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계교회ㅣ기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1: 바오로 주막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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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5 ㅣ No.539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 ‘바오로 주막’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2000년 전 로마로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를 묵상하며

 

 

로마의 신앙 형제들은 주막(선술집) 세 개가 있는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내려와 압송 중이던 사도 바오로를 만났다.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 담벼락만이 2000년 전 그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을 연재합니다. 언론인 출신인 이 대사는 바티칸 안팎의 소식과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길어 올린 신앙 단상(斷想)을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엉클 죠’는 이 대사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얻은 별명입니다.<편집자>

 

 

“바로 이곳이다!”

 

포승줄에 꽁꽁 묶여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을 처음 만났던 장소, 아피우스(Appius) 광장, 그리고 트레스 타베르내(Three Taverns)!

 

타베르내는 지금으로 치면 펜션, 옛날 개념으로는 주막입니다. 3개의 주막이 이곳에 있었답니다. 성경은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사도 28,15)고 전합니다.

 

 

바오로 주막 담벼락 조각만 덩그러니

 

로마에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50여㎞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피우스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작은 하천을 건너 100m쯤 걸어가면 오른쪽 들판에 큰 돌덩어리가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돌덩어리가 아니라 벽돌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트레스 타베르내, ‘바오로 주막’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고, 이렇게 담벼락 조각 하나만 남아 순례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명색이 2000년 된 유물인데,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설명서 한 줄 없습니다. 그냥 버려져 있더군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참 평화로운 농촌 풍경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도 이랬을까요? 아마 2000년 전에는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타베르내 바로 앞에 아스팔트 도로가 뚫려 있고, 뒤편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넓은 들판이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카파르나움을 떠올리게 하는 촌락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바오로 사도와 로마 형제들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죄인 아닌 죄인끼리의 뜨거운 포옹, 동병상련이었겠지요. 반가워서, 서러워서, 아마도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울고!

 

저는 한동안 ‘사도행전’에 꽂혀 살았습니다. 여러 성경 중에 왜 하필 사도행전이냐구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성구 덕분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는데, 12월이 되면 서울에서 선교사 선생님들이 내려와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빵 과자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빵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갔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속담, 바로 그런 행태였지요.

 

그런데 그때 배운 노래의 한 소절이 제 머릿속에 평생 각인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교회와 담쌓고 살았는데도 어쩌다 성당이나 교회를 지나칠 때면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군대 시절 훈련받기 싫어 교회에 갔을 때에도, 결혼을 앞두고 성당에서 관면 혼배를 드릴 때에도, 아들과 딸이 저보다 먼저 세례(유아세례)를 받을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 한 대목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습니다. 경쾌한 음률과 함께.

 

노래 가사는 정확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로다”입니다. 저는 이 노래 가사가 성경 말씀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흔한 교회 노래의 한 소절인 줄 알았지요. 40세가 넘어 뒤늦게 세례를 받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알았습니다. 이 노래가 사도행전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왜 이런 선물을 저에게 주셨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 봤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저에게 사도행전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성구의 주제어(예수 믿음 구원)를 깊이 묵상해 보곤 합니다. ‘예수’는 나에게 과연 누구인가? ‘믿음’은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구원을 받으려면

 

성구의 출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감옥 생활을 할 때, 간수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으로 이 성구를 말씀하신 것이지요. 바오로는 아피우스 광장에서 로마 신자들과 만났을 때에도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바오로 주막’을 찾았을 때 오랜만에 이 노래를 소리 내어 불러봤습니다. 바오로를 생각하면서!

 

바오로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듯 하신 말씀을 저는 빵 얻어먹으러 교회에 갔다가 선물로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죽는 순간 이 거룩한 말씀이 내 기억의 최후가 되길 기도하며 삽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15일, 주교황청 한국대사 이백만(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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