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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폐허로 변한 코라진과 벳사이다, 쿠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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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12 ㅣ No.1793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폐허로 변한 코라진과 벳사이다, 쿠르시

 

 

- 코라진 회당터.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와 그 일대에서 하신 활동은 요즘 말로 그분의 존재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 행위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따라왔습니다. 한마디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모든 고을이 예수님을 환대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듣고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고을들이 있었습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대표적입니다(루카 10,13-15 참조) 또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보고 오히려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청한 고을도 있습니다. 복음서들에서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이라고도 하고 ‘가다라인들의 지방’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 10,13-15)

 

코라진 회당의 정교한 장식.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다니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특정한 고을들을 두고 독설을 쏟아내신 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고을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고을들에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셨다고 전합니다(마태 11,20). 그런데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도시’라고도 부르는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활동은 여러 차례 전하지만(2018년 7월호 참조), 코라진에서 일으키신 기적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베사이다와 관련해서는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신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코라진은 카파르나움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산악 지대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완전히 폐허가 돼 몇몇 유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만, 성경 말씀으로 보거나 역사 고고학자들의 조사를 볼 때도 예수님 시대에 이곳에 고을이 형성돼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코라진은 제2차 유다 독립전쟁(기원후 130~135)으로 많은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변방인 이곳 갈릴래아 지방으로 내쫓기면서 번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4세기에 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얼마 후 고을이 형성됐으나 점점 더 쇠락해졌고, 마침내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20세기 말까지 계속된 발굴 작업으로 정교하게 지어진 유다교 회당과 정결 예식 때에 사용하는 목욕탕 등 2~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회당은 당시 유다교 회당들이 그렇듯이 예루살렘을 향해 지어져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돌로 깎아서 만든 ‘모세의 자리’가 이곳 회당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모세의 자리란 예수님께서 ‘모세의 자리’라고 말씀하신 그것으로(마태 23,2) 율법 학자들이 앉아서 토라 곧 모세 오경을 읽는 의자를 말합니다. 회당 터에는 모형이 있고, 원형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지요.

 

- 벳사이다.

 

 

벳사이다는 코라진과 달리 복음서에서 몇 차례 등장합니다. 열두 사도의 으뜸인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였고, 또 다른 사도인 필립보도 벳사이다 출신입니다(요한 1,44 참조).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에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시기도 하십니다(마르 8,22-26). 이로 미루어 예수님 시대에 이미 벳사이다는 어촌을 이루고 있는 큰 고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벳사이다의 정확한 위치를 놓고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상부 요르단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드는 호수 북단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상부 요르단 강변의 ‘엣텔’을 벳사이다라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 해변 근처의 ‘엘아라이’가 벳사이다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습니다. 엣텔을 베사이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호수에서 2km나 떨어진 곳에 어떻게 어촌이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현재의 지형은 지진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논지를 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예수님의 저주 말씀처럼 완전히 폐허가 돼 버렸습니다. 발굴 작업이 거의 완료됐고 기념 성당까지 있어 수많은 순례자가 찾는 카파르나움과는 달리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순례객들의 발길마저 뜸한 편입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두 고을의 모습은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 자신의 삶을 추스르게 하는 자극이 됩니다.

 

 

쿠르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복음서는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고 수가 많은 그 마귀들을 돼지 떼 속에 들어가게 하시어 돼지들이 비탈을 내리달려 물속에 빠져 죽었다는 일화를 전합니다(마태 8,28-34; 마르 5,1-20; 루카 8,26-39).

 

- 쿠르시의 수도원 성당터.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난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이라고 하지만(마태 8,28),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는 ‘게라사인들의 지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섭니다(마르 5,1; 루카 8,26). 지리적으로 볼 때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55km나 떨어져 있고, 가다라 역시 1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돼지 떼가 비탈을 내리달려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 죽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떠오른 곳이 ‘쿠르시’입니다.

 

쿠르시는 갈릴래아 호수 동쪽, 이스라엘 사람들의 초기 정착촌으로 유명한 엔게브 키부츠에서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산기슭 계곡 입구에 있는 쿠르시는 1970년에 도로 공사를 하다가 비잔틴 시대의 커다란 수도원과 성당 터를 발견하면서 발굴된 곳입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는 작은 경당 터도 있지요. 2000년 예수님 시대라면 이곳에서 돼지 떼가 비탈을 내려 달려 호수에 빠져 죽은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요.

 

학자들은 카파르나움과 코라진, 벳사이다 같은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들이 5세기 이후 폐허가 되면서 호수 동쪽인 이곳 이방인들의 지역을 마귀들과 돼지 떼에 관한 일화가 있었던 장소로 보아 기념 경당을 짓고 순례하기 시작했고 수도원도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세 복음서가 전하는 마귀와 돼지 떼에 관한 기사에는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구원되어 멀쩡하게 된 것을 본 주민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청을 드린 것입니다(마태 8,34; 마르 5,17; 루카 8,37). 이들이 예수님에게서 떠나가 달라고 청한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찰 거리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의 정서에, 우리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다고 진리의 말씀이나 진실을 거부하거나 외면하지는 않는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2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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