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하늘로 돌아간 아름다운 신학생,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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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560

[허영엽 신부의 ‘나눔’] 하늘로 돌아간 아름다운 신학생, 스테파노

 

 

벌써 20년이 지났다. 1998년 성탄 다음날 오전 10시. 대신학교 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한 신학생의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그의 세례명은 스테파노였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그의 장례미사가 자신의 영명축일에 봉헌되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장례미사의 강론 말미에 신부님께서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읊었다. 그 순간 미사에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그 신부님의 강론처럼 스테파노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청년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착하고 반듯한 학생이었다. 나는 그의 사진이 담긴 고별 상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사 전에 받았던 그 상본의 앞면에는 까만 수단을 입고 밝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어 가슴이 더 아팠다.

 

상본 뒷면에는 그의 짧은 약력이 적혀있었다. “72년 4월26일 서울 출생 / 91년 3월1일 대신학교 입학 / 97년 3월1일 착의, 독서직 / 97년 10월 휴학 / 98년 12월 23일 선종” 이 다섯줄이 26세 꽃다운 청춘의 발자취였다. 미사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것이 고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주여, 이 불쌍한 영혼을 버리지 마시고 평안을 누리게 해주소서.”

 

내가 스테파노를 처음 본 것은 1996년 봄이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3학년에 복학해서 다시 신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신학교에서 영성지도를 맡고 있는 스무 명 정도의 신학생 중 한사람이었다. 착한 느낌의 선한 얼굴을 가진 그는 좋은 첫 인상을 주는 청년이었다. 시원하게 훌쩍 큰 키에 맑은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요즘 청년답지 않게 순수해보였다.

 

그런데 그의 매력은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인데 있었다. 그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소외받고 불쌍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동정심 이상의 것이었다. 난 대화 때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단순히 이론적이 아닌 실제적인 삶을 통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한계성 절감하기에 기도가 더 필요해

 

- 중앙보훈병원성당 제대 십자가.

 

 

그 이듬해 가을에 나는 스테파노가 운동 중에 갑자기 쓰러져 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큰 병은 아니고 조금 과로했으려니 생각했다. 마침 병원에 갈 일이 있어 그 신학생의 병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그의 주치의를 만났다. 그의 병세를 물어보니 악성 뇌종양이며, 상황이 몹시 안 좋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종양이 매우 커서 수술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힘없이 그의 병실로 걸어갔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병실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명패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빈 침대만 눈에 들어왔다. 옆 사람에게 물으니 다른 병실에 가있다고 했다. 일러준 옆 병실에 가보니, 스테파노는 그곳에서 다른 환자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누워 있는 환자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사람은 아플 때 가장 외롭고 고독하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에서도 다른 환자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날 보자마자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당시에 전혀 자기 병세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스테파노는 병원 입구까지 따라오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신을 찾아준 나에게 몹시 미안해했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잘 될 거야…” 말을 흐리는 나에게 그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신부님, 다음 달 영성 면담 때는 학교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되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우린 성모병원 입구에서 긴 이별을 했다. 그렇게 헤어진 며칠 후, 스테파노는 수술을 받고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수술 후 의식이 없는 상태로 1년간 병상에 누워있었다. 결국 1998년 예수성탄을 하루를 앞둔 날, 스테파노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다.

 

젊은이들의 장례소식을 들을 때마다 늘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왜 하느님은 하필 젊디젊은 이 영혼을 데려가셔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인간의 한계성을 절감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힘없고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더욱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입원한 병원에서조차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살피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름다운 신학생, 스테파노. 이 세상 소풍을 마친 그가 하느님 곁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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