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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땅, 평화를 심는 미얀마 교회를 가다3: 산넘고 강건너… 희망 심는 정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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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31 ㅣ No.518

분쟁의 땅, 평화를 심는 미얀마 교회를 가다 (3) 산넘고 강건너… 희망 심는 정글 교회


해발 5000미터 미사에 예물 보따리 행렬 작지만 빛나는 교회

 

 

- 하카교구 중충성당 주일 미사 시간, 신자들이 봉헌금 대신 가져온 배추와 사탕수수가 제단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 해 동안 34개 공소를 방문하여 1770명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52명에게 세례성사를 베푸는 등 매우 적극적인 전교활동을 했다. 그러나 공소 순방 중 험한 산길을 찾아 헤매며 불편한 잠자리,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시달리며 병이 들었다. 강인한 성격에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지만 차츰 건강이 나빠져 부임한 지 1년이 채 못되어 병으로 눕게 됐고 장티푸스까지 겹쳐 심하게 고생하다 결국 선종했다. 만 28세였다.’

 

1888년 전라도 공소 사목에 힘쓰다 세상을 떠난 파리외방전교회 라푸르카드 신부 묘비에 적한 기록이다. 조선은 가난했고 전라도의 골짜기는 깊었고 길은 험했다. 교회는 박해받았다.

 

2018년 미얀마 교회는 130년 전 한국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내전과 군부독재, 극심한 가난, 차별이 시계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교회는 멈추지 않았다. 말을 타고 골짜기를 누비던 조선의 선교사처럼 열정의 사제들은 오토바이를 끌고 정글을 누빈다. 신자들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하며 순수한 신앙을 이어간다. 희망을 심는 미얀마 교회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12월 첫째주, 미치나교구청에 서품 10년 차 전후의 젊은 사제들이 모처럼 모였다. ACN과 가톨릭평화신문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열악한 시골 공동체의 실상을 알리고자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카친 주 곳곳에 분쟁이 이어지다 보니 교구 내 20여 개 본당 가운데 외국인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은 5개 정도에 불과하다. 길이 험하고 통제가 많다 보니 사제들의 교구청 나들이가 이틀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정말 ‘먼’ 길을 온 정글 사제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곳 대부분 신부들은 군인이 겨눈 총부리를 마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사목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2015년 한 마을에 정부군과 카친독립군 사이에 큰 분쟁이 터져 주민 5000명이 고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이 시급해서 트럭을 끌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초소를 지날 때마다 군인들과 협상해야 하는 긴장된 상황이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음식이 없어도 신부를 찾고, 겁이 나도 신부를 찾습니다. '우리는 모른다, 그런 일을 안 한다'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어요. 신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것 까지 다 해야만 합니다. 흑과 백이 아니라 믿음으로 움직이죠.”(노엘 나우 랏 신부, 교구 사회사목 담당)

 

인도 국경 지역 팡사우신부양본당을 담당하는 폴 티와자오 샴 신부(왼쪽에서 세 번째)와 교리교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소로 향하고 있다. 폴 신부 제공.

 

 

“오토바이로 3박 4일이 걸리는 시골 공동체가 있는데 우기가 되면 길이 없어집니다. 그럴 땐 만달레이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로 올라가는데 1주일이 걸립니다. 4년에 한 번 가게 되는 오지마을도 있는데 상상 이상으로 열악합니다. 화장실도 없이 살고, 옷을 입는 문화도 없는 정글 마을이죠. 성당도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땅을 일구고 목재를 모아 짓습니다. 1년 동안 나무를 모으고 몇 년에 걸쳐 성당을 지요. 그런데 우기가 되면 다 휩쓸려 가고, 그러면 또 다시 나무를 모으러 나가고...이곳 신자들은 교육을 전적으로 교회에 의지하는데 교회 기숙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이상 교육을 받기 힘든 상황입니다.”(폴 퀴 셰인 앙, 캄티 본당)

 

“저는 64개 마을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중 10개 정도만 차가 다닐 수 있어서 나머지는 걸어서 갑니다. 마을을 이동하는데 최소 하루, 최대 2주가 걸리는데 모든 마을을 돌아보려면 최소 3개월이 걸립니다. 분쟁이 이어지다보니 마을을 점령한 군대는 ‘음식, 물, 기름, 약’을 반입할 수 없도록 4무(無) 정책을 펴기도 합니다. 그럴 땐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버려진 마을을 돌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듭니다.”(폴 킨사 투 앙, 숨프라붐, 두립본당)

 

“우리 마을엔 최근 분쟁 때문에 700명 이상이 고향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솔직히 ‘번 아웃’상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이고 사제 성소까지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사랑과 형제 교회의 도움으로 여전히 살아갈 수 있고 사제로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폴 잔 낫 신부, 다나이본당>

 

미얀마 교회를 지탱해온 또 다른 힘은 평신도다. 사제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 활동하는 2696명 교리교사(catechist)의 힘으로 가톨릭 공동체가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 교리교사로 번역되는 이들은 한국 교회 초창기 공소회장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공동체에서 사제의 역할을 일부 대신한다. 교회는 교리교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미치나ㆍ바모ㆍ라시오 교구는 2년 과정의 성 루카 학교를 운영하며 교리교사 700명을 배출했다.

 

가난하고 외로운 오지 마을의 신앙은 치열하다. 해발 5000m 산중에 있는 중충본당(하카교구)의 주일 미사 시간, 신자들이 모두 어깨 한가득 보따리를 지고 비탈을 올라 성당으로 들어온다. 봉헌금을 대신 할 물건들이다. 미사 내내 줄지어 들어오는 신자들의 보따리 행렬이 끝나자 성전 앞은 수십 덩어리의 배추, 사탕수수로 가득찼다. 비록 돈은 없지만 밭에서 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성당에 내놓는다. 신자들의 정성은 오토바이에 실려 산길을 달려 신학교, 기숙학교 주방으로 전달된다.

 

미얀마 교회는 작다. 가톨릭은 전체 인구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회는 묵묵히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분쟁 속에서 커 온 사람들입니다. 나부터도 평화를 모릅니다. 마음 속에 늘 공포가 있습니다. 정부, 지도자, 역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내전으로 아버지를 잃은 한 사제의 고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년 전 미얀마를 방문해 ‘모두’를 만났다. 미얀마 군부 지도자, 아웅산 수지, 불교지도자, 난민…. 편을 가르지 않았다. 교회가 갈 길을 제시했다. 교황 방문으로 미얀마 내 가톨릭교회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이 커졌다. 미얀마 교회는 처음으로 세계 교회의 관심을 끌었다. 미얀마 신앙인들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분쟁의 땅, 평화를 심는 미얀마 교회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 후원 문의: 02-796-6440 또는 인터넷에 ‘고통받는 교회 돕기’ 검색, 성금 계좌: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코리아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1일, 유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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