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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콜베 성인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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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7 ㅣ No.1278

[콜베 성인의 향기] 콜베 성인의 겸손 (1)

 

 

프란치스칸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은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철저하게 일치하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프란치스칸 영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도회의 창설자인 프란치스코가 직관하고 형제들에게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바로 “가난하신 예수, 겸손하신 예수”였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프란치스코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여정을 일컬어 “순종과 정결 안에 소유 없이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으로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가난과 겸손 그 자체이시므로, 그분과 일치하려는 형제들의 여정 역시 가난과 겸손을 동반한 것이어야만 했다.

 

프란치스코의 충실한 계승자인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에게도 그리스도의 겸손은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유래하는 ‘신적(神的)인 속성’이며 모든 덕행의 근원인 동시에 성화(聖化)로 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을 의미하였다. 그는 “교만이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겸손은 모든 덕행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의 원죄는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겸손은 모든 영적 덕행의 근본이자 근원이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이 이미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입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하느님과 분리된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겸손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 앞에서 작은 존재임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더욱 하느님을 향해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하셨던 것처럼, 겸손으로 다가오는 인간에게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신다. “성모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세상이 비웃고 경멸하는 영성적 무기들처럼 부당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수단들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공덕을 주시고 보다 엄청난 승리를 이루고자 감히 우리를 쓰시는 것입니다.”

 

 

겸손의 덕

 

겸손이 우리에게 주는 선한 이익은 때때로 우리가 겪는 좌절이나 실패가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도록 해 주며,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풍부히 받을 수 있는 기회로 변화시켜 준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넘어진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아기들이 걷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며,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걷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좌절은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능력이 충분하고, 그만큼 노력했으며, 대가를 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대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고 여길 때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겸손과 온유함의 갑옷을 입은 이에게는 실패와 좌절이 범접하지 못한다. 이렇듯 인간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 겸손을 통해서 하느님의 대전으로 이끌려 나아가게 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폭제를 얻게 된다.

 

 

겸손과 교만

 

콜베 신부는 젊은 시절에 죽음의 위기가 닥칠 만큼 병을 심하게 앓았다. 그 병고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시험과 시련의 그 시기가 결코 절망의 동기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시련과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올 고통과 피곤에 합당한 준비, 즉 승리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모든 실패와 좌절 역시 마치 더 높은 완덕을 향해서 나 있는 계단처럼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서는 자기애와 교만을 치유하고, 겸손으로 우리를 이끌며,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 더욱 유순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실패와 좌절을 허락하십니다. 한편, 악마는 고통의 순간에 내적인 분란과 불신이 파고들도록 합니다. 이것들이 바로 교만의 징후입니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잘 인식한다면 좌절에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성모님처럼 놀라며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후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고귀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곧 성모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아니라면 인간은 어떤 죄악에서도 버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처럼 겸손해야 하며, 그 겸손을 나날이 성장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인격’을 이해해야 한다고 콜베 신부는 이야기한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보면, 그리스도 찬가는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신비를 들려준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여기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성의 지상에서 ‘종’의 모습으로 현존하셨다는 사실이다. 겸손의 장에서 신성과 인성은 연결되며, 예수님께서 지상의 삶을 통해 보여 주셨던 그 종의 모습, 즉 종의 삶은 인간인 모습인 동시에 하느님의 모습이다.

 

콜베 신부는 종의 모습을 취하셔서 세상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야말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의 한계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며, 이 한계를 받아들이는 신앙의 모범을 성 프란치스코 안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이 신비로운 연결을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겸손으로부터 이끌어 내며 이렇게 권고한다. “형제들, 늘 프란치스칸의 단순함과 정숙함과 겸손함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성모기사, 2019년 1월호, 최문기 마티아(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강화도 신학원장)]

 

 

[콜베 성인의 향기] 콜베 성인의 겸손 (2)

 

 

십자가의 보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겸손의 산 위에 세워져 있으며, 오로지 겸손한 인간만이 그 십자가와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십자가에 의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양육되고 성장한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여정을 통해 스스로 정화하는 덕행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성장의 기회를 부여하신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여정에서 스스로 정화하는 덕행을 실천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보속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보속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단식이나 고행 등의 실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형식적인 보속이 아니더라도, 내가 삶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약속과 일과 의무 등을 나에게 지워진 작은 십자가로 여기고, 그것을 사랑과 인내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 또한 훌륭한 보속의 실천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과제들, 시간표로 주어지는 소소한 일들, 정해진 시간에 바치는 기도 등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의무와 활동을 더 잘 받아들이고 회개와 성화로 가는 한 여정으로서 자기 포기를 실천하는 것도 강력한 보속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삶이 때로는 우리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그것을 넘어서는 겸손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우리에겐 보속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내적 성장의 동기를 이끌어 내는 지속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의 삶은 어떤 순간 특정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순간순간 삶 속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것을 하나씩 수용해 나가면서 점차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화의 지름길

 

나아가 성모님의 겸손을 배우는 것도 우리 자신을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이끄는 길이 된다. 콜베 신부에게 있어서 원죄 없으신 성모님 안에는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이 성화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왜냐하면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즉,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길이다.

 

인간은 왜 하느님께서 굳이 동정녀의 잉태를 통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지상에 보내셨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선한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선 자체이시며 지상의 선이시기에, 하느님의 선택에는 차선이 없으며 늘 최선의 것일 수밖에 없다. 성자께서 겸손되이 동정녀의 모태를 취하셔서 인간과 똑같이 열 달 동안 양육되시고 마침내 우리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산 제물이 되려고 오셨던 것처럼, 만약 우리가 하느님께 간구하거나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봉헌하려고 한다면, 우리 역시 그분이 우리에게 오셨던 방법과 길을 역행하여 성모님과의 일치와 그분의 양육을 통해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완전한 방법이자 봉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의 은총

 

보나벤투라는 이렇게 말한다. “성모 마리아를 거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셨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갈 때는 반드시 마리아를 거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모님은 복음적 권고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이 전달되는 피라미드의 정점이고, 인간의 삶의 가치에 가장 완전한 모델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로부터 인류가 퍼져 나간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성모님 안에 당신의 섭리를 심으시고 복음 말씀은 성모님으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콜베 신부는 성모님을 “은총의 분배자”라고 일컫는다. 인간은 성모님의 기쁨에 동참하고 그분의 모범을 따르면서, 비로소 확실한 종교적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그래서 콜베 신부는 겸손의 덕행만이 거룩한 복음적 권고의 실천을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또한 겸손이 때때로 세상 속에서 실패나 패배로 드러날지라도 그것만이 세상의 힘임을 결코 잊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로지 겸손만이 악마의 내적 공격으로부터 인간과 세상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겸손은 정말 작고 감추어져 있지만 영혼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온 세상이 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온 세상은 겸손의 유산이며 겸손은 완전한 기쁨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나 성공에 대한 유혹을 뛰어넘어, 작고 감추어져 있지만 영혼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영적 권위로 뛰어들어서 온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겸손한 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신다. [성모기사, 2019년 2월호, 최문기 마티아(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강화도 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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