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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10: 한국 교회 생명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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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16 ㅣ No.467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10. 한국 교회 생명운동 (상)


생명 수호 위한 교회의 외침… 신자 관심과 참여로 화답해야

 

 

- 고 김수환 추기경은 2005년 황우석 사태의 참담함을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장면 하나

 

2005년 12월 16일. 고 김수환 추기경은 눈물을 흘렸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대한 취재진 질문이었는데, 추기경은 대답했다.

 

“황우석 교수 연구성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솔직히 속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하고 바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세계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추기경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 2~3분간 침묵이 지속됐다. ‘추기경의 눈물’은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전파를 탔고, 이 눈물은 생명을 수호하려는 가톨릭교회의 성명이나 구호, 생명운동보다도 강력했다.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해왔다.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한국사회는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5년 서울대교구는 이처럼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온 인간경시 풍조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물질만능주의 등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 생명위원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은 생명위원회 발족식에서 “생명을 파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대신 교회가 대안으로 제시해온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촉진하고, 생명존중 가치를 공고히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장면 둘

 

“나의 몸은 불법이 아니다! 내 자궁은 나의 것!”

 

8월 2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 125명이 검은 옷을 입고 경구용 임신중절약 ‘미프진’을 복용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2012년 8월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이유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6년 만에 헌법재판소가 다시 위헌 심리를 하면서 여성단체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선 것. 125명은 하루 평균 임신중절 수술 여성(3000명,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발표)을 24시간으로 나눈 숫자다. 이들이 국내 도입을 요구하는 ‘미프진’은 이미 착상된 수정란을 파괴하는 ‘낙태 유도약’으로,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이들은 미프진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단체의 집회가 열리는 동안, 미혼모 이은주(가명, 데레사)씨는 장애를 가진 3살 아들의 재활치료를 받는 데 여념이 없다. 이씨는 대학생활 중 임신이 됐고, 낙태를 생각했지만 미혼모 시설의 수녀를 만난 후 입양으로 마음을 돌렸다. 출산 후 엄마의 삶을 택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엄마의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본 순간은 없다.

 

전국 생명운동 임시 연대기구인 천주교 생명운동연합회가 2012년 7월 개최한 생명 수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응급피임약은 낙태약이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은 생명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낙태와 안락사 문제, 모자보건법, 자살, 유전자 조작, 배아줄기세포 연구, 응급 피임약 등 생명윤리와 맞닿은 사회문제는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가져온 문제가 대부분이다. 생명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한 혜택을 안겨주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생명윤리와 가치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인간 배제의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은 1994년 ‘교황청 생명학술원’ 설립으로 본격화됐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자의교서 「생명의 신비(Vitae Mysterium)」를 발표하면서,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듬해인 199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 생명윤리 교과서’라 불리는 회칙 「생명의 복음」을 반포한다. 「생명의 복음」은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이 시대에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국 주교회의는 2001년 신앙교리위원회 산하에 ‘생명윤리연구회’(2008년 생명윤리위원회로 승격)를 발족하고, 2003년에는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현 가정과생명위원회) 소위원회로 ‘생명운동본부’가 설립된다. 생명운동본부는 2000년 3월 청주교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모자보건법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이 계기가 돼 발족했다. 2005년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설립에 이어, 2007년에는 생명윤리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에 생명대학원이 들어선다.

 

한국 교회는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운동본부 등 교회 내 생명운동 단체 등을 통해 20년 가까이 △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반생명적 요소 △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비윤리성 △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 운동 △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반대 운동 △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의 위험성 촉구 △ 자살 문제 등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서울대교구) 신부는 2013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정기세미나에서 한국 천주교회 생명운동의 현실과 방향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의 존중에 대한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각 위원회와 학술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생명윤리에 관한 문제들에 교회의 입장과 대응책을 제시해왔다”면서 “한국의 생명윤리 이슈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에 관한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 신부는 “교회 내부에서는 아직도 생명윤리가 무엇인지,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교회는 끊임없이 생명의 존엄성을 말하지만 신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교회의 생명운동은 신자들의 생활 속에 묻어나는 ‘생명 존중’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 현안은 낙태죄 폐지에 집중돼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심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톨릭 교회와 낙태를 반대하는 교수들 모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등이 낙태 반대 탄원서를 잇달아 제출했다.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은 단순히 구호와 외침, 이론ㆍ정책적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적 차원으로 옮겨가야 한다. 한 가정에서 부모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양육하는 일, 미혼의 자녀가 품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 미혼모의 삶에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는 일,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일 등 생명을 살리는 작은 몸짓이 신자들의 일상으로 들어와야 교회의 생명운동은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16일, 이지혜 기자]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10.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 (하)


제동장치 없는 과학 기술의 발달… ‘생명윤리’로 폭주 막아야

 

 

독일의 한 체외 수정 수술 클리닉에서 현미경을 사용하여 난자에 정자가 미세 주입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연구에는 ‘맞춤형 아기’를 생산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CNS 자료 사진]

 

 

과학기술의 발달이 삶의 질을 향상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지나치게 효율성과 경제성에만 관심을 두는 사회는 고통과 희생을 무의미하게 여긴다.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을 돌보는 일을 소모적인 시간으로 여기며,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생명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생명을 계획 가능하고 통제와 지배가 가능한 대상, 물질로 격하시켰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에서 “이제 인간은 탄생과 죽음의 순간에, 생명에 관하여 자기 실존의 참된 의미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능력을 잃었다”고 한탄했다. 

 

“인간은 오직 ‘행위’에만 관심이 있으며, 모든 종류의 기술을 사용하여 탄생과 죽음을 계획하고 통제하고 지배하기에만 바쁩니다. 탄생과 죽음은 ‘살아 내어야 할’ 최우선적인 체험이 아니라 단순히 ‘소유’하거나 ‘거부’하여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생명의 복음」 22항)

 

 

도구화된 생명, 인간의 기능을 계획ㆍ통제하는 인간

 

지난해 8월, 인간 배아에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고 교정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논란이 됐다. 한국과 미국 공동 연구진이 국제 과학기술지 ‘네이처’에 인간 배아에서 유전병 난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 우리나라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간 배아 연구에 제한이 있어, 이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이 결과를 놓고 국내 과학계는 인간 배아 연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는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곧 생체 실험”이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한국생명윤리학회도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연구는 ‘맞춤형 아기’를 생산할 위험성이 있다”고 반대했다. 

 

최근 방영한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는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를 보여준다. 남편이 사온 ‘가정부 로봇’ 아니타는 지친 아내, 엄마와는 달리 아침상도 풍성히 차리고, 청소도 잘한다. 진짜 엄마는 로봇으로 대체되는 자신의 삶에 위기를 느낀다. 아니타는 말한다. “내가 당신보다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기억을 잊지 않고 화내지도 않으며 우울해 하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삶을 주도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하는 인공지능 의사, 범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인공지능 판사 등으로 인공지능 영역이 확장될 것으로 예측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의 출현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표현으로 ‘육체는 단순히 기관과 기능과 에너지의 복합체로서 오로지 쾌락과 효율성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사용될 뿐’인 문화를 형성해 낸다. 이 같은 문화 풍조에서는 육체가 타인과 하느님, 세계와 관계를 맺는 표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육체는 단순한 물질로 격하되며, 자기주장과 개인적 욕망과 본능의 이기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생명의 복음」 23항 참조)

 

 

과학기술과 생명윤리의 공존, 가능할까? 

 

그렇다고 소달구지를 끌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명의 복음이 인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생명의 복음」 101항)이듯, 과학 기술의 발달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공동선 증진을 통해 사회 쇄신에 이바지해야 한다. 

 

김동광(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01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왜 과학이 어떤 영역보다 다른 영역에서 더 잘 작동하거나, 또는 자주 작동하는지 생명·환경·보건·안전·윤리 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간과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설명했다. 

 

“지금까지 과학 기술의 사회적 연구는 과학기술의 실행, 수행, 과학 지식ㆍ기술ㆍ인공물의 생산 등에 초점을 맞춰온 데 비해, 과학기술의 비실행, 비수행, 비생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과학과 생명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자본의 논리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과학 지식의 생산 양식의 변화는 오늘날 생명에 가해지는 전례 없는 위협과 죽음의 문화의 구조적 원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생명 분야의 과학기술과 생명윤리를 대립 구조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인간 생명을 담보로,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연구는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한 인간의 독립된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2005년부터 생명 가치 증진에 이바지한 학술 연구자에게 생명의 신비상을 시상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 역대 수상자들의 연구 분야를 보면, 과학기술과 생명윤리가 공존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23일, 이지혜 기자]

 

 

인간 생명 편집 기술... 연구로만 끝날까?


전방욱 교수, 생명학교 강의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 위험성 경고

 

 

“유전자 가위를 배아에 사용한다면 사람을 개량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지 않을까요?”

 

전방욱(강릉원주대 생물학,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사진) 교수는 15일 국회생명존중포럼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마련한 생명학교 강의에서 “과학자들은 질병 극복이나 인간의 발생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배아 연구가 필수라고 주장한다”면서 “인간 배아 유전체에서 사용되는 배아의 생산 및 폐기, 변형 배아의 착상 등과 관련해 인간 배아 복제, 배아 연구 등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과학기술은 인류를 위한 것인가? 유전자 편집 기술 속에 담긴 인간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한 전 교수는 ‘“크리스퍼(CRISPR)’는 ‘규칙적인 간격을 갖는 짧은 회문구조(앞뒤 같은 순서) 반복단위의 배열’이라는 영어 단어의 약자로, 이 크리스퍼를 사용해 DNA를 정확하게 절단하는 분해 효소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질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바로잡아 정상적인 표현형을 갖게 하는 유전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는 체세포 치료와 생식세포 치료로 나눌 수 있는데, 체세포 치료는 질병 과정을 늦추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생식세포 치료는 배우자 세포(난자와 정자) 및 초기 배아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전 교수는 “인간 생식세포 변형에 관한 기초 연구는 연구로만 끝나지 않으며, 편집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하려는 시도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생명과학기술은 몸, 생명과 연결돼 있어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23일,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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