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7성사ㅣ 준성사

[병자성사] 아픈 이들의 참다운 이웃, 교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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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26 ㅣ No.221

아픈 이들의 참다운 이웃, 교회 공동체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셨고, ‘헐벗고 병든 이들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4-45 참조)라고 말씀하였다.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의 참다운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강도들이 달려들어 초주검을 만들어놓고 가버렸다. 지나가던 사제도 레위도 그냥 지나쳤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다가갔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여관주인에게도 잘 돌보아 주기를 부탁했다(루카 10, 29-37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병자성사가 담고 있는 신비의 깊이를 완전히 드러내 주는 것으로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예로 들었다. 교황은 갑자기 봉변을 당한 어떤 사람을 갑자기 질병의 고통에 떨어진 어떤 사람으로 묵상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다. 사마리아인은 봉변을 당한 이를 여관주인이 잘 돌보아 주기를 부탁한다. 교황은 사마리아인의 부탁을 받은 여관주인이 바로 ‘교회, 그리스도 공동체,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고통을 겪는 이들을 날마다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그들에게 계속해서 전달해 주고 돌보아 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신앙생활의 핵심」, 바오로딸 참조).

 

교황의 이 말은 우리가 몸과 영혼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를 당부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 53,4)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이미 아픈 이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병자를 고쳐준 예수님의 행위는 몸과 영혼의 온전한 치유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치유는 ‘당신 부활을 통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예고한 것’이다. 아픈 이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죄의 속량’과 그분의 수난 고통에 자신의 고통을 결합하고 그분을 닮아가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05항 참조).

 

“앓는 이들을 고쳐 주어라”(마태 10,8)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병자성사를 거행하는 교회 공동체는 아픈 이들뿐만 아니라 아픈 이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병자성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는 아픈 이들이 받는 고통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 고통에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를 주고,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평화를 간절히 구하는 참다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

 

 

몸과 영혼에 생기를 주는 병자성사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신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 1-4 참조).

 

시편 저자가 고백했듯이 질병의 고통으로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가는 사람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위로와 평화를 잃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는 병자성사를 통해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러한 위로와 평화를 아픈 이들에게 준다. 병자성사의 도유예식에 사용되는 ‘기름’은 유대의 전통 안에서 ‘왕’(Messiah, 기름부음받은 자)과 같이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행하던 의식에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 또한, 기름은 고대부터 보편적인 치료 약이자, 상처를 낫게 하는 약으로도 쓰였다(루카 10,34 참조).

 

초대 교회는 공동체 안의 아픈 이들을 위해 많은 신자가 함께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다. “앓는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고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름을 바르십시오. 믿음의 기도가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야고 5,14-15 참조). 또,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야고 5,16) 라며 아픈 이들과 교회 공동체가 서로 긴밀히 협조하기를 원했다.

 

서로를 위한 기도는 내적으로 아픈 영혼을 일으켜 세워주며, 영혼의 치유는 몸에도 생기를 준다. 아픈 이는 사제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고백하며 성체를 모신다. 그리고 공동체의 따뜻한 기도 안에서 새로운 힘을 받는다. 침체하였던 몸과 영혼이 하느님의 영안에서 생기를 얻는다. 따라서,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만 아니라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이들이 받을 수 있으며, 병의 회복 후에도 다시 중한 병이 걸리면 받을 수 있다(「전례 헌장」, 73항 참조).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하기

 

고통 받으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 막달레나, 요한 사도가 함께했다(요한 19,25-26 참조). 바오로 사도도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라고 했다.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도 십자가 밑의 요한 사도처럼, 바오로 사도처럼, 사마리아인의 부탁을 받은 여관주인처럼 아픈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아픈 이들의 고통이 서로를 위한 구원의 몸짓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마음과 정신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다. 내 가정과 주변에서 혼자 아파하는 이가 없는지 관심을 기울여보아야 할 것이다. 아픈 이를 간호하느라 지친 가족들에게 교회 공동체의 작은 관심과 배려는 큰 위로가 된다.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 같이 사회적 · 경제적 어려움, 노인성 질병에 노출된 분들에게도 관심과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 실천적 방법으로 매주 만나는 소공동체 모임에서 지역의 아픈 이들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해주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의료센터나 요양시설에서 환자들을 직접 만날 수도 있다. 병자성사를 원하는 분이 있다면 사제와 교회 공동체에 알려서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도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율법 교사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준다. 참다운 이웃은 갑작스러운 질병을 통해 큰 고통에 빠진 이들 안에서 아파하는 그리스도를 보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아픈 이들도 병자성사와 이러한 이웃을 통해,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고 ‘어둠의 골짜기’를 헤쳐 갈 힘을 받을 것이다.

 

[외침, 2017년 9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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