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 여행81: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7 ㅣ No.393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1)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


악의 세력이 활개치더라도 믿음은 더욱 굳건하게

 

 

테살로니카 2서는 하느님은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실현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 1535~41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출처=가톨릭굿뉴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2서)은 바오로 사도의 차명 서간에 속하는 편지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테살로니카 2서는 테살로니카 1서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주제뿐 아니라 문체나 문구 역시 테살로니카 1서와 비슷합니다. 다른 바오로 차명 서간도 그렇지만 테살로니카 2서의 저자 역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제자들이나 바오로계 구성원 중의 한 명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서간이 기록된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테살로니카 2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본다면 1세기가 넘지 않는 후반에, 곧 90년 즈음이나 그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테살로니카 1서와는 꽤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기록된 편지입니다.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2테살 1,4) 서간은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처해 있는 박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합니다. 박해와 환난 속에 있는 신자들에게 서간의 저자로 표현되는 바오로와 그의 협력자들은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셔서 박해하는 이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겪는 이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강조합니다.(2테살 1,6-7)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심판의 맥락 안에서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실현될 것입니다. 

 

테살로니카 2서에서 표현하는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하느님의 심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느님의 심판은 자주 언급되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심판은 상과 벌을 강조하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정의를 강조합니다. 비록 이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시시각각 드러나지 않지만, 그분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면서도 그 때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2테살 2,2)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지만 그 날이 언제인지를 따지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알 수 없는 것이고(마르 13,32) 이런 이들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곧 끝은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마르 13,7) 

 

테살로니카 2서는 그 표징으로 ‘배교하는 사태’와 ‘무법자’를 이야기합니다. 종말을 말하는 본문들에는 ‘무법자’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1요한 2,18)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예언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마태 24,24) 여기서 말하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특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신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2테살 2,4) 앉는다고 표현되는 까닭에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황제의 상을 만들어 경배하던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것 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본문들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악의 세력의 일종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할 수 없도록 만드는, 큰 힘을 가지고 거짓된 믿음을 갖게 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림이나 종말에 대한 강조가 의미하는 것

 

초기 교회 공동체는 분명 종말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나는 일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세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람들을 현혹시켜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세력들이 악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렇기에 재림이나 종말에 대한 강조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대한 강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종말이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의 모습 안에서 흔들림 없이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종말을 말하는 본문들이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월 7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4,75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