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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7: 첫 번째 영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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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1 ㅣ No.1304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7) 첫 번째 영적 체험


첫 번째 하느님 체험, 그러나 여전히 변화 없는 삶

 

 

1833년 로마 성지순례 중 신비로움 체험

 

머튼은 일생 동안 내적-신비 체험들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는 그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 머튼이 회심하고 수도 성소를 갖게 된 다양한 원인 중의 하나도 하느님께서 먼저 그의 삶 속에 신비롭게 다가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신비로운 하느님의 다가오심에 머튼이 충실히 응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신비 체험인 로마 체험이 그러했다. 이 신비 체험은 아버지의 죽음 후 1년이 조금 지난 1933년, 로마 성지순례를 하던 중에 일어났다. 그는 성 코스마와 다미아노 대성전을 방문하였고, 그 성전 중앙 제단 위에 비잔틴 모자이크로 묘사된 예수의 모습에 심취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자이크의 신비로움과 진솔함과 단순성에 강렬하게 매료되었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저는 갑자기 경외감에 사로잡혔고 그로 인해 제가 인식하고 이해한 어떤 것을 이곳에서 찾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그동안 찾아왔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환시 체험

 

이 신비로운 체험 후, 그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떤 것을 찾기 시작했고” 복음을 읽고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체험 후, 머튼은 로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그는 “제가 아버지의 현존을 느낀 것은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 같았으며, 놀랍도록 선명해서 마치 그가 제 팔을 만지는 것 같았고, 저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압도되었고, 비참하고 부패한 제 영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나중에 그는 이 환시를 깊은 영적인 체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체험은 진정 은총이었으며, 크나큰 은총이었습니다.” 

 

머튼의 전기 작가인 마이클 모트(Michael Mott)는 “이 은총 가득한 순간을 통하여 머튼은 ‘자-의식과 자기-혐오의 예민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기도의 방법을 분명히 배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샤논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비잔틴 모자이크는 머튼에게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을 분명히 보게 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환시는 그가 찾지 않았던 것, 즉 그의 교만과 자기중심적으로 향하게 했던 비참함을 보게 했다. 이 신비로운 체험들을 통해, 머튼은 자신의 비참함과 교만을 보았으며, 해방과 자유에 대한 영혼의 진지한 갈망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강렬함과 절박함이 그에게 솟아났다.

 

이러한 통찰력이 있는 체험에도 불구하고 청년 머튼은 자신이 여전히 회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다. 이러한 신비체험을 나중에 회고하면서, 그는 케임브리지의 클래어 대학(Clare College) 시절 자신이 로마에서의 영적 체험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만약 제가 그 경험들을 따랐다면 저의 삶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며, 그 시절을 비참하게 보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신비 체험 이후에도 병적인 쾌락주의에 빠져

 

실제로 로마에서의 두 신비 체험은 모두 오래가지 못해 머튼은 클래어 대학 시절에 영적, 도덕적, 학문적으로 그의 삶에서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되었다. 그는 일종의 병적인 쾌락주의에 빠졌으며,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었고, 결국 케임브리지를 떠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때로는 우리가 체험해 보지 못한 환희와 기쁨의 빛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할 때, 그 체험은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머튼의 로마 체험이 그러했다. 신비로운 체험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며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사랑의 열매, 변화와 성장의 열매가 없는 신비 체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자기 교만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만들 수도 있다. 참된 하느님 체험은 진정한 사랑과 그 나눔에서 오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8월 11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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