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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부부를 이어 주는 거룩한 일치의 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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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28 ㅣ No.1026

부부를 이어 주는 거룩한 일치의 끈, 사랑

 

 

사랑은 가톨릭의 본질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마태 22,37-40), 사랑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인간과의 관계,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연관지어 서술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사랑은 흔히 말하는 남녀 상호간에 맺어지는 심리적인 호기심이 아니며 인간의 경험 안에서 어떤 개별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인간의 삶 전체를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혼인 : 진정한 사랑의 응답

 

수세기 동안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관한 항구한 가르침을 견지하여 왔다. 이 가르침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쁨과 희망’이라는 제목을 가진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다. 「사목헌장」은 혼인과 가정의 존엄의 증진을 한 장 전체에 걸쳐 다루고 있다. 혼인을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정의하고, 사랑을 가정의 중심에 두며, 아울러 현대 문화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환원주의와 대조되는 이 사랑의 진리를 보여 준다. ‘부부의 참된 사랑’은 서로 자신을 내어 주는 선물을 의미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성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을 하나로 통합한다(「사목헌장」, 48-49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사랑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이 혼인과 가정에 관한 복음을 표현하는 데에 불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 사랑과 가정의 사랑의 성장을 촉진하고 강화하며 증진하지 않으면서 신의와 상호 증여의 길을 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랑의 기쁨」, 89항).”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혼인성사의 은총은 무엇보다도 먼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사랑의 기쁨」, 89항).

 

 

왜곡된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면서도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한다(「사랑의 기쁨」, 89항).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 사용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현대 사회의 방송 매체를 통해 보여 주는 감각적인 사랑, 요즘 남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쾌락주의적인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의 대중매체는 성적 쾌락을 강조한 대중문화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다. 특별히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도 선정적인 옷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추는 가수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또한, 가사의 내용도 ‘사랑’이라는 말이 자주 들어가지만 건전한 사랑이 아닌 육체적인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내용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남녀가 서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쾌락주의적 가치관이다. 이처럼 대중매체는 성과 사랑을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이로 인하여 사랑은 그 본질적 요소가 사라지고 점차 쾌락주의적 가치로 변질되었다. 거리마다 구호마다 사랑이 넘쳐 나고 있는 것은 물론, 대중들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하고 있는 대중가요에서조차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과 같은 밝은 면을 넘어 이제는 사랑의 아픔이나 슬픔 같은 어두운 면까지도 노래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실체를 규명할 수 없이 모호한 감정의 일부라는 인식이 퍼져 가고 있다. 특별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 주는 사랑은 불륜의 반대 개념으로 여겨지는 경우들이 많다. 또한 불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는 장면을 본다. 화면에 비치는 불륜의 현장은 부부 사이에 맺어진 거룩한 계약의 징표인 사랑의 개념을 완전히 왜곡시킨다. 이러한 불륜의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찬범 군(가명)도 사랑에 대한 인식이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사랑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가 맺는 좋아하는 감정이고 그 감정이 발전하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잖아요. 서로가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봐요. 그리고 사랑이 식으면 언제든지 헤어지고 다른 이성을 찾으면 되는 거예요. 서로서로 좋잖아요.” 특별히 영상 매체에서 성적 행위를 연상케하는 장면이나 인기 가수들의 노래에서 야한 가사가 없으면 내용이 너무 밋밋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중학교에 다닌다는 박아름 양(가명)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제 친구가 자기 남자 친구랑 키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물론 몇몇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놀랐지요. 하지만 영화나 다른 TV 프로그램을 보면 키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서로 간의 관계 표현이잖아요. 그래서 너무 부러워하는 분위기였어요. 기회가 되면 저도 해 보고 싶어요.”

 

이처럼 인간의 성은 철저히 세속화되었다. 성과 사랑은 서로의 즐거움을 만족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성이 주는 생명의 신비를 체험할 열망도 사라졌으며 혼인을 완성하는 참된 사랑의 행위라는 인식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사랑=성적 행위=개인적인 즐거움’이란 등식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필요한 물건은 챙기고 필요 없으면 그냥 쉽게 내버리고 새롭게 구입하는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사랑이란 더 이상의 객관적이고 거룩한 진리가 아니라 서로 간의 사랑이 진심이고 그 사랑이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상대방을 소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물건처럼 내쳐 버려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의 자기중심적 가치를 두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참사랑의 의미

 

사랑의 의미가 왜곡되는 이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13장 4절부터 7절까지에 나오는 ‘사랑의 찬가’를 소개한다. 일상생활에서 부부는 서로, 그리고 그들 자녀들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고 키워 나간다. 모든 가정의 실제 삶에 구체적으로 이를 적용하기 위해 바오로 성인이 전하는 사랑의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사랑의 기쁨」, 90항 참조).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성인의 ‘사랑의 찬가’로 부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신다. 부부 사랑은 남편과 아내를 일치시켜 주는 끈이며, 이는 혼인성사의 은총으로 거룩해지고 명료해진다. 이는 영적이며 헌신적인 ‘애정의 결합’으로 우정의 따스함과 육체적 사랑의 열정이 합쳐진 것이지만, 감정과 열정이 식어버려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사랑의 기쁨」, 120항). 이 사랑은 혼인 생활의 모든 의무에 스며들어 있는 가장 고귀한 것으로서, 그 원천은 성령이시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기까지 당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사이에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계약을 반영한 것이다.

 

‘사랑의 기쁨’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물질이 아닌 인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일방적인 소유가 아닌 함께 나누며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사랑은 부부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맺어 주며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준다. 더 나아가 사회 안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더욱 인간적인 마음으로 다가서며 그들을 받아들일 힘을 얻는다.

 

“부부 사랑은 ‘가장 훌륭한 우정’입니다. 부부 사랑은 좋은 우정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결합입니다. 이 특징에는 상대방의 행복의 추구, 상호성, 친밀함, 온유함, 견고함, 그리고 함께 사는 친구 사이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혼인은 이 모든 것에 불가해소적인 배타성을 더하는 것으로 모든 삶을 함께 나누고 만들어가겠다는 굳건한 서약으로 표현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그 본질의 표징을 깨닫도록 합시다.”(「사랑의 기쁨」, 123항)

 

이 말씀을 깊이 되새겨 본다. 가장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던 가부장 중심적인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가정은 가장의 소유물이 아니다. 가장의 말 한마디에 개인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절은 뒤로하고 이제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부부 상호 간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길러 주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정 공동체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간다. 부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공유하고 고통과 역경에 의미를 부여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로 격려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성가정을 이룰 것이다.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사제들이 평신도가 겪는 어려움에 관해 상담을 하다가 가끔 듣는 말이 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랑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이상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교회의 가르침을 한결같이 지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에요. 부부 싸움을 하거나 때론 남편이 너무나 미울 때도 있지요.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생길 때마다 엄청난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매번 고백성사를 보자니 좀 그렇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가끔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에게 큰 짐이 될 수 있고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분히 잘 알고 계신다. “한계가 있는 두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일치를 완벽하게 재연하라는 엄청난 짐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혼인은 하나의 표징인 것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의 점진적인 통합을 통해 나타나는 역동적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사랑의 기쁨」, 122항)라고 언급한다.

 

이는 교회가 제시하는 사랑의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이상적인 잣대에 기준을 두지 마라는 말씀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기준을 제시하되 현실 상황에 맞추어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데 의미가 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를 알려 주지만 자칫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새로운 길로 목적지를 가도록 알려 준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도 일방적인 길로만 목적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이끌어 주며, 설사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왜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는지에 대한 깊은 공감과 함께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교회는 100%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100%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공동체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사랑을 한결같이 지키는 공동체가 아니라 여러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겨내며 온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이다. 「사랑의 기쁨」에 나오는 사랑의 덕목을 원론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삶의 이정표로 여기며 기도 안에서 그리고 서로의 노력 안에서 지킬 수 있도록 서로를 내어 주는 연습을 해야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목자들이 현대의 가정이 겪는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사랑의 기쁨」, 202항)한다. 이에 신학생들이 약혼과 혼인에 관하여 교리교육뿐만 아니라 더욱 폭넓은 학제 간 교육을 받아야 하며 가정 생활에 대한 구체적 현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사랑의 기쁨」, 203항).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사랑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권고받는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이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쾌락과는 전혀 다른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함께 배려하고 나눔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살레시오 가족, 2017년 7월호(145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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