동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예배의식을 채택하여 처음에는 이러한 의식이 ‘주님 공현 축일’(1월6일)에 거행되었다.

 

4세기 이후에 서방 교회의 12월25일 성탄축제와 동방 교회의 1월6일 성탄축제가 서로 교류되면서 서방 교회는 12월25일에는 예수 성탄을, 1월6일에는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드러난 사건들이 세 동방현인들의 방문(주님 공현 축일)과 예수님의 세례 및 카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을 지내게 되었다. 로마 전례에서는 무엇보다도 공현 축일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더라도 1월6일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찬가 후렴에서 예수의 세례와 카나에서의 기적을 상기하고 있으며, 공현 축일 다음에 따라오는 주일에 주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도록 하여 주님의 세례를 지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성탄축제를 지내면서 전례 안에 읽게 되는 독서의 내용에 동방박사의 내방 장면과 세례 장면, 카나의 혼인잔치 장면이 동방교회의 성탄축제의 요소가 서방교회로 흡수되면서 성탄의 요소와 의미가 더욱 풍성해진 것이며 성탄 8부 축제가 끝난 이후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 전후와 세례 축일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내는 성탄 축제가 이처럼 전례적으로 서로 다른 동방과 서방의 두 기원적 요소에서 형성되어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을 헤아려보며,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에 대한 여정도 그러하다는 점을 되돌아보게 된다. 전례는 분명 우리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요소이자 내적 동기가 된다. 일상은 축제를 지향하고 축제는 또한 일상에 활력을 준다. 한 해의 연중시기를 마감하면서 전례는 또한 성탄 축제를 맞이하기 위해 대림이라는 준비기간을 가진다. 그리고 성탄축제를 마감하면서 전례의 달력은 다시 연중시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전례는 우리의 단조롭고 따분하기까지만 한 일상생활이 축제가 되게 한다.

 

 

전례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요소이자 내적 동기


성탄 축제의 전례적 형성 역사를 미루어 볼 때, 우리 또한 삶에서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이 내게 지금껏 살아왔던 영역에 참신하고 새로운 도약이 되며 풍성해지는 체험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미 익숙해지고 타성이 붙어 이제는 그 의미가 충만하게 다가오지 않는 삶에서 그것은 충분히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의 영성생활 또한 전혀 새로운 다른 영역들이나 요소들이 내게는 하느님께로 향한 도전이자 좀 더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비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너무도 몸에 체득되어 익숙해져버린 삶의 영역에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도전과 은총으로 시험하시면서 우리를 풍요롭게 해 가신다는 믿음을 주신다.

 

겉으로 보이는 타인의 신심을 비웃기보다는 그에게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향하기 위한 열정과 투신의 일환이었다는 점도 헤아려 보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그분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1)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수많은 수용과 시행착오들이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리고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삶에 풍요로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모든 시도들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 안에서 풍요로워 지리라 희망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이동훈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상설고해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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