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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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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23 ㅣ No.534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수원가톨릭대학교 (상)


급증하는 신자… 사제 양성 필요

 

 

- 1983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기공식.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을 따라 오른다. 오르막의 끝에 주황색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교구 성소의 못자리 수원가톨릭대학교다.

 

1970년대 후반부터 교구 신자 수는 수도권 인구 증가 추세와 신자들의 적극적인 선교 덕분에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반면 새 사제의 수는 적어 교구 사목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는 매월 1회 ‘사제 성소의 날’을 열고 성소계발과 사제양성에 박차를 가했지만 어려움이 크게 해소되진 않았다.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는 성소계발과 사제양성의 시급함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구 대신학교 건립을 구상했다. 198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대신학교 건립에 관해 논의했지만, 비용과 교수진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하지만 1982년, 한국교회 사제성소자 수가 기존의 대신학교 정원을 몇 배 초과했다. 게다가 서울관구의 경우 신자 수 대비 신학교 신입생 모집인원이 대구·광주관구에 비해 낮은 상황이었다. 서울관구 주교들은 1981년 서울 대신학교 기숙사와 교사 증축을 준비해오고 있었지만, 현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서울관구 내에 별도의 대신학교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했다. 결국 1982년 춘계 주교회의에서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4신학교 설립안이 통과됐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수원교구가 결정하기로 정했다.

 

1984년 수원가톨릭대학교 첫 신입생 입학식.

 

 

신학교 성당 앞에는 갓을 쓰고 있는 김대건 성인의 성상이 세워져 있다. 왕림 지역은 예로부터 ‘갓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다. ‘갓등이’는 갓을 쓴 등불이라는 의미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사제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제라는 의미의 암호로 ‘갓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왕림 지역은 수원과 충청도를 잇는 좁은 산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배를 타고 입국하는 선교사제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 됐고, 이곳 교우촌은 ‘갓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또 갓등이 교우촌의 신앙을 이어받은 이들이 설립한 왕림본당은 교구의 첫 본당이자 교구 신앙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자리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교구는 1982년 7월 1일 참사회를 소집해 한국 제4신학교의 위치를 논의했다. 후보지로는 왕림, 천진암, 성라자로마을 등이 거론됐지만 최종 왕림, 즉 갓등이로 의견이 모아졌다. 교구사적인 의미도 깊을 뿐 아니라, 신학교가 들어설 만큼 충분히 넓고 환경이 깨끗했고 대도시와의 접근성도 좋아 신학교를 설립하는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교구는 1983년 3월 교황청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의 설립 인준을 받고 그해 4월 대학 본관을 짓기 위한 기공식을 열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8년 4월 15일, 이승훈 기자]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수원가톨릭대학교 (하)


안정 · 지속적으로 사제 양성하며 신학강좌로 평신도 교육에도 힘써

 

 

- 수원가톨릭대 성당 입구에 있는 정하상 성인상.

 

 

수원가톨릭대학교 도서관을 바라보니 학교를 상징하는 교표가 보였다. 교표는 교구의 이름인 ‘수원’에서 한글 ‘수’와 한자 ‘수(水)’를 결합한 형태다. 동시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과 제대의 모습을 담았고,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물고기의 형상도 표현하고 있다.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잘 어울리는 상징이다.

 

교구의 신학교 설립은 교구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한국 4번째의 본격적인 대신학교이자,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맞아 세운 학교다. 그리고 교황 요한바오로2세 성인이 축성한 학교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기념적인 의미가 있는 대신학교를 성공적으로 세운 일은 교구의 위상을 크게 높였고, 안정적·지속적으로 사제들을 양성했다. 이를 통해 교구는 교구 내 사제를 충원했음을 물론이고, 특수사목에서 활동할 사제와 해외선교 사제들까지도 배출해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교구 교육사업도 체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교구는 수원가톨릭대를 설립하면서 교구의 학교법인 ‘광암학원’을 설립했다. 광암학원은 당시 교구 내에서 각기 운영되던 수원 소화국민학교, 왕림 광성국민학교, 송탄(현 평택) 효명중학교·효명종합고등학교, 안성 안법중학교·안법고등학교 등을 광암학원 산하로 편입시켰다. 

 

수원가톨릭대 성당 입구 왼편에 정하상 성인상이 보였다. 103위 성인 중에서도 평신도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정하상 성인의 성상이다. 사제성소의 요람인 수원가톨릭대의 성당에 평신도를 대표하는 성인의 성상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가톨릭대가 사제뿐 아니라 교구 평신도 양성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 원가톨릭대학교 전경.

 

 

수원가톨릭대는 1989년부터 겨울·여름 방학을 이용해 신학강좌를 개설했다. 신학강좌에는 학기마다 200명이 넘는 수도자, 평신도가 참여했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수원가톨릭대는 1991년 전체 교수회의를 통해 대학부설로 하상신학원을 개설하기로 결정했고, 1992년 3월 하상신학원이 설립됐다. 한국교회의 복음화 사업에 투신할 수도자와 평신도의 지적·영적 성장을 돕고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하상신학원은 2007년 평생교육원으로 격상했고, 졸업 후 과정을 신설하는 등 평신도 선교사·교리교사의 양성과 관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8년 4월 22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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