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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크루즈로 떠난 성지순례4: 터키 에페소, 그리스 로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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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705

[예수님을 따라 성인들을 따라] 크루즈로 떠난 성지순례 (4)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바오로 사도 음성 울려 퍼져

 

 

‘새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휴양도시, 터키 쿠사다시 항. 성수기에는 외국인 관광객만 10만 명 이상이 찾는 지역. 에페소 유적지 등과 인접해 있어서 고대 유적지들을 방문하기 위한 거점이 되고 있다.

 

 

에페소

 

코린토 아테네에 이어진 순례 일정은 터키 에페소 였다. 에페소 순례를 위해 순례객들은 ‘새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휴양도시, 쿠사다시 항에 내렸다.

 

성수기에는 외국인 관광객만 10만 명 이상이 모여든다고 하는 곳. 5만여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에페소 유적지 등과 인접해 있어서 고대 유적지들을 방문하기 위한 거점으로 알려진다. 항구는 정박한 크루즈들의 관광객들을 맞기 위한 버스들, 그리고 유적지로 관광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크루즈 승객들로 복잡한 모습이었다. 그런 만큼 이른 아침 시간이었음에도 활기가 넘쳤다.

 

에페소에서의 일정은 에페소 유적지 방문, 성모마리아의 집과 사도 요한 성당 순례로 짜여졌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중 하나인 에페소는 사도 바오로가 제2차 전도여행(사도 18,19~28) 때 잠시 머물렀고 또 제3차 전도 여행 때는 2년 3개월 동안 기거하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장소다. 이곳에서 코린토서 갈라티아서를 썼으며 옥중서간 필리피서 필레몬서도 집필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오로 사도 당시의 에페소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고 동서양을 잇는 상업과 학문이 활기를 띠던 곳이었다. 그는 27개월여를 머무르면서 이곳을 선교 발판으로 삼았다. 에페소 유적지 등을 둘러보며 여러 지역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했던 에페소의 장소적 이점을 활용, 하느님의 말씀이 널리 퍼져갈 수 있기를 희망했던 바오로 사도의 노력과 활동 모습이 이천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터키 에페소유적지 모습. 한때 2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던 대도시 에페소는 로마시대 당시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았다. 현재의 에페소 유적지는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에페소는 한편 성모 마리아의 집 그리고 사도 요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 요한에게 성모님을 맡기셨다. 요한은 박해를 피해 성모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에페소까지 피난 와서 지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은 성모님께서 살다가 돌아가시고 승천하셨다는 장소다.

 

성모 마리아의 집이 발견될 수 있었던 경위는 독일 출신 카타리나 엠메릭카 수녀가 12년간 병상에 누워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했는데 독일의 가톨릭 시인 브렌타노가 이를 채록하여 책을 펴냈고, 그 책을 읽은 융 신부와 일행이 에페소 주변 산야에서 채록한 내용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장소를 찾아내면서 오늘에 이른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이 집에서의 정기적인 전례 거행을 허락했고, 1967년과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각각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다.

 

 

터키 에페소의 성모 마리아의 집. 요한은 박해를 피해 성모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에페소까지 피난 와서 지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은 성모님께서 살다가 돌아가시고 승천하셨다는 장소다.

 

 

성모 마리아의 집을 순례한 날은 마침 어버이날이었다. 신문사측에서 마련한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순례객들은 자신들의 부모님을 기억하며, 또 부모가 된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 마음모아 미사를 봉헌했다.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언한 것이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였다는 것을 되새겨 볼 때, 에페소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성모성월 그것도 어버이날에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우연’ 이었다.

 

사도 요한과 관련해서는 요한묵시록에 에페소 신자들을 향해 질책했던 요한 사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묵시 2,1~7). 그는 성모님을 모시고 에페소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서는 에페소 서쪽 언덕 뒷산에 묻혔다고 한다. 요한이 묻힌 곳은 4세기에 목조 성당이 건축되었다가 유스티아누스 황제(527~565) 때 거대한 대성당으로 증축되었다. 그러나 8세기 때 이슬람의 침입으로 파괴돼 오늘날에는 폐허위에 유적의 자취들만 남기고 있다.

 

사도 요한 성당 유적지. 4세기에 목조 성당이 건축되었다가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거대한 대성당으로 증축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침입으로 파괴돼 오늘날에는 자취들만 남아 있다.

 

 

로도스

 

사도 바오로는 3차 전도여행 시 에페소 등을 방문한 후 야고보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그리스의 로도스와 시리아의 티로를 방문한 것으로 기록이 나온다.

 

그리스 로도스 항구 전경. 사도 바오로는 3차 전도여행 시 에페소 등을 방문한 후 야고보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그리스의 로도스와 시리아의 티로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는 그들과 헤어져 배를 타고 곧장 코스로 갔다가, 이튿날 로도스를 거쳐 거기에서 다시 파타라로 갔다.”(사도 21, 1)

 

그리스 도데카니사 제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알려진, 에게해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지역으로 꼽히는 고대 도시 로도스 역시 사도 바오로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로도스섬 동쪽에 있는 고대 도시 린도스의 항구는 사도 바오로가 도착했던 지역으로 알려진다.

 

린도스 지역은 로도스 섬에서도 구시가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지역이다. 지중해의 심볼이자 로도스의 백미로 불려 진다는데, 에머랄드 빛 바다를 배경으로 산비탈을 빼곡이 메우고 있는 하얀색 집들이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마을 정상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이곳에는 섬의 수호신인 아폴론의 신전터가 남아 있었다. 구불구불한 돌계단을 올라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오르니 아름다운 옛 항구터와 푸르디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오로 사도가 섬에 도착해서 배의 닻을 내리고 머물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로도스 섬 린도스 지역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 전경.

 

 

한 순례객은 그 정취와 사연에 취해 시를 읊기도 했다.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갖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역경을 견디어낸 바오로 사도의 인생 역정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로도스 구시가지는 1300년경 조성된 성 요한 기사단의 거리가 유명하다. 1309년부터 1523년까지 로도스를 지배하며 성벽 요새를 만들고 거대한 요새 도시를 만든 성 요한 기사단은 11세기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생겨난 기사수도회. 십자군 원정 때 순례자를 보호하고 병자를 간호하는 활동을 했다. 기사단의 거리를 걷다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도 바오로의 전교 여행 전체를 들여다 볼 때 로도스 지역은 노정의 거의 막바지였다. 이후 사도 바오로는 로마로 갔다가 크레타 섬 등에서 머물다 몰타에서 3개월을 지낸 후 다시 로마로 가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게 된다. 약 1만6000㎞의 전교 여행으로 추정되는 사도 바오로의 여정은 당시의 로마 제국 방방곡곡에 이르는 순회 선교였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3,20)

 

멀고 험했던 바오로 사도의 도정이 되뇌어졌다.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라고 고백했던 음성과 열정이 쩌렁쩌렁 마음 안에 깊게 울려져 왔다. 그 열렬한 신앙을 따라 배우고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일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1년 6월 26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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