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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31: 본질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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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22 ㅣ No.634

[사유하는 커피] (31) 본질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커피


성탄의 의미가 축하 파티에 있지 않듯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됐다. 휑한 거리에 울리는 캐럴은 차라리 쓸쓸하다. 작은 조명들은 텅 빈 공간에서 창백하게 깜박인다. 크리스마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한숨만 짓다가 문득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크리스마스는 ‘메시아(Messiah)에게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심성을 표현하는 의식, 곧 제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이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직책을 받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희랍어와 라틴어를 거쳐 그리스도(Christ)로 바뀌었고,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적는다. 신약성경은 구세주를 예수라고 증언한다.

 

영어 표현인 마스(Mass)는 ‘파견하다’라는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의식이 끝난 뒤 그 모임의 의미를 널리 알린 데서 비롯됐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찬미하는 ‘말씀 전례’와 구세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성체를 모시는 ‘성찬 전례’를 차례로 거행하는 의식을 라틴어 발음 그대로 ‘미사’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축하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애를 따르고 실천하기를 다짐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코로나19로 의미심장함 마저 자아내는 작금의 풍경은 어쩌면 크리스마스 초창기의 정신과 모습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산타클로스와 연결되는 접점 역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적 사랑에 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당초 가족이나 연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산타클로스는 지금의 터키 땅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삶을 바친 성 니콜라오(270~343)에게서 따온 것이다. 빚에 찌들어 딸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한 부부를 니콜라오 성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던 그는 굴뚝으로 돈다발을 넣었는데 그것이 물기를 말리려고 걸어 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 모양에 담는 관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따뜻한 손길이어야 한다.

 

19세기에 루돌프 사슴과 산타클로스 요정 등 동화적 요소가 덧붙여졌고, 20세기에 들어서 산타클로스는 아예 코카콜라 등 대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삶을 따른 성 니콜라오도 아니다.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행복하다는 환상을 심어 소비를 부추기는 정체불명의 산타클로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본질을 헤아려보는 좋은 기회다. 커피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커피의 가치는 인류의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커피의 본질은 마땅히 건강이다. 인류는 몸에 유익한 것을 맛이 좋다고 느끼도록 진화했으므로, 커피의 맛은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커피의 맛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커피 자체의 품질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 어디서 온 커피인지 정체도 따지지 않고 추출에 사용하는 물이 맛을 좌우하는 요인인양 떠들고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수돗물을 끓여 사용해도 커피 추출에 모자람이 없다. 주전자를 멋지게 돌려 물줄기를 차분히 해야, 특별한 그라인더로 커피를 분쇄해야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잘 보면 상술과 연결돼 있다.

 

본질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뿐더러 행복하지도 못하다. 크리스마스가, 커피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20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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