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전례ㅣ미사

[전례] 따분한 전례? 따분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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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0 ㅣ No.1583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따분한 전례? 따분한 내 인생?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10항의 말씀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년 전 수원교구 복음화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냉담의 주요 원인으로 ‘고해성사의 부담’과 ‘전례의 무의미’가 차지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의 정점이며 원천이어야 할 전례와 성사가 많은 신자들에게 부담스럽고 무의미하게 다가오

는 듯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전례에 참례하고 있나요? 미사 내내 은총에 겨워 감격스런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 지루한 예식이 언제 끝나나?’ 하고 ‘주보를 펼쳐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이 좋은 계절에 꽃구경 안 가고 왜 성당에 나오셨어요?” 라고 물었을 때, “안 오면 찝찝하니까요.” “고해성사를 보기가 귀찮아서요.” 하는 답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우기 위해’ 참례하는 미사를 하느님께서 흡족히 받아주실지는 의문입니다.

 

전례에 참례하는 태도는 각자가 신앙과 삶을 사는 태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례가 무의미하다고 하셨나요? 전례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신앙과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례 안에서 나의 자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머무는 이유는, 내 인생의 문제를 가슴 속에 꼭꼭 싸놓고, 주님께 맡겨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믿음과 삶의 태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혹시 세상사에 치여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지는 않나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지는 않나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나요? 미움과 분노와 같은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을 하느님께 돌리며 왜 가만히 계시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전례가 기쁨의 잔치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봅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마음은 지금 어디서 헤매고 있는가?’

 

전례는 주님과 마음을 맞대는 만남의 자리이며, 주님께서 우리를 인격적 주체로 세워주시는 곳입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에 당신의 말씀을 건네시며, 성사의 거룩한 신비로 우리를 감싸 안아주십니다. 우리와 사랑의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 바라는 것은 형식적인 예식이 아닌 살아있는 한 인격, 바로 나 자신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분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마음에 노크하십니다. “얘야, 너 어디 있니? 내가 선물한 너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니?” 이 물음에 우리는 무어라고 답하겠습니까?

 

[2017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수원주보 3면,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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