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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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난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타보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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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7 ㅣ No.1794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난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타보르산

 

 

– 바니아스라고 부르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권위 있는 가르침과 기적 행위로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의 주민들은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나자렛 출신 예언자로, 또는 구약의 엘리야와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시어 데리고 다니신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누구로 여겼을까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복음서 곧 공관(共觀)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여기느냐고 물으시는 이야기를 전합니다(마태 16,13-20; 마르 8,27-30; 루카 9,18-21).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물으셨다가 그 다음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십니다. 이 물음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신앙을 고백한 곳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이었습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갈릴래아 호수 북단에서 북쪽으로 40km쯤 떨어진 곳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니신 곳으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방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바니아스라고 부르는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헤로데 대왕에게 물려준 지역으로, 헤로데 대왕의 셋째 아들 헤로데 필리포스(루카 3,1 참조)가 물려받아 도시를 건설하고 카이사리아(‘황제’라는 뜻)라는 지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의 도시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필리포스의 이름을 딴 필리피를 덧붙여서 카이사리아 필리피가 되었습니다.

 

– 카이사리아 필리피 고대 유적(좌) 바니야스(우).

 

 

베드로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곳

 

이 지역은 원래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세기 중반~기원전 1세기 중반)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Pan) 신(헤르메스의 아들로 피리를 부는 목양의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을 파네아스(Paneas)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바니아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하지요.(아랍인들은 ‘판’이라는 발음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북쪽의 헤르몬 산의 눈이 녹아 바위 속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아나오는 수원지로서도 유명한 바니아스는 깎아내린 듯한 암벽과 고대의 유적들,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보존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신앙을 고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시몬의 신앙 고백에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16,18). 바니아스, 곧 카이사리아 필리피의 깎아지른 암벽은 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기에도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들은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이 있고 난 며칠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 그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하시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복음서들은 이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일어난 산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엇갈립니다만, 그리스도교 전승에서는 이스라엘 북부 곡창지대인 이즈르엘 평야 북동쪽에 있는 타보르산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일어난 산이라고 여겨왔습니다.

 

해발 580여m의 타보르산은 해발 고도로 따지면 예루살렘보다 200m나 낮지만 이즈르엘 평야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타보르’라는 말 자체가 높다는 뜻이지요. 마치 사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볼록 솟아 있는 타보르산은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 성지를 안내하는 한국인 가이드들은 우스갯소리로 ‘다 보이는 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타보르산에는 4세기부터 성당과 수도원이 들어서면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잇따랐습니다. 12세기에 십자군이 이곳에서 패하면서 이 지역은 400년 이상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7세기에 들어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무슬림 군주의 허락을 받아 산 정상에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하면서 다시 순례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 타보르산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위)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제대 뒤 모자이크화(아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묘사한 모자이크화 눈길 끌어

 

오늘날 타보르산 정상에는 기념 성당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1911년에 세워진 엘리야 성당으로 정교회가 관할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이스라엘 성지 건축가 안토니오 발루치의 설계로 1924년에 세워진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인데,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가 관할하고 있지요.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모세와 엘리야에게 바친 경당이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모습이 거룩하게 변모할 때에 예수님 곁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입니다. 성당 중앙 제대 뒤 천장 쪽에는 예수님이 중앙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세 제자가 이를 지켜보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화가 눈길을 끕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마태 16,21-28; 마르 8,31-9,1; 루카 9,22-27). 스승에게서 영광과 영예를 기대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지극히 실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타보르산에 오르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세 제자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타보르산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산입니다. 삶이 힘들고 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고개를 들어 타보르산을 바라봅시다.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 힘에 의지해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내디디며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갑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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