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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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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31 ㅣ No.487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1) 자흘레 난민 캠프를 가다


난민 생활 고충에 종교적 증오에 대한 두려움까지 '이중고'

 

 

- 자흘레 시 외곽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만난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 전쟁의 고통은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천막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성조들과 예언자들의 고향, 메시아가 강생하신 영광스러운 장소, 구원자의 십자가가 드높여지는 것을 보았고 구세주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목격한 곳, 사도들과 성인들과 수많은 교부가 거쳐 간 땅, 최초의 교리가 정립된 현장….”(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중동 교회」 제8항 참조)

 

중동은 그리스도교의 뿌리이자 요람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먼 욕심에 그 뿌리는 뽑히고, 요람은 짓밟혔다. 100년 전만 해도 중동 인구의 14%가 그리스도인이었다. 지금은 4%대로 주저앉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과 ‘아랍의 봄’, 그리고 이슬람 극단 무장조직 창궐이라는 일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박해를 받고 쓰러졌다. 특히 극단 무장세력 IS(이슬람 국가)가 활개친 이라크와 시리아의 경우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현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할 정도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가톨릭평화신문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두 번째 순서로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간다.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 들어서자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아일란은 2년 전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꼬마다. 모래사장에 잠든 양 엎드려 있는 아일란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의 비극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전 세계인의 양심을 아프게 찔렀다.

 

난민 여성이 곧 다가올 겨울 추위에 대비해 천막을 수선하고 있다.

 

 

아일란과 난민 캠프 아이들은 모두 시리아 북부 알레포가 고향이다. 알레포는 칼리프 제국 건설의 망상에 사로잡힌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해 초토화시켰다. 천막 골목에서 놀다 낯선 방문객을 보고 몰려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 이들은 친구 아일란의 죽음과 고향 소식을 모르는 듯하다. 이들에게는 당장 배고프고 추운 게 불만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다. 겨울에 대비해 찬바람을 막으려고 천막 귀퉁이에 못질하는 여인의 어설픈 손길에서 난민 생활의 고달픔이 느껴질 뿐이다. 

 

분쟁 지역의 난민촌 풍경이 다 그렇듯,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캠프의 대표격인 이브라힘(40)씨는 남자들 행방에 대해 “전쟁 중에 죽었거나,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거나, 아니면 시내로 날품팔이를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눈앞에 보이는 황량한 산등성이 너머 시리아 영토를 가리키면서 “기막힌 사실은 저기에 남아 싸우는 남편이나 아들이 지금 누구와 싸우는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니파 극단 무장세력과 시아파 정부군,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뒤엉켜 패권 다툼을 벌이는 내전의 현실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하지만 다 파괴된 데다 언제 제2, 제3의 IS가 튀어나올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흘레 외곽에는 난민 캠프가 50개 가까이 된다. 난민들은 기약없이 또 한번 눈을 맞으며 겨울을 나야 한다.

 

 

자흘레 외곽에 있는 난민 캠프는 50개 가까이 된다. 5, 6년 전 난민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올 때와 비교하면 모든 게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엔을 비롯한 비정부 기구들(NGO)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캠프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자흘레 변두리 산동네로 올라가 피란 보따리를 풀었다.

 

자흘레대교구(멜키트 동방가톨릭교회)의 난민지원사업 담당 사나 사미아씨는 “극단주의자들과 폭도로 돌변한 무슬림 이웃을 피해 도망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무슬림 캠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무슬림 난민은 시내와 캠프 어디든 들어갈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더욱이 산동네 빈민촌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유엔과 NGO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 고충이 더 크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사지(死地)에서 탈출한 그리스도인 난민 로나씨는 “그간 알레포에서 무슬림 이웃과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며 “하지만 2011년 내전 발발 직후 마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확성기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이웃 주민들이 폭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들의 배신과 이유 없는 증오에 몸서리가 쳐진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은 공포와 배신감, 피란 생활의 막막함으로 뒤범벅됐다.

 

자흘레대교구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민들 때문에 처음에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난민들은 시내 빌딩 주차장은 물론 대성당 마당에까지 천막을 쳤다. 긴급 구호 경험이 없는 대교구에 사업 방향을 가르쳐 주고, 지원해 준 곳이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재단이다. ACN은 지금도 난민 월세 주거비, 무료 급식소, 난민 학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나 사미아씨는 “ACN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교구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가리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여러 세력이 뒤엉켜 싸우는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은 수니파, 시아파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강대국들은 석유와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의 독재 정권을 두둔했다. 이에 대한 불만을 먹고 성장한 극단 무장세력은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불을 지르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세를 규합하는 데 쓰인 불쏘시개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다. 불의한 신념의 희생양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시리아만 하더라도 내전 발발 직전 국민의 6%를 차지하던 그리스도인은 현재 유서 깊은 ‘성경의 땅’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른다. 혹자는 2~3%라고 추정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짓밟은 그들의 눈먼 증오는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로 설명이 충분하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행할 때일수록 희열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가족 8명과 포격 뚫고 국경 넘은 모나 란다씨 가정

 

 

가족 8명과 함께 피란 온 그리스도인 난민 모나 란다(54)씨 손에 약봉지가 들려 있다. 자흘레대교구와 ACN에서 보태 준 돈으로 사온 남편의 심장약이다. 피란길에서부터 심장 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은 병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약을 달고 산다.

 

란다씨는 “IS 대원들은 아들을 구타하면서 IS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마을 소녀들을 끌고 갔다”며 “우리 가족은 그들 손에 죽고 싶지 않아서 포격을 뚫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피란길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여정과 다를 게 없었다”며 5년 전의 피란길 악몽을 떠올렸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란다씨가 인터뷰 중 울음을 터뜨리자 교구 봉사자가 위로하고 있다.

 

 

란다씨 가족의 생활은 ‘버티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 빈민가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지만, 수입은 아들 혼자 나가 벌어오는 돈이 전부다. 자흘레 시내에서 일하는 시리아 난민 남성의 하루 품삯은 20~30불(약 3만 원)이다. 그나마도 난민들 탓에 일거리가 줄었다고 반발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일감도 많지 않다.

 

 

ACN의 도움으로 월세 충당

 

란다씨 가족은 ACN이 교구를 통해 지원해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낸다. 제대로 된 식사는 무료 급식소 ‘자비로운 요한의 집’에 가서 먹는 점심이 유일하다. 그는 “하느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쟁 전에는 가난해도 행복했는데…

 

그는 시리아 고향 얘기를 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레도씨는 내전 발발 전에 채석장에서 일했다. 가난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놔둔 채 도망쳐야 했다. 

 

그리스도인이라서 박해받은 데 대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서 전쟁 중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며 “한국에서 온 손님과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KOREA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홈페이지: www.churchinneed.or.kr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29일, 글 · 사진 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2) 신앙의 요람에서 지난 10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주인 잃어버린 믿음의 땅

 

 

- 한 남성이 지난해 11월 이라크 모술에서 IS가 패퇴하자, 시내 근처 알-쿠브라 성당에 들어가 그들이 남긴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CNS 자료사진]

 

 

개신교 선교사들이 1860년대 어느 날, 오랜 사막 여행 끝에 이집트 중부 아슈트에 도착했다. 그들은 원대한 선교 열망을 품고 그 지역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콥트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소.”

 

지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여기서 1800년째 그분과 살고 있는데…. 그러는 당신네는 언제부터 그분을 알았소?”

 

콥트인은 이집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 지역 지도자들은 콥트 교회 주교들이었다.

 

 

성경의 무대, 중동 

 

서구 사회에서 중동 교회의 뿌리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일화다. 주교들 말대로 그들은 1800년 동안, 즉 그리스도교 태동기부터 사막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초세기에 지중해 주변에 이른바 ‘4개 기둥’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ㆍ안티오키아ㆍ콘스탄티노플ㆍ로마가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로마를 제외한 3개가 중동에 있다. 사실 중동이라는 용어는 유럽인들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까운 동쪽 지역을 근동(近東), 중간 지역을 중동(中東), 한국과 일본처럼 맨 끝에 있는 지역을 극동(極東)이라고 불렀다.

 

전쟁은 건물은 물론 인간의 심성까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알레포에서 정부군 병사들이 전복된 탱크에 올라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CNS 자료사진]

 

 

고대 중동은 대하드라마 같은 신구약 성경의 역사가 펼쳐진 무대다. 아브람이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경로는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터키, 레바논을 거쳐 이스라엘에 가서 닿는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도시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시리아와 레바논, 요르단에 퍼져 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강생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도 중동 땅이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무대도 마찬가지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중동 교회가 “그리스도 신앙의 여명기부터 줄곧 은혜로운 이 땅의 나그네였다”고 말했다.

 

 

전쟁과 학살, 시리아 신자 100만 명 피란 

 

하지만 은혜로운 땅의 나그네들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 IS(이슬람국가)를 비롯한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이라크 북서부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 활개치는 동안 그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초토화됐다. 대표적인 곳이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이라크 북부 니네베 평원과 시리아 중서부 홈스(Homs)다. IS는 2014년 니네베 평원으로 진격한 뒤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교회를 불태웠다. 며칠 만에 약 10만 명이 피란 행렬에 올라 뿔뿔이 흩어졌다. 미 국무부까지 나서 그들의 만행을 ‘집단 학살’(genocide)이라고 비난했다.

 

시리아의 경우 그리스도인 2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그들의 광란을 피해 피란길에 올랐다.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인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6000년, 그리스도인으로 1600년 이상을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언어인 아람어 전례를 지금까지 지켜 온 이들이다.

 

시리아 난민촌 아이가 누나 품에 안겨 울다가 큰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기자를 힐끔 쳐다본다. 난민 캠프 생활 5년째, 이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김원철 기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길이 없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은 150만 명에서 30만 명, 시리아는 7%에서 2%로 줄었다는 추산만 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인 없는 그리스도교 요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시리아 라타키아 교구(마로니트 가톨릭)의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취재진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건너왔다. 라타키아는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 시리아 각지에서 난민들이 모여든 도시다. 이라크는 한국인 여행 금지 국가로 묶여 있어 부득이 쉬베르 주교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국경 부근에서 검문소를 여러 번 통과한 것 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교구 내 홈스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전역에서 난민들이 모여들어 교구 상황이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전쟁의 고통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똑같이 겪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향을 떠났다”고 통탄했다. 

 

그렇다고 중동의 그리스도인 감소를 IS 같은 무장 세력의 박해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IS가 창궐하기 훨씬 이전부터 차별과 박해에 못 이겨 고향을 등지기 시작했다. 중동 교회는 4, 5세기에 분열을 겪었다. 이후 이슬람 장벽에 막혀 사실상 고립된 채 살아왔다. 그리스도인이건 유다인이건 중동에서 소수 종교인은 늘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딤미(Dhimmi)’라고 불렸다. 비무슬림을 가리키는 차별적 용어다. 

 

그래도 보호비 명목의 특별 세금(jizya)을 내면서 ‘보호’받고 살던 때가 나았을지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고, 이후 유럽 열강의 입맛대로 중동이 개별 국가로 재편되면서 도래한 독재 통치 시기에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이어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주의 열망이 중동을 뒤덮자 중앙 권력에 균열과 공백이 생겼다. 이 틈을 노리고 등장한 집단이 극단주의 무장 조직들이다. 그들의 꿈은 서구 열강이 그어놓은 국경선을 지워버리고, 오스만 제국처럼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망상으로 끝나가고 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 남은 중요한 문제는 그들의 광기를 피해 신앙의 요람을 떠났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레바논에서 만난 난민들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고향 땅에서 그리스도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난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다 버리고 나와 여기서(피란지) 살려고 5년째 발버둥 치고 있는데, 모든 것이 파괴된 고향에 가서 무엇을 하란 말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시리아 홈스에서 난민 구호 활동을 벌이다 잠깐 레바논 베이루트로 나온 마지드 알자 홈(27)씨가 그나마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중동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박해로 인해 우리의 신앙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남아서 고향과 교회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들은 집과 교회를 다시 지을 것입니다.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교황청은 이미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등과 함께 ‘니네베 재건 사업’에 착수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5일, 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3) 1600년 신앙을 지켰다 시리아 교회


차별 · 박해 딛고 무너진 성당 다시 짓는 그 날까지 ‘전진’

 

 

종교를 넘어 모든 시리아 청년들에게 ‘아버지’처럼

시리아 내전의 아픔을 얘기할 때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츠 반들라트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6년 시리아에 도착해 반세기 가까이 그 나라를 사랑했다. 이슬람교도들까지 그의 가난과 겸손, 단순함에 반해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칭송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일 년에 몇 차례 젊은이들을 이끌고 국토 대장정 길에 올랐다. 매번 수백 명이 참가했는데, 거기에는 무슬림 젊은이도 많았다. 프란츠 신부와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종교적 차이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 사랑을 얘기했다. 또 시리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줬다. 그리스도교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1600년 신앙 전통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의 별명은 ‘계속 전진’(keep going).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 어깨를 툭 치면서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앞장섰다.

그는 극단주의 무장 조직이 홈스(Homs)로 진격했을 때 피란을 가지 않고 홀로 성당을 지켰다. “그리스도인만 도우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며 성당 문을 열어놓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내줬다. 하지만 2014년 4월 7일, 그의 선한 행동을 시샘하던 ‘악마들’이 성당에 난입해 그를 살해했다. 76회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들라트는 나의 형제”라며 “형제의 죽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은 내 형제처럼 고난을 겪으면서 죽어가는 시리아 국민들을 떠올리게 한다”(4월 9일 일반알현 중)고 애도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포위에서 벗어난 시리아 홈스(Homs) 인근 시가지. 한 소년이 부서진 유모차에 물통을 싣고 동생을 태워 물을 구하러 가고 있다. [CNS 자료사진]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굳건함

프란츠 신부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여성 마지드 알자 홈(27)씨는 그의 죽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통에 사촌 동생과 많은 친구를 잃었지만, 아버지 신부의 죽음이 가장 큰 슬픔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무장 조직의 포위가 곧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아온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음이었다. 신부님 가르침대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 홈스의 난민구호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 구호센터에서 일한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지원으로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총을 들지 않고, 무슬림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난민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구호센터로 몰려온다”고 말했다. 또 “요즘은 전기가 24시간 들어오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며 내전이 끝나가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드씨와의 만남은 취재진에게 행운이었다. 시리아에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 막막했는데, 그가 국경을 넘어 레바논 베이루트까지 달려왔다. 3명이 택시를 150달러에 전세 비용을 나눠냈다고 했다. 그가 부담한 50달러(5만 6000원)는 요즘 시리아에서 남성의 한 달 봉급과 맞먹는 액수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만난 시리아의 그리스도인 난민들. 여성이 마지드씨이고, 그의 오른쪽에 있는 청년이 건축학도 엘리에씨다. 김원철 기자.

 

 

“홈스 일대에서는 알카에다 분파인 알 누스라(Al Nusra)가 맹위를 떨쳤다. 4개월 전에도 전투가 있었다. 포위와 고립,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통곡은 일상이다. 포위된 동안 그리스도인 여성도 히잡(이슬람 여성이 쓰는 헤어 스카프)을 써야 했다.”

시리아는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복음의 땅이었다. 4세기 은수자 성 마론(St. Maron)의 영향으로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들은 모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이후 중동이 서서히 이슬람화하는 중에도 그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1600년 동안 이어진 차별과 박해, 심지어 대량학살에도 쓰러지지 않은 이들이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이다. 아랍 세계에서 아시리아인은 중동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통했다.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마지드씨 소개로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온 그리스도인 난민 엘리에(26)씨를 만났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엘리에씨는 “알레포는 집과 건물 80%가 무너졌다”며 “고향에 돌아가서 집과 교회를 다시 짓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그나마 살아 있기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드씨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맞아. 우린 ‘계속 전진’하는 거야.”

 

 

시리아 라타키아 교구장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

 

“이 광대한 이슬람 땅에서 누가 복음을 지키고, 전할 수 있겠습니까.”

라타키아교구(마로니트 가톨릭)의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땅에 남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기자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몰아 국경을 통과해 베이루트에 막 도착한 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교구 내 해안도시 타르투스가 IS 공격을 받은 이튿날 “난민을 돕던 신부와 신자들이 지금은 (사망한) 신부 시신을 묻고 있다”며 참담한 상황을 전해준 바 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은 정치적 이익과 지역 패권을 노린 진흙탕 싸움일 뿐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서구 열강이 갈등의 씨앗을 뿌렸고, 무기와 오일을 바꾸고, 여전히 지역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각기 다른 셈법으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쟁은 수많은 원인의 결과다. 유럽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시리아 내전을 끝낼 수 있는데, 끝낼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아직(Not Yet)’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힘없는 이들이 그들 싸움의 고통을 계속 떠안고 산다.”

이어 “병원과 학교가 가장 시급하다”며 “우리 교구는 지난달에도 ACN로부터 5만 달러(5500여만 원)를 받아 100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교육만이 시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학교를 지으려는 이유는 무슬림 아이들을 개종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슬람 사회에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을 심어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은 복음 이전에 인성교육과 평화의 기초 원리다. 극단주의자들은 그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와 이념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본다. 아이들이 복음적 가치를 알아야 시리아의 평화가 가능하다.”

그는 “행동이 말보다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기에 난민들을 묵묵히 돕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며 “한국 교회가 시리아의 미래(교육 사업)를 건설하는 일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12일, 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4) 총 맞은 십자가, 이라크 교회

 

쓰러진 십자가 다시 세우려는 그들에게 기도와 관심을

 

 

- 지난 4월 다에시가 장악하고 있던 모술을 탈환한 정부군과 시민들이 성 조지 수도원 인근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있다. 서서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리스도인 난민들은 삶을 재건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CNS 자료사진]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실상을 취재하려면 이라크와 시리아 현장에 가야 하지만, 한국 정부는 두 나라를 모두 여행 금지 국가로 묶어놨다. 다행히 독일 출신인 고통받는 교회 돕기 한국지부(ACN-Korea)의 요하네스 클라우자 지부장이 지난해 ACN 국제본부 관계자들과 이라크 아르빌을 방문해 폐허 현장을 둘러보고,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담아 왔다. 또 그리스도인 난민들의 고향 귀환을 돕기 위해 지난 9월 로마에서 열린 ‘니네베 평원 재건 프로젝트’ 회의에 참가했다. 클라우자 지부장의 이라크 방문기와 회의 참가기를 연속해서 싣는다. 

 

니네베 평원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한 병사는 며칠 전 텔레스코프 근처 참호에서 미 해병대 병사가 저격당했다며, 다에시(ISIS,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아직 가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그리스도교 마을인 텔레스코프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먼지와 유리 조각, 쓰레기만 나뒹굴었습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너진 교회에 들어서자 목이 잘린 예수상이 보였습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예수상을 집어 들었을 때, 많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테러 집단은 우리가 거룩하게 여기는 것을 파괴했습니다. 총 맞은 십자가는 박해받는 이라크 교회의 상징이 된 지 오래입니다. 니네베 평원에서 다에시는 패퇴했습니다. 하지만 평화도, 주민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곳 젊은이들은 한 번도 평화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1950~1960년대 쿠르드 봉기 시대에 성장한 세대의 자녀들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사막의 폭풍 작전’과 ‘사막의 여우 작전’을 비롯한 전쟁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2000년대 미군이 이끄는 다국적군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자, 이라크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의 온상이 되었고, 결국 다에시 같은 집단이 출현했습니다. 결국 2014년 여름, 다에시는 모술과 니네베 평원을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왜곡된 이슬람 교리를 강요했습니다. 또 개종을 거부하는 소수 민족을 쫓아내거나 죽였습니다.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모술대교구장 요한나 페트로스 무슈 대주교가 다에시(ISIS)로부터 해방된 바르텔라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파괴된 성모상을 들고 나오고 있다.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의 국제 협력자인 타베트 유시프 신부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2014년에 마을을 탈출할 수 있었던 건 기적입니다. 모든 가정이 빠져나가고 2시간 만에 다에시가 들이닥쳤으니까요. 다에시는 십자가 등 그리스도교 상징물을 닥치는 대로 훼손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체를 파괴한다는 망상에 빠져 그런 행동을 했을 겁니다. 교회가 상당히 부서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의 영광은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차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라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았습니다. 일찍이 1세기에 토마스 사도가 이곳에 그리스도교를 전했습니다. 모술과 니네베 평원의 그리스도인은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합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 예언자 요나를 보내신 니네베가 바로 오늘의 모술입니다. 다에시는 이런 그리스도교 마을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파괴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고 그저 종교적, 정치적 다툼의 희생양일 뿐인 그리스도인 등 소수 민족은 모든 것을 잃은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피해는 컸습니다. 2003년에 신자가 150만 명 정도 되었지만, 2016년에는 30만 명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살해당한 사람도 많지만, 다수는 요르단과 레바논 등지로 피신했습니다. 다른 나라로 피신한 난민들은 유럽과 캐나다로 건너가 삶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2014년 여름에만 약 12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술과 니네베 평원을 떠났고, 9만 명은 여전히 아르빌에서 국내 실향민(IDP)으로 살고 있습니다. ACN은 지역 교회를 통해 이 사람들을 도와준 첫 구호단체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약 3420만 유로(452억 원)를 지원했습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아르빌의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님은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전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와르다 대주교님과 ACN이 함께 세운 의료시설에 큰돈을 보내셨습니다. 

 

아르빌에 사는 그리스도인 9만 명은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타와피크 사콰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카라코쉬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넓은 땅에서 가축을 길렀고, 작은 호텔도 운영했습니다. 풍족한 삶이었죠. 차를 타고 카라코쉬를 떠나던 그 날, 저와 아이 네 명이 다에시에 납치당했습니다. 저희는 예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생겨난 후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생존했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카라코쉬에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약탈자들에게 고향을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필자는 독일인입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규모 원조 사업, 곧 ‘마샬 계획’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ACN은 이라크 교회 지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시대의 마샬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콰트와 유시프 신부님 같은 국내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스도교 마을을 재건하도록 돕는 계획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너진 집과 교회를 다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인 마샬 계획’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들을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2000년 신앙의 역사를 자랑하는 니네베 평원에서 교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총 맞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라크의 형제자매들에게 관심과 기도와 실제적 도움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키레네 사람 시몬이나 베로니카 성녀 같은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해야 충분하게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중동과 로마를 방문하고 오는 길에서 저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19일, 요하네스 클라우자(고통받는 교회 돕기 한국지부장)]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5) ‘뿌리로의 귀환’ - 니네베 평원 재건 프로젝트


9만 그리스도인, 분노 뽑아내고 ‘올리브 나무(영원한 평화의 상징)’ 심고파

 

 

니네베 재건위원회(NRC) 로고는 니네베 땅에 뿌리내린 십자가입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니네베 평원에 굳건히 서 있는 십자가는 어떤 바람과 도전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는 이라크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니네베 재건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니네베 재건위원회는 난민들과 한마음으로 협력하면서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00년 전통을 지닌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니네베 평원에 무사히 돌아가 다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다에시(ISIS)가 드디어 모술에서 패퇴했습니다. 이라크 북부 아르빌로 피란을 간 그리스도교 가정 1만 2000가구(약 9만 명)는 이 순간만을 고대했습니다. ACN은 전쟁 초기부터 지역 교회와 손잡고 의식주를 비롯해 의료와 교육, 사목적 도움 등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니네베 재건위원회(NRC) 법률 자문위원인 스티븐 라셰는 니네베 평원의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도움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ACN이 나서지 않았다면 니네베 평원의 그리스도인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을 거예요. 아무도 이들의 상황을 몰랐을 겁니다.”

 

ACN이 나눠준 올리브 나무를 받아든 그리스도인 난민들. 고향 마을에 돌아온 난민 가정은 집 마당에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를 심는다.

 

 

이라크인이 고향 니네베로 돌아가도록 도와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국제 ACN 총재 마우로 피아첸자 추기경이 주관한 ‘뿌리로의 귀환 : 니네베 평원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국제회의가 지난 9월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지역 교회 총대주교와 추기경, 주교와 교황 대사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라셰는 이라크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닥친 상황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이라크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 않으면, 이들은 니네베 평원을 영원히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외부 기관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피해가 너무나 커서 스스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옥 1만 3088채가 전소 또는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들 집을 차지할 것입니다. 라셰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니네베에 그리스도인이 존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파롤린 추기경은 연설에서 “교황님은 정든 도시와 마을을 떠나야 했던 수천 가정의 비극적 처지를 깊이 염려하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다에시의 잔인한 폭력을 피해 탈출한 그리스도인과 다른 소수 민족이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웁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오랫동안 무슬림 내부 갈등 중재

 

교황님은 또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띄워 이들이 ‘평화와 화해와 발전을 만들어 낼’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동의 그리스도인은 중동의 평화와 안정과 다양성을 높입니다.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은 무슬림 내부의 갈등을 중재했고, 문화와 사회복지, 특히 교육 분야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사실 온건한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깊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어떻습니까? 라셰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일을 논의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각국 정부는 미온적입니다. 그들은 비용과 이익만 따지고 있습니다. 국제 구호기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현장 활동가들은 기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긴급 구호를 요청하면 관료들이 와서 현장 조사만 하고 돌아가고, 정작 필요한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더 부정적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피란을 떠났던 그리스도인 난민과 성직자들이 그리스도인의 도시 카라코쉬에서 십자가와 ACN이 나눠준 올리브 나무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재건 사업 본격 시작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함께 일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NRC는 당장 일을 착수하기 위해 기금과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을 돕겠다는 관심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NRC는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삶을 시작하려면 대략 2억 500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미 2017년 5월 공식 재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르텔라와 카렘레스, 카라코쉬 같은 그리스도인 밀집 지역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ACN 중동지역 사업 책임자인 안제이 할렘바 신부님은 ACN 설립자인 베렌프리트 판 슈트라텐 신부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우리가 이 만행을 끝내는 일을 돕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할렘바 신부님은 특히 강대국 대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 살아생전에 성경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도교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다 사라질 겁니다. 이 사람들의 미래는 우리 손에도 달려 있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책임을 물으실 겁니다.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까?”

 

ACN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각 가정에 작은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할렘바 신부님은 이 선물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어린 올리브 나무를 받아 자신의 집에 심게 됩니다. 올리브는 영원한 평화의 상징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땅을 깊이 파야 하고, 이웃에게 다가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폭력 행위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서 분노를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피란민 중 24% 귀향, 나머지 76%를 위한 집 필요

 

NRC 도움으로 10월 중순까지 벌써 4739 가정(24%)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피해 건물 1만 3088채 가운데 현재까지 13%(1738채)가 보수를 마쳤습니다. 현재 보수 중인 건물은 133채입니다. 아직 1만 712채가 남아 있습니다. 

 

이 집을 함께 다시 지읍시다. 한 채씩, 한 채씩 말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26일, 요하네스 클라우자(고통받는 교회 돕기 한국지부장)]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6 · 끝)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2000년 믿음의 땅, 성당 종소리 다시 크게 울려야

 

 

-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동 그리스도인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을 람보르기니를 축복한 뒤 서명하고 있다. [바티칸=CNS]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모 자동차 회사가 기증한 세계적 스포츠카 람보르기니를 축복만 하고는 바로 소더비 경매에 부쳤다. 경매 수익금은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니네베 평원 재건 사업을 추진하는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등에 전달하려는 게 교황 뜻이라고 바티칸이 밝혔다.

 

교황은 지난 8월에도 “동족상잔의 전쟁과 종교적 광신주의 때문에 집을 포기하거나 혹은 강요 때문에 조국을 떠나야 했던” 중동 그리스도인들 처지를 상기시키고 “그들의 고통에 눈을 감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콜럼버스 기사단 총회에 보낸 서한 중에서) 교황에게는 이슬람 극단 무장 조직의 박해로 목숨을 잃거나 난민 신세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아픈 손가락일지 모른다.

 

이슬람이라는 대양(大洋)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레바논에서 만난 프리아스 벤암(47, 이라크 바그다드 성 프란치스코 본당) 신부가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있는 ‘자비로운 성 요한’ 난민 급식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사시간에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앙트완(성 프란치스코회) 수사는 “난 돈이 없어 음악으로나마 난민들 아픔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전쟁이 없었던 때는 단 10년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죽었다고 하면 슬펐고, 어디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하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무덤덤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잊혀 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 더 두렵다.” 

 

150만 명에 달하던 이라크 그리스도인 수는 현재 30만 명쯤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벤암 신부는 “15만 명 정도 남았다”며 “돈과 석유, 정치적 다툼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붕괴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점령지의 90%를 잃고 지하 테러 조직으로 전락한 이슬람국가(IS)는 정치적 야욕과 종교 광신주의가 결합하면 어떤 참극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재앙의 직격탄은 힘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맞았다. 

 

최대 격전지 시리아 알레포에서 버티다 두 달 전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도착한 가톨릭 난민 바샤르(32)씨.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온 그는 “알레포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너무 늦게 탈출해 유럽으로 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내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IS가 물러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1년 안에 새로운 무장 조직이 등장할 것이다. 여태껏 그랬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가족은 다음날 보이지 않았다.

 

- 리아 국경과 인접한 도시 자흘레에 있는 성 리타 초등학교. 재학생의 3분의 1이 난민 가정 아이들이다.

 

 

교황청과 ACN이 추진하는 니네베 평원 재건 사업은 2014년 IS가 벌인 피의 광란을 피해 탈출한 그리스도인들의 재정착을 돕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니네베와 카라코쉬는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성경의 땅이다. 이 지역에서 2000년 가까운 교회 역사상 처음 미사가 끊기고, 성당 종소리가 멎었다. 재건 사업은 미사를 이어가고, 무너진 종탑을 세워 다시 종을 울리자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자흘레대교구장 이삼 다위시 대주교는 중동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라지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이 중동에서 떠나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서방과 아랍 세계, 때로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다리가 돼 주었다.”

 

레바논 맨발의 가르멜수도회 관구장 레이몬드 신부는 “중동 교회는 이 정도 시련에 쓰러지지 않는다”며 “우리가 7세기 이슬람 발흥 때부터 지금까지 숱한 시련을 겪는 동안 하느님은 아름다운 선물도 많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형제들이 부축해 주면 시리아와 이라크 교회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과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신앙 형제들의 고통에 침묵한 채 국제 사회가 그들을 도와주기 바라는 것은 위선이다. 

 

프랑스의 한 자선단체가 IS에 의해 파괴된 이라크 에르빌 외곽 에인카와 마을에 루르드 성모상 15개를 보냈다. 그곳 그리스도인들은 성당에 안치하기 전에 성모상을 앞세우고 마을을 행진했다. 그 광경은 복음의 증언이었다. 

 

“네 앞날은 희망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예레 31,17)

 

 

안제이 할렘바 신부(ACN 중동 담당) - "이라크 · 시리아 교회 재건에 함께해 주세요"

 

 

“특별한 우산을 쓰고 다녀서 총 맞을 걱정 같은 건 안 한다.”

 

알레포에서 몇 시간 전 레바논으로 돌아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중동 담당 안제이 할렘바 신부. 그는 위험하지 않았느냐는 안부 인사에 ‘성령의 우산’ 얘기를 하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옆집 드나들듯 하면서 지원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중대한 결정의 순간이다. 그리스도교 요람인 두 나라 교회를 방치하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재건해 회복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이다. 우리 신앙의 뿌리를 더는 잃을 수 없다.”

 

 

차별과 박해,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 

 

그는 사도행전과 요한 묵시록의 무대 터키(소아시아)를 예로 들었다. 비잔틴 종교와 문화가 만발했던 소아시아 지방은 15세기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점령된 후 서서히 쇠락해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다. 

 

“100년 전만 해도 터키 인구의 23%가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0.2%(로마 가톨릭은 0.06%)밖에 남지 않았다. 이슬람의 차별과 박해,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다. 그런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다.”

 

 

교회 재건축과 청소년 교육 중요

 

그는 교회 재건축과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에 로마 가톨릭을 비롯해 칼데아ㆍ시리아 동방 가톨릭 교회 주교들에게 건축비를 지원할 테니 성당을 하나씩 선정해 공사를 시작하자는 얘기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성당은 희망의 표징이다. 이라크만 하더라도 성당 350곳이 완전 또는 부분 파괴됐다. 난민들이 성당 건축 소식을 들으면 희망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ACN은 차비가 없어 학교에 못 가는 그리스도인 대학생들도 돕는다. 그들이 교회와 사회를 재건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신의 부모 형제를 죽인 사람들과의 화해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용서와 화해라는 훌륭한 덕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울분을 토로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주님의 기도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부분을 입이 아니라 삶으로 바쳐야 한다고 타이른다”고 말했다.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신자들을 향해 “고통받는 그들 안에 주님이 계신다”며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행렬에 기도와 나눔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3일, 글·사진=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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