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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묵주기도 성월 특집: 묵주기도를 사랑한 성인과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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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07 ㅣ No.1252

[묵주기도 성월 특집] 묵주기도를 사랑한 성인과 교황


이 가을 성모님의 사랑 느껴보세요

 

 

가톨릭교회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하고 개인과 가정의 성화 및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장한다. 초기 교회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묵주기도는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성인의 사랑을 받았고, 교도권이 장려해 온 기도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에서 “교회는 어려운 일들을 묵주기도, 특히 공동으로 바치는 묵주기도와 그 끊임없는 실천에 의탁하면서 이 기도의 특별한 효과를 늘 믿어왔다”며 묵주기도의 힘을 강조했다. 묵주기도 성월을 맞아 묵주기도와 연관된 주요 인물들의 면모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성 도미니코(1170~1221)

 

설교를 주로 하는 ‘설교 수도회’를 창립한 도미니코 성인은 묵주기도 신심을 널리 전파했다. 당시 위세를 떨치던 이단 알비파(派) 축출을 위해 노력한 그는 이들이 프랑스 툴루즈 지방을 침략하자 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가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임을 알리며 신자들의 기도 참여를 독려했다. 전설에 따르면 성인은 기도 중에 세 천사와 함께 나타난 성모 마리아로부터 ‘묵주기도를 전파하라’는 계시를 들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서는 150번의 성모송을 연속적으로 바치며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중요한 순간들을 묵상하는 ‘도미니코 묵주기도’가 등장했다.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고 그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매괴회’도 성인으로부터 유래됐다.

 

 

성 비오 5세 교황(재위 1566~1572)

 

묵주기도의 방법과 구성을 표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성 비오 5세 교황은 1569년 9월 17일 ‘묵주기도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칙서(勅書, Bulla) 「로마 교황들은 주로」(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를 반포했다. 이는 묵주기도의 중요 형식을 밝힌 첫 번째 교황 문헌이다.

 

유럽의 그리스도인과 연합해서 교회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던 성인은 연합군이 1571년 10월 7일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 군대에 맞서 코린토만 레판토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대승을 거두자 10월 7일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선포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뿐만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 의지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연합군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전장으로 나아갔고, 로마에서는 묵주기도회 회원들이 전쟁 승리를 기원하며 묵주기도 행렬을 했다고 한다. 이날은 후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됐다.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

 

레오 13세 교황은 묵주기도와 관련한 여러 회칙을 반포해서 묵주기도 신심을 널리 전파했다. 이런 공로로 ‘묵주기도의 교황’이라 불린다.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선포한 「최고의 사도 직무」 회칙에서 그는 ‘묵주기도가 사회악을 물리치는 효과적인 영적 무기’임을 천명하고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함께 묵주기도를 바쳐 달라”고 호소했다. 또 성모호칭기도에 ‘묵주기도의 모후’를 추가했다.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한 것은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과 연관이 있다. 레오 13세 교황은 회칙에서 그 배경을 설명하며 레판토 해전에서의 승리나, 도미니코 성인이 묵주기도를 통해 알비파 이단을 물리친 일들을 상기시키고 당시 교회가 마주한 혼란과 어려움을 묵주기도로 이겨낼 것을 강조했다.

 

 

복자 바르톨로 롱고(1841~1926)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묵주기도의 참된 사도로서 특별한 은사를 지녔다”고 평했던 바르톨로 롱고 복자는 평생 ‘15주간 토요 묵주기도’를 실천하는 등 묵주기도의 정신을 전하는 데 힘썼다.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변호사로 살아가던 그는 1872년 10월 어느 날, 길을 걷던 중 마음 안에서 “네가 구원받고자 한다면, 묵주기도를 전파하여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를 계기로 ‘묵주기도의 전파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또 폼페이 폐허 위에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께 성전을 봉헌하도록 부름받았음을 깨닫고 기금을 모아 성당 건립에 나섰다. 그로 인한 결실이 현재의 폼페이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성당’이다. 

 

바르톨로 롱고는 1980년 복자 반열에 올랐고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성당’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성모 성지가 됐다.

 

 

성 요한 23세 교황(재위 1958~1963) ·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공의회 성공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했다. 성인은 일과를 묵주기도로 시작해 묵주기도로 마칠 만큼 묵주기도를 사랑했다. “묵주기도로 묵상과 영신수련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했던 성인은 “묵주기도의 수련은 모든 신자들의 아버지로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내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은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입각해 ‘묵주기도가 복음적 특성을 지닌 그리스도 중심적인 기도’임을 강조했다. “묵주기도는 복음서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라고 했으며 “묵주기도야말로 순수한 기도요 그 내용은 오로지 성경적이며, 구원 역사에서 성모님이 하시는 여러 가지 역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된 지 두 주가 채 되지 않았던 1978년 10월 29일, 삼종기도를 통해 묵주기도의 중요성과 의미를 밝힐 만큼 묵주기도에 대한 애정이 컸다. 성인은 2002년 10월 16일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반포하고 이와 함께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했다. 교서는 ‘묵주기도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묵주기도에 대한 신학적 깊이를 갖추면서도 오늘날 묵주기도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이 문헌으로 기존 묵주기도 형식에 ‘빛의 신비’가 추가됐다.

 

[가톨릭신문, 2018년 10월 7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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