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25,1-13 열 처녀의 비유 (2017.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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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11-07 ㅣ No.2187

 그때에 하늘나라는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마중나간 열 처녀와 같을 것입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어리석고 다섯 명은 슬기로웠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을 들고 있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불과 함께 기름을 채운 그릇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그들은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에 여기 신랑이 왔소! 마중을 나가시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열 처녀는 깨어 각자의 등불을 챙겼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고 있으니 기름을 좀 빌려다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안 돼! 우리와 너희가 모두 쓰기에는 기름이 모자라거든. 너희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렴.’ 그리하여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나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를 하러 집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나중에 다른 처녀들이 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주님, 문 좀 열어주세요!’ 신랑이 대답하였습니다. ‘안 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 여러분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처녀들은 하늘나라 백성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유대교, 천주교, 정교회, 경교(네스토리우스파), 이슬람교, 각종 개신교, 각종 신흥종교 등등의 신자들이 되겠다. 스스로 하늘나라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는 없다. ‘다섯은 육정을 상징한다. 사람은 누구나 육정을 지닌 존재, 곧 살과 피를 지닌 동물이다.

 

어리석은 처녀는 겉으로는 하늘나라 백성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며, ‘슬기로운 처녀는 참된 하늘나라 백성이다. 5+5=10(완전함)으로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를 통하여 세상을 완전하게 다스리심을 나타낸다.

 

신랑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이며, ‘등불은 기도이며, ‘기름은 지혜이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사람의 지혜를 따라 그릇된 믿음(미신)을 지니고 있으며, 슬기로운 처녀들은 성령의 지혜를 따라 올바른 믿음(기름을 채운 그릇’)을 지니고 있다. ‘혼인잔치는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와 일치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사건이다. (한 신랑이 여러 신부들을 맞는 엽기적인 결혼식을 묘사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신랑이 늦음은 육정의 유혹이며, ‘졸음은 영적 투쟁이며, ‘은 죽음을 가리킨다. ‘처녀는 믿음의 수동성과 생산성을 상징한다. 믿음은 아버지의 영(성령)을 받아들여서 영적 자아(아들)를 낳는다.

 

한 밤중은 완전한 자기부정(自己否定)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하느님께서 무한하게 내려주시는 성령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자기부정을 통하여 성령을 더 풍성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끊임없이 영적 쇄신(刷新)을 일으킨다. ‘외치는 소리는 자아를 통째로 변화시키는 사건임을 나타낸다.

 

이에 반하여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지어낸 다음 자신의 욕망을 채워달라고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앞세우고 있다. 그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이 지혜롭다고 소문난 스승들에게 수업료를 지불하고 하늘나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지식은 애당초부터 성립하지 않으므로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이 사람의 지혜를 버리고 성령의 지혜를 누리기를 권유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성령을 무한하게 내려주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기름이 모자람은 성령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지적한다. 성령의 지혜는 무한하여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되, 사람의 지혜는 사고, 질병, 재난, 죽음 등 큰 재앙 앞에서 무력하다.

 

깨어 있음은 성령을 통하여 늘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슬기로운 처녀들이나 어리석은 처녀들이나 똑같이 잠이 들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잠자는 동안에도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다. 기도는 죽음까지도 이긴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는 영적 깨달음이 하느님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아무 노력이 없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슬기로운 처녀에게 어떤 일을 이루어 주실지 본인 자신도 알 수 없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세상을 사랑하되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므로 끝끝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늘나라의 문은 늘 열려있으되 어리석은 처녀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서 언젠가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나는 여러분을 모릅니다.’는 예수의 길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길이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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