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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51: 이탈리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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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1 ㅣ No.506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1) 이탈리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주님께서 손을 뻗어 마태오를 부르시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외부 전경. 「이탈리아 미술기행」 저자 박용은씨 제공.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성당을 볼 수 있다. 골목길을 돌아서기만 해도 만나는 곳이 성당이다. 성당은 로마인들뿐 아니라 지친 모든 사람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집이면서 하느님 백성의 집인 성당이 곳곳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로마 시내에는 오래된 건물과 성당이 많고 그 앞의 광장 주변에는 분수가 자리 잡고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싸인 나보나(Navona) 광장도 휴식을 취하는 사람과 관광객 그리고 공연을 하거나 물건 파는 사람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나보나 광장과 가까운 곳에 바로크 양식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San Luigi dei Francesi)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십자군 전쟁에 나섰던 프랑스 왕 루이 9세(1214~1270)에게 봉헌됐는데 로마에 있는 프랑스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건립됐다. 성당은 번화한 광장 뒤편의 좁은 도로가에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끌지는 못한다. 성당 설계는 1518년부터 시작돼 1589년에 완성됐으며, 이후에 내부 장식 공사가 추가로 진행됐다. 길이는 51m이며 폭은 35m로서, 유럽의 대성당과 비교하면 큰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 안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것은 성당이 화려하게 장식한 천장화와 조각품, 실내의 금박이 장식과 성화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치오(Caravaggio, 1572경~1610)의 3부작이다. 제단 왼쪽 가까이에 위치한 콘타렐리(Contarelli) 경당에는 카라바치오가 1599년부터 1600년까지 그린 마태오와 관련된 세 작품 ‘마태오의 소명’, ‘마태오의 복음서 집필’, ‘마태오의 순교’가 있다. 프랑스인 콘타렐리 추기경이 자신의 영명 성인인 마태오를 주제로 한 그림 제작을 화가에게 의뢰하면서 이 세 점의 유화 작품이 완성됐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내부.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카라바치오는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을 즐겨 그렸다. 화가가 전성기에 그린 ‘마태오의 소명’에서 이런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세관을 방문하시어 손을 뻗어 세금 계산에 몰두하던 마태오를 부르셨다. 세리들 가운데 세 명은 예수님께서 누구를 부르시는지 알고 싶어서 그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두 명은 여전히 세금으로 받은 동전을 헤아리는데 정신을 온통 뺏긴 상태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그분의 거룩한 신원을 알려주는 옅은 후광이 비치고 있으며 머리 위쪽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쳐온다. 세관원들을 향한 화면 속의 빛은 그림 위에 있는 실제 창문에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면의 빛과 자연의 빛이 서로 만나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 준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로, 어둠 속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부르심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우리에게 교회에서 예술품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려준다. 카라바치오의 명화 세 점은 수백 년 동안 로마인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교회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의 성화는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이나 외국에 순회 전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성당을 찾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카라바치오의 3부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라 성당의 원래 자리에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쉽다.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어둠과 죽음에서 구해내시는 빛과 생명의 구세주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 나오는 예수님을, 그림 가까이에 있는 제단에서 미사가 거행될 때 성체와 성혈을 통해서 만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치오의 3부작 중 ‘마태오의 소명’.

 

 

오늘날 카라바치오의 3부작을 잘 보기 위해서는 명화 앞에 설치된 작은 기계에 동전을 넣어야 한다. 그러면 불빛이 들어와 그림을 볼 수 있지만 몇 분 후에는 빛이 꺼져서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러한 장치는 재정적인 이유보다도 밝은 불빛으로 인해 유화 물감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한 점의 그림을 온전히 보존해 후대에 남겨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교회와 여러 부속 기관 곳곳에도 소중한 유물과 예술품이 소장돼 있다. 이러한 교회의 예술품이 온전히 보존되기 위해서는 항상 관심을 갖고 아끼며 보살펴야 한다. 예술품도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잘 보살펴 주면 그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성당의 실내에 있는 유물이나 예술품만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것도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청동이나 쇠, 대리석이나 백색 시멘트로 제작된 동상이라 하더라도 외부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거나 잘 관리하지 않으면 수명은 급속하게 단축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교회의 유물은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소중히 보살피며 원형 훼손의 위험에 노출된 것은 모형을 만들어 원래 자리에 두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원형을 실내에 보관하게 되면 작품 수명은 더욱 연장되고 그 예술품이 주는 혜택을 우리의 신앙 후손들이 누리게 될 것이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8년 1월 1일, 정웅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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