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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교육과 신앙: 힘과 운동의 물리를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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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17 ㅣ No.342

[과학 교육과 신앙] ‘힘과 운동’의 물리를 다시 생각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고 상상해 봅시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고요를 넘어 적막한 모습은 아닐까요? 반대로 모든 것이 쉼 없이 움직이는 세상은 어떤가요? 혼란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한 세상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네 세상은 이 모두가 생동감 있게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렇다면 물체는 어떻게 하면 정지하고 어떻게 하면 움직일까요? ‘힘’을 주면 움직이고 ‘힘’을 주지 않으면 정지하는 것, 바로 여기엔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단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힘과 운동’입니다. 초등학교 영재반 학생도 힘과 운동 하면 뉴턴의 법칙, 그리고 F=ma 곧, 가속도 (a)는 힘(F)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m)에 반비례한다는 정도는 안다고 합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아이나 어른 할 것없이 ‘힘’과 ‘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요? 힘은 압력, 에너지, 그리고 운동량과 어떻게 다르며 무슨 관계가 있는지, 또한 돌림 힘, 짝힘, 가짜 힘 등은 무엇인지 따지면 그 순간 당혹스러워집니다. 보인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닐 테고, 더구나 ‘보이지 않는 힘’을 어떻게 아는지 되묻고 싶겠지요.

 

부끄럽지만 꽤 오랫동안 물리 교육과 씨름해 온 저도 실은 잘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구교우로서 오랫동안 날마다 주모경을 외우지만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갈수록 쉽지 않습니다. 그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푸념하는 못난이일 뿐입니다.

 

 

힘이란 무엇인가

 

‘힘’이란 무엇인가요? 팔뚝이 굵어 ‘힘’이 셀 것 같은 사람이 팔씨름하면 백전백승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굵은 팔뚝에 있을 법한 ‘힘’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할까요?

 

일상에서 ‘힘’이란 말은 여러 의미로 쓰입니다. 그렇지만 ‘힘’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고 냄새를 맡거나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힘’이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과학이 무엇이냐?’, ‘종교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처럼 바로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힘, 과학, 종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나아가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며 사용하겠지만 ‘완전히’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고 있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관심 분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아이가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리를 공부하기 전의 학생들은 대부분 ‘물체가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깁니다. 사실일까요?

 

힘, 과학, 종교,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이 있을지 스스로 되물어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완전히 알 수 없기에 함께 살려면 서로가 믿고 기대어야 하는 것이란 생각도 함께 가져 봅니다. 그림 보듯 환히 보고 알면 좋으련만 왜 하느님께서는 저희를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는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단지 믿음을 가지고 끝없이 배우고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겠지요.

 

 

‘정지’해 있는 것과 ‘운동’하는 것

 

‘정지해 있는 것은 항상 그대로 정지해 있고,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것은 계속 같은 속도로 운동한다.’는 것을 뉴턴의 운동 첫째 법칙이라고 합니다. 곧 정지해 있던 것은 계속 그대로 정지해 있습니다.

 

뉴턴의 첫째 법칙이 그럴듯하고 알아들을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방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만 하는 나는 ‘정지’해 있는 것 같고, 내 집은 땅 위에 ‘정지’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한 은하계 속에서 움직인다고 하니, 그렇다면 더 나아가 은하계도 더 큰 규모의 ‘정지’해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우주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끝없는 미지의 것에 대해 오묘한 주장을 할 따름입니다.

 

절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은 운동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운동한다는 것인지, 더 나아가 정지해 있는 것이 없으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어떤 학자는 세상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운동’이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정지해 있는 것은 존재하기에 계속해서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얼음판 위에 돌을 던지면 상당히 멀리까지 거의 같은 속도로 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정지합니다. 마찰이 없으면 계속해서 ‘끝없이’ 갑니다.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것은 마찰 등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 다시 말해 외부의 ‘힘’을 받지 않으면 일정한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은 이처럼 ‘힘’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운동이라는 것이 정말 이 한 경우일 뿐일까요? 지금껏 운동은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것을 말했는데,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만일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의아하긴 합니다만, 시간이 변함에 따라 인류 역사 이래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가속도’, 쉬운 것 같으며 어려운 개념

 

속도는 어느 정도로 빠르게 운동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속도가 일정하면 계산하여 그 값을 구하기는 쉬운데, 실제로 자연계에서 모든 물체는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속도가 모두 일정하다면 이 또한 참으로 이상한 세상일 것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자체가 조화로우면서도 다채로워서만이 아닌 이처럼 물체의 속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우리는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점은 속도가 변하는 것과 관계된 가속도 운동입니다.

 

속도가 변하는 것은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속도 크기의 값이 변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방향이 변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두 가지가 다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째로 속도 크기의 값이 변하는 가속 또는 감속의 가속도 운동의 예입니다. 정지해 있다가 조금이라도 운동하는 것은 가속도 운동이며, 점점 더 빨라지는 것 또한 가속도 운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운동을 하더라도 속도가 변하지 않으면 등속 운동이지 가속도 운동은 아닙니다.

 

또한 점점 느려지는 운동이나 운동하다 정지하는 것은 감속되는(-) 가속도 운동입니다.

 

그런데 국내외 연구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학생은 속도가 큰 운동, 곧 빠른 운동은 가속도가 큰 운동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르게 고쳐 가르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둘째로 물체의 운동 방향이 변하는 운동도 가속도 운동입니다. 예컨대, 등속 원운동은 빠르기는 변하지 않지만, 방향이 계속 변하는 가속도 운동입니다. 던진 물체의 포물선 운동,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타원 운동 등은 빠르기도 변하고 방향도 변하는 가속도 운동입니다.

 

물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도 삼차원 공간 속에서 임의로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 크기의 값과 방향을 제대로 알기란 어렵습니다. 그런데 간혹 삼차원 공간 속에서 임의로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가 보인다.’는 학생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아름답고 오묘한 자연의 세계를 보고 감탄하지만, 그러한 세상을 창조하신 분과 그분의 솜씨마저 ‘보이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하고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이런 연유로 대단한 학생입니다. 위대한 과학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래서 가속도를 잘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참 중요합니다.

 

 

힘과 가속도

 

물체의 속도가 저절로 변하지 않고 힘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 뉴턴의 운동 둘째 법칙입니다.

 

첫째로 물체에 힘을 주면 힘주는 방향으로 힘의 크기에 비례하는 가속도가 생긴다는 것이지요(F∝a).

 

정지한 물체에 힘을 계속 주면 힘주는 방향으로 가속도 운동을 하지요. 운동하고 있는 물체에 운동 방향으로 힘주면 더 빨라지는 가속도 운동을 하게 됩니다.

 

좀 어려워지는 것은, 운동하고 있는 물체에 운동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느려지다가(감속되는 가속도 운동), 계속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면 드디어 정지하는 가속도 운동을 하는 것이 됩니다.

 

둘째로, 더 어려운 것은, 운동하고 있는 것에 운동 방향과 나란하지 않게 계속 힘을 주면 휩니다. 곧, 운동하던 방향으로 계속 운동하지도 않고, 힘준 방향으로 곧 꺾어져 운동하지도 않고 그 사이로 휘어집니다.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에 운동 방향과 직각으로 적당한 힘을 계속 주면 등속 원운동을 하게 됩니다. 인공위성에 유류를 공급하지 않아도 지구가 중력으로 계속 잡아당기기에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것이 기본적인 물리입니다.

 

힘을 주면 가속도 운동을 하게 되어 점점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휜다는 것과 이런 운동은 힘을 계속 받고 있다는 관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과학 과목에서 ‘힘과 운동’ 단원을 공부한 어른들도, 물리를 배우기 전까지는 힘과 속도가 비례한다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F∝v).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잘못된 개념’에 대한 수십 개국의 외국 학생들의 조사 결과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갈릴레이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서구의 ‘과학·철학자’들도 그렇게 여기고 주장하며 교육해 왔다는 것입니다.

 

‘유명’하다는 서구의 학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몰랐을까요. 지금 중학생도 공부하면 알 만한 것을 수천 년 동안 ‘잘못’ 가르쳤다니! ‘건방진 놀라움’이 절로 나옵니다. 한편으론 현대 과학자들이 뽐내고 있는 지식이 뒤에 놀랍게 멍청한 주장이었다고 웃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현대 물리학의 내용을 보면 ‘힘’이라는 것은 지난날과 비교하면 보이지 않습니다. 별로 중요하거나 유용하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우리가 멍청하여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이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을 훤히 ‘보고’, 알아차리어 기쁘게 실천하는 사람은 지성과 영성을 갖춘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 교수.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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