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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성전에서 피어난 예술, 원주교구 대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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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16 ㅣ No.748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성전에서 피어난 예술, 원주교구 대화성당

 

 

강원도 평창의 대화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한다. 주인공 허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 풍경을 묘사한 바로 그 대화에 세워진 성당이 대화성당이다. 대화성당은 작지만 아름답고 소박한 예술성당이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당시 대화성당의 황인찬 주임신부는 원주교구 주교님으로부터 독일 유학을 허락받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신부님만은 꼭 성전을 지어주고 떠나세요.”라며 부탁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교우들의 간절한 당부 앞에서 “유학을 가야 하나? 성전을 지어야 하나?”라는 문제로 성체 앞에서 한 달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유학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새 성전을 짓겠습니다.”라는 결심을 내렸다.

 

나와 대화성당과의 인연은 중고등학교 동창인 류충희 신부님과 함께 떠난 유럽 성지순례에서 황인찬 신부님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인연으로 종로성당에서 황 신부님의 성전건립 기금마련 강론을 듣게 된 것이다. 황인찬 신부님은 모금 강론 중 시골성당의 어려운 상황을 호소한 후 감사의 표현으로 영화 주제곡 「태양은 가득히」를 색소폰으로 연주하였는데 구슬픈 음악이 교회 안에 울려 퍼지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신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 기금을 봉헌했다.

 

1997년 4월 20일 기공식과 더불어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했던 모금 강론은 그렇게 첫걸음을 시작하여 전국 12곳의 성당을 다니며 필요한 건축경비가 마련되었다. 나 역시 종로성당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지갑을 열었고 내가 가진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봉헌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십자고상(사진1), 제대, 감실, 독서대(사진2), 성수대, 14처, 성모자상, 지붕 위의 십자가(사진3)”

 

이들 성미술이 내가 대화성당을 위해 봉헌하고자 마음먹은 성미술이었고 기적처럼 다 실행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성당의 성미술을 제작하는 계기였고, 이후 하느님의 은총으로 많은 성당들의 성미술을 제작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또한 나의 안성 작업장 근처에 사는 도예가이자 친구인 변승훈 작가를 끌어들여 대화성당 내부 전체를 분청 모자이크 벽화(사진4)로 제작하도록 청했다. 이로 인하여 변승훈은 도자기 그릇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던 분청사기 기법을 건축물 벽장식의 일부로 확장하는 길을 열게 되었다. 성당 내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그의 작품은 성당 안의 모든 성미술들을 모두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변승훈은 대화성당 작업을 하면서 늦둥이 쌍둥이 아들을 낳는 축복도 받았으며 이 작업을 계기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후에도 성미술 작업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대화성당의 성미술 제작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가난한 시골에서 성당을 짓기 위해 유학까지 포기한 신부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작품비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좋은 성당을 짓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에 임했다. 신부님은 비록 미술에 대한 조예는 깊지 않았으나 성미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작가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유를 주었고, 전례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작품 형태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작가들에게 이 같은 분위기는 대화성당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십자고상(사진1)

 

대화성당 십자고상은 십자가 전체가 검정색 대리석 통돌이다. 성미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십자고상은 대부분 나무나 청동으로 제작하며 십자고상 전체를 돌로 제작한 경우는 흔치 않다.

 

일반적으로 십자고상은 제대 뒤 벽의 중앙에 위치한다. 하지만 대화성당의 십자고상은 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에 설치했다. 이렇게 중앙을 살짝 벗어나 배치하니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유지하면서도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대화성당의 예수님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 죽음을 이겨내고 우리 인류에게 구원을 준 구세주의 희망적인 모습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초자연적 모습을 띤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신자들은 평화를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하며 좋아하였다. 나는 대화성당의 십자고상을 제작하면서 고통스런 예수님보다는 죽음을 이겨내고, 세상 시름을 잊으신 평화로운 예수님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제대, 감실, 독서대(사진2)

 

성당 제단에 자리 잡고 있는 제대와 감실 그리고 독서대는 같은 재질의 임페이얼 레드라는 붉은색 화강암으로 제작하였다. 화강석은 대리석에 비하여 강도가 높아서 조각을 하기에 무척 힘이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임페리얼 레드는 색상이 아름답고 수천 년 동안 보존이 가능하여 화강성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이 돌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작이 가능했다.

 

이 세 작품은 각기 독립된 기능을 갖고 있지만 부드러운 곡선과 볼륨으로 제작하여 공간 전체에 통일감과 편안함 그리고 안정감을 주어 미사를 드릴 때 신자들의 시선을 중앙으로 모으는 역할도 하도록 하였다.

 

 

지붕 위의 십자가(사진3)

 

4명의 복음서 저자가 서로 어우러져서 십자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독창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당시까지 성당의 종탑 십자가를 독특한 작품으로 제작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는데, 기존 성당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어 많은 고민 끝에 만든 작품이다.

 

종탑이 지탱해야 하는 엄청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청동으로 제작하였으며 무게는 600kg 정도이다. 당시만 해도 성당의 십자가는 기성품을 구입하여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대화성당의 십자가는 이 성당에 어울리는 형태로 디자인을 한 세계 유일의 십자가이다.

 

 

 

[평신도, 2020년 가을(계간 69호), 한진섭 요셉(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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