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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며: 자비의 희년은 계속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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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20 ㅣ No.421

[경향 돋보기 -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며] 자비의 희년은 계속되어야

 

 

자비와 하느님의 얼굴

 

‘자비’(慈悲)라는 말에서 ‘자’는 이웃에게 사랑과 기쁨을 베푸는 행위를 말하며, ‘비’(慈)는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곧 이웃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일이며, 그런 연유로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행위 일체가 자비이다.

 

이렇게 자비는 사랑, 연민의 정, 자비심, 동정심, 너그러움, 선행, 은총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한결같이 인간의 비참함에 대하여 당신의 연민을 드러내 보이시기에,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을 본받아 이웃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비에 대해서는 모든 종교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며, 모든 나라와 사회의 구성원은 평화로운 세상 건설과 국리민복을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은 지난해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부터, 지난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이다. 희년에 대해서는 자비의 특별희년 칙서인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에 잘 담겨있다. 그래서 보편교회의 하느님 백성 모두는 자비의 희년을 보내면서 개인적, 교회적, 사회적 차원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면 교황님은 왜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셨을까? 오늘날 세상이 하느님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신 나머지 자비의 원초적인 얼굴인 하느님을 쏙 빼닮으신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설 수 없는 세상, 돈의 제국주의, 금융제도의 폐해, 생태환경 파괴, 무기산업, 자본주의 독재 등을 과감하게 비판하시며 주님께서 가르치신 평화와 공생의 길 등을 열정적으로 제시하시는 것이다.

 

당연히 자비의 삶이 한 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부터 해마다 자비가 넘쳐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을 전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자비의 얼굴」, 5항 참조). 이러한 자비의 향기는 종교와 인종, 이념, 사상, 계층을 초월하여 널리 전해져야 한다.

 

 

자비를 거스르는 행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셨지만 육신을 갖춘 인간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드러내셨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애 동안 가르치신 내용은 자비의 실천, 곧 사랑의 행위이다.

 

그분이 치유해 주신 온갖 종류의 환자들, 마음의 깊은 병과 상처를 가진 이들, 인정머리 없이 이기적 욕망에 젖어 사는 정치인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끊임없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부유한 이들을 가차 없이 비판한 것도 결국 자비심과 연민의 발로였다.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은 예수님 시대와 다르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열의와 확신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바로 교회가 세상에 한없이 자애로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줄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올해 1월 1일 평화의 날에 ‘무관심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십시오’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하셨다. 이웃, 다른 나라, 생태환경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여 평화를 이루라는 뜻이다.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이 개인의 사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을 넘어 공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또한 제도권 정치와 결탁한 비리와 부패는 사회 전체의 불의와 분열과 폭력을 양산하여 인권유린과 국민의 안녕과 신변까지도 위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편교회와 함께 거룩한 자비의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난국에 직면하였다. 지난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랫동안 회자하여 온 비선 실세 최순실의 정체를 시인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정치적 사회적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최순실과 그 측근들은 총체적 국정농단을 하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처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모든 권력을 그들에게 내주었다.

 

정치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많은 국민은 봇물 터지듯 하늘을 찌르는 분노를 쏟아내며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을 외치고 있다. 국정 동력을 상실하고 국가 최고 지도자가 지녀야 할 품위와 자격을 잃은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사안을 용납하며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가? 조건 없는 용서와 자비의 마음으로 덮고 가야 하는가?

 

헌법질서의 준수를 일컫는 정의는 시민사회에서 근본적 차원을 갖는다. 정의와 자비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을 실현하는 두 차원이다. 참회와 회개를 통하여 정의는 제자리를 찾게 되며, 그 열매로 자비는 정의를 넘어 폭넓게 세상을 평화의 길로 이끈다. 정의는 결코 그 평가가 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는 질서를 바로잡고 세상을 질서 있게 인도하는 힘이며 이정표이다.

 

죄를 지은 이는 반드시 벌을 받고 그 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자비의 얼굴」, 20-21항 참조). 이런 면에서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용서의 한계와 범위를 벗어난 사안에 대해서는 엄격한 정의와 척도와 잣대를 통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직한 사과와 참회, 그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과 혼란은 끝 간 데 없이 증폭될 것이다. 잘못에 대한 사죄와 책임이 이루어진 뒤에 자비와 용서의 은혜가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자비 실천의 난관

 

인간의 경제적 정치적 계획이 권력과 부의 획득이나 유지를 목표로 하며, 심지어 다른 이들의 권리와 근본적인 욕구를 짓밟는 사례를 우리는 목격한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은 정치의 수단과 도구, 시녀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종북 논쟁, 사상 논란, 이념 대결, 용공 논의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아직도 미증유의 민족적 아픔과 고통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4대 강 개발 문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쌍용 자동차 사태, 밀양 송전탑 사건, 국정 교과서 논란,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배치 논란 등에서 늘 정부 여당의 반대편에 서는 이들은 종북세력 또는 이적세력,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 세력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 모두 남북분단 상황이 빚어낸 비극적 결과이다.

 

이런 국론분열과 무익한 논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영역에 널리 퍼져있다. 이런 상황은 남북한 관계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이 서로 자비를 실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며, 상호 신뢰와 믿음을 저버린 채 나라의 품위를 손상하고, 개인과 집단 사이에 씻지 못할 상처를 가중하고 있다.

 

우리 근대사에서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에 남벌과 오염, 자연재해를 촉발하고 전체 공동체를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어 불안정과 불안을 강요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자연환경에 대한 무관심은 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불의의 상황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사회 안전망을 위기에 몰아붙이고, 사회적 평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원 부족이나 자연 자원에 대한 탐욕으로 얼마나 많은 분쟁과 갈등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인류 공동체는 자연과 생태환경에도 자비를 베풀며 공생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엄연한 의무가 있다.

 

 

자비의 열매

 

자비를 베푸는 일은 하느님의 본질에서 나온다고 「자비의 얼굴」 6항이 강조한다. 이 자비를 통해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 하느님의 자비는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고 전능의 표시이다. 구약에서는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로우신 분으로 하느님의 본성이 설명된다. 우리는 얼마나 급하고 참지 못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많은 이가 한 성질 하는 것을 전매특허처럼 여기고 있다.

 

하느님의 인자하심은 징벌과 파멸보다 늘 앞장서 나타난다. 그래서 선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신다.

 

“주님께서는 붙잡힌 이를 풀어주시고, 눈먼 이들의 눈을 열어주시며, 꺾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주님께서는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꺾어버리신다”(시편 146편).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는 싸매주신다. …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악인들을 땅바닥까지 낮추신다”(시편 147편). 하느님의 자비는 결코 추상적이거나 이념적인 구호나 외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재이다.

 

인류에 대한 예수님 사랑의 극치에 대해 「자비의 얼굴」 7항과 8항은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위대한 사랑의 신비를 완성하며 돌아가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완전히 드러내라는 임무를 하느님 아버지께 받으신다. 그분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거저 내어주시는 사랑을 실행에 옮기셨다. 특히 죄인, 가난한 이, 버림받은 이,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행하신 기적은 자비의 극치와 절정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람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신다.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다.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부를 만나시고는, 그 울부짖는 어머니가 겪고 있는 단장의 고통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아들을 살려주신다.

 

죄인이며 세리인 마태오를 부르시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삼으신다. 그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이 대목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문장(자비로이 부르시니, miserando atque eligendo)이기도 하다.

 

 

자비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비유와 관련한 용서에 대해 「자비의 얼굴」 9항은 강조한다. 되찾은 양, 은전, 아들의 세 비유에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기쁨에 넘치신다(루카 15,1-32 참조). 진정한 용서의 기준과 척도는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참조).

 

매정한 종의 비유에서 주인은 많은 빚을 진 종을 용서해 준다. 그러나 빚을 탕감받은 그 종은 아주 작은 빚을 진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빚을 청산하라고 한다. 이에 주인은 분노한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자기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용서는 나약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은총의 도구이다.

 

반드시 증오와 분노를 버리고, 폭력과 복수를 포기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희년에 특별히 추구해야 할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고 감각으로 만질 수 있게 해주셨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 삶이다. 일상의 행동에서 사랑은 생각, 태도, 습관으로 드러난다.

 

자비는 교회 생활의 토대임을 「자비의 얼굴」 10항과 11항이 보여준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용서의 개념과 실천이 사라지고 있다. 용서가 동반되지 않는 삶은 황량한 사막에서 생명력을 잃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용서는 회개와 참회, 진정한 태도 변화를 전제해야 한다. 교회와 구성원들에게 육체적 영적 자비를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구체적 선행, 소외계층 돌보기, 자선, 선교 등에 집중하는 은총을 청해야 한다(「자비의 얼굴」, 12항 참조). 고해성사, 성지순례, 기도시간을 많이 가져야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자비의 희년은 그리스도인 일생을 통해서 지속하여야 할 운명적인 과제이며 소명이다.

 

* 이용훈 마티아 주교 - 수원교구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2월호, 이용훈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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