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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요한 클리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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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8 ㅣ No.467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요한 클리마쿠스

 

 

정말 발음하기 민망했던 병신년도 이제 허무하게 끝나간다. 2016년은 참으로 ‘병신년’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온갖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로 병들었음을 적나라하게 목격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 광기가 과연 언제 끝날지, 병신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리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번 호에 소개할 교부는 2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6세기와 7세기에 걸쳐 살았던 시나이의 교부 요한 클리마쿠스(575-650년경)다. 이전 동방 수도승 영성을 종합한 그는 비잔틴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부 중 하나이다. 트라피스트회 드 랑세 아빠스는 그를 성 바실리우스 이후 가장 훌륭한 고독가이자 가장 위대한 영적 사부로 보았다. 병신년을 마무리하며 이 훌륭한 교부와 함께 잠시나마 우리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고 위로하길 바란다.

 

 

삶의 여정

 

요한 클리마쿠스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동시대인으로 추정되는 라이투의 다니엘이 쓴 짧은 문헌이 유일한 원전이다. 그나마 단편적 정보만을 제공해 줄뿐 그의 출생과 초기 생애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다니엘의 증언에 따르면, 요한은 16세 때 시나이 수도원의 마르티리오스의 제자가 되었고, 스승이 죽자 시나이 산 발치 톨라스의 한 동굴에 은거하여 40년 동안 은수생활을 했다. 이 기간 동안 한 번 이집트를 방문하여 그곳 ‘참회자들의 공동체’에서 한 달간 머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후에 몇 년간 시나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공동체를 다스렸고, 노년에 원장직을 물려주고 다시 고독 속으로 은거하여 650년경 생을 마감했다.

 

다니엘은 요한을 인격이 출중한 탁월한 영적 사부라고 증언한다. 그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의 인격에 감화되었고, 많은 이가 그에게 와서 영적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의 시기심을 야기했고, 그들은 그의 사목활동에 대해 거짓 고발과 비난을 퍼부었다. 요한은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했고, 고발자들은 마침내 그의 겸손과 인내에 탄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요한은 뜻하지 않게 시나이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수도 영성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천국의 사다리』를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일한 작품

 

요한은 『천국의 사다리』라는 생애 유일한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과거 3세기 동안의 수도승 영성의 진정한 종합이라 하겠다. 요한은 여기서 이전 수도승 전통과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수도승생활의 정점인 ‘신성한 빛에 의한 인간의 신화(神化)’에 이르는 길을 실천적 단계로 따르도록 제시한다.

 

이 작품은 수도승들을 위해서 써졌지만 실제 수많은 기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널리 애독되어왔다. 요한의 본래 의도가 어떠하든 이는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성 바실리우스의 주장대로 수도승생활은 ‘복음에 따른 삶’ 외에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승이든 결혼한 사람이든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일한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들 응답의 외적 조건은 다양하지만, 그 길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요한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직접적 체험의 문제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는 영적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각자 자기가 과거에서 물려받은 바를 스스로 다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교사는 하늘에서 직접 영적 인식의 판을 받은 사람이다. 그 판은 하느님 자신의 손가락으로, 즉 능동적 조명 활동으로 새겨진 판이다. 그러한 사람은 다른 책이 필요 없다. 교사들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베껴서 가르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목자에게 보낸 서한」 1)

 

이 작품에서 요한이 사용하는 이미지는 야곱이 본 것(창세 28,12 참조)과 같이 땅에서 하늘로 펼쳐진 사다리의 이미지다. 작품 전체는 이 사다리의 이미지를 둘러싸고 구성되어 있는데, 곧 30개의 단계(담화)와 부록과도 같은 「목자에게 보낸 서한」으로 이루어진다. 담화는 크게 세상과 결별(1-3), 근본 덕행(4-7), 욕정과 싸움(8-23), 수행생활의 완성(24-26), 하느님과 일치(27-30)로 구분되어 있다. 중간의 세 부분은 전적으로 수행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은 이 사다리의 단계를 밟고 올라가 마침내 하느님과 일치라는 정상에 오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목자에게 보낸 서한」은 수도원 장상을 위한 권고로서 그리스도를 유일한 목자의 모델로 제시한다.

 

 

가르침

 

요한 클리마쿠스는 『천국의 사다리』를 통해 수도승생활 신학을 제시하기보다는 수도승생활을 이야기한다. 수도승생활이란 악습을 거스른 싸움(수행)을 통해 성삼위에 대한 관상(신학)과 사랑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즉, 자기 정화를 통한 하느님과 일치에 이르는 상승 여정이다. 사다리는 인간 아담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이 상승 여정을 잘 표현해준다.

 

이 여정은 세상과 결별(1-3)로 시작된다. 이 결별은 세상에 대한 포기, 내적 이탈, 그리고 수도원 입회를 뜻하는 외적 이탈로 이어진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수행생활(4-26)로 나아간다. 요한은 수행생활의 핵심 내용인 악습과 싸움에 앞서 먼저 순종, 참회, 죽음의 기억, 펜토스(penthos)를 네 가지 근본 덕행을 제시한다. 순종은 신앙행위로써(4,9) 겸손과 아파테이아(내적 평정심)로 인도하기에 중요하며, 장상을 신뢰하는 것이 순종의 기초라고 말한다(4,60). 특별히 그가 ‘기쁜 탄식’이라 부르는 펜토스는 충분한 사랑을 하지 못한 데서 오는 슬픔(7,45)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눈물이기도 하다. 요한은 탄식이 우리를 겸손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그 다음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악습과 싸움이 나온다(8-23). 요한은 각 악습을 묘사하고 분석하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먼저 분노에서 아케디아(영적 태만)로 나아가는 여섯 단계가 제시된다(8-13). 분노는 기도의 가장 큰 장애물로서 원한, 악의, 악담, 위선을 낳는데, 이런 악습들의 치료제로 혀와 생각과 마음의 침묵이 제시된다. 또 이런 악습들은 수도승을 아케디아로 이끈다. 요한은 아케디아를 ‘모든 악습 중 가장 고약한 녀석’이라 부르며 공동생활을 효과적 치료제로 제시한다. 이어서 탐식과 음욕과 탐욕이 나오고 그 치료제로 위의 절제, 정결, 가난이 제시된다(14-17). 특히 정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정결은 인간적 사랑을 신적 사랑으로 변화시키면서 육체의 변형과 성화를 목표로 한다고 강조한다. 끝으로 무감각에서 헛된 영광과 교만까지 여섯 단계가 제시된다(18-23).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헛된 영광과 사람들을 무시하는 교만의 치료제는 각각 감추어짐과 겸손이다.

 

악습과 싸움은 온유, 단순성, 정직, 겸손, 식별이라는 열매를 낳는다(24-26). 이 열매들과 함께 수행생활은 완성이 되고, 통합된 영혼은 이제 하느님과 일치, 즉 관상으로 나아간다. 이 마지막 단계들에서 요한은 헤시키아, 기도, 아파테이아, 사랑이란 상호 대체 가능한 용어로 관상을 묘사하고 있다(27-30).

 

요한이 제시하는 영적 여정은 결국 수행을 통해 관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이것은 수도 교부들의 전통적 가르침이기도 하다. 요한은 사다리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서른 단계로 이 여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수도승 생활이 모두에게 모범이 된다고 믿었고, 수도승들의 모범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을 이 여정으로 초대한다. 요한은 수도승의 역할을 이렇게 요약한다. “천사는 수도승을 위한 빛이며, 수도승생활은 모든 사람을 위한 빛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승은 자신의 모든 언행에서 결코 물의를 일으킴 없이 모두에게 건강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빛이 어둠이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어둡고 모든 사람에게 암흑이겠습니까?”(26,25)

 

 

마치면서

 

『천국의 사다리』는 수도승 영성의 종합 지침서와도 같다. 요한 클리마쿠스는 이 작품을 통해 동방에서 무엇보다 헤시카즘 운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새로운 신학자 시메온과 그레고리우스 팔라마스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닐 소르스키와 요셉 볼로코람스크와 같은 러시아 수도승 저술가들과 14세기 라틴 영성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동방교회에서 요한에게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는 것은 탁월한 식별의 은사에 결합된 그의 풍요로운 가르침 때문이다. 이 작품은 현재 한국 베네딕도 수도자 모임에서 발간하는 『코이노니아』란 잡지를 통해서 우리말로 번역?연재되고 있다. 어느 날 완역되어 한 권으로 출판되기를 희망해본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이제 분도지 연재를 마친다. 지난 2년간 주로 동방 수도교부들을 소개함으로써 수도생활의 맥을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지만, 그 결과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며 병신년을 미련 없이 보내려 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겨울호(Vol. 36),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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