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24: 5세기 (5) 위-마카리우스와 메살리아주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94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4) 5세기 ⑤ 위-마카리우스와 메살리아주의


베일에 싸인 은수자와 기도 생활만 강조한 영성 생활

 

 

고대 말엽에 위(僞)-마카리우스(Pseudo-Macarius, 4세기 후반~5세기 초 활동)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메살리아주의(Messalianism)’라고 하는,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 내부에서 발생했던 이단적인 영성 운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위-마카리우스가 누구이며, 그가 정말 이단적인 영성 운동을 창시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짐작해 볼 내용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단 영성 운동가로 추정되는 위-마카리우스

 

익명의 저자였던 그를 위-마카리우스로 부르는 것은 마카리우스라는 실존 인물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집트 스케티스에 수도 공동체를 창설한 마카리우스는 교회에서 대(大) 마카리우스(Macarius Magnus, 300경~390)로 불립니다. 마카리우스는 서른 살 무렵에 안토니우스의 지도를 받으며 은수 생활을 시작했고, 사막에서 은수자로 60년을 살았습니다. 기도 생활에 전념했던 마카리우스는 평소 사람들에게 ‘기도할 때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침묵 속에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집트 사막에서 안토니우스 다음으로 모범적인 은수 생활을 실천한 마카리우스가 일찍이 동서방 교회에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도 생활을 배경으로 하는 위-마카리우스의 작품이 한동안 대 마카리우스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위-마카리우스가 이집트에서 수도 생활을 실천했으며, 시리아에 머무는 동안 주요 작품들을 저술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위-마카리우스가 저술가로 활동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시메온(Symeon Mesopotamiae, 4세기 중반 활동)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시메온을 메살리아주의 선동자로 여기는 학설이 있는데, 위-마카리우스의 작품에 메살리아주의와 흡사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위-마카리우스의 대표적인 작품은 「대 서간」과 「모음집 II」입니다. 그런데 「대 서간」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저서 「그리스도교 생활 원리(De Instituto Christiano)」와 아주 유사합니다. 학자들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위-마카리우스의 작품에 담긴 메살리아주의의 색채를 덜어내기 위하여 개작을 시도했다고 추측합니다. 또한 학자들은 위-마카리우스의 강론 50개로 구성된 「모음집II」에도 메살리아주의 색채를 띤 내용이 담겨있다고 평가하거나, 저자 스스로가 온건한 메살리아주의로 보이게 수위 조절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최근 연구는 위-마카리우스의 작품과 메살리아주의를 연결 짓지 않기도 합니다.

 

 

기도 생활만 강조한 메살리아주의

 

메살리아주의는 370년경부터 시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수도 생활 운동이었습니다. 메살리아주의자들은 엄격한 금욕 생활 형태의 수도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평소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반사회적인 사람들로 비쳐졌습니다. 때로는 지극히 감성적이거나 낭만적인 모습을 지니며 유랑 생활을 나서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메살리아주의에 대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383년 팜필리아의 시드(Side)와 426년 콘스탄티노플 시노드에서 신학자들이 메살리아주의를 단죄하자는 입장을 지지했으며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메살리아주의가 공식적으로 이단 선고를 받은 것으로 보아서, 그들의 엄격한 금욕주의적 수도 생활보다는 어떤 다른 위험 요소를 지닌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메살리아파(Messalian)’의 어원은 ‘기도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시리아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또한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인 ‘에우키테스(Euchites)’의 어원도 그리스어 ‘기도(euche)’에서 유래했습니다. 메살리아주의자들은 수도 생활에서 기도 생활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올바른 영성 생활에서 벗어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즉, 그들은 오로지 기도 생활만이 유일한 영성 생활이라고 강조했던 것이었습니다. 메살리아주의자들은 그동안 그리스도인의 수덕 생활 안에 포함된 모든 종류의 덕행을 실천하는 노력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비롯하여 모든 성사 생활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기도 생활만이 원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악마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덕 생활 실천을 통한 수도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노력이 강조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미 하느님의 은총 속에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살리아주의자들은 인간의 노력을 기반으로 하는 기도 생활을 실천하는 것만이 악마를 대항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 은총의 작용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따라서 메살리아주의는 영성 신학 분야에서 발생한 하느님 은총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강조한 펠라기우스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은총도 함께 언급한 위-마카리우스

 

그런데 위-마카리우스는 저서 「모음집 II」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즉, 원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꾸준한 기도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메살리아주의와 일맥상통하지만, 주님의 강생을 통해 은총의 강림도 함께 체험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일정 부분 하느님 은총의 작용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위-마카리우스는 인간이 은총을 체험한 후에도 여전히 기도 생활을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비록 은총이 인간 영혼에 강림했더라도, 아직은 인간 영혼의 일부분에만 작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 생활 여하에 따라서 은총은 인간 영혼과 육신을 하느님의 거룩한 빛으로 가득 채우면서 타보르산의 변모에 참여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완전성은 현세에서 드물게 일어나지만, 인간 영혼이 이 완성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면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바로 하느님과 인간 영혼이 일치하는 신비체험인데, 비록 하느님과 인간 영혼이 본질이 다르더라도 은총을 통해 일치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마카리우스는 기도 생활을 강조했지만, 은총 작용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리게네스와는 다르게 하느님 은총으로 인간 영혼의 본질 문제를 극복하는 신비사상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위-마카리우스는 하느님 은총의 작용 이면에서 여전히 인간의 강력한 기도를 필요로 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에서 능동적인 기도 생활도 필요하겠지만, 수동적인 신비 생활을 위한 하느님 은총도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측면이 조화를 이루어야 올바른 영성 생활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14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980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