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이 멀리해야 할 악습은 교만입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4 ㅣ No.572

[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이 멀리해야 할 악습은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돈만 사랑하고 허풍을 떨고 오만하며, 남을 중상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하느님을 무시하며, 비정하고 매정하며, 남을 험담하고 절제할 줄 모르며 난폭하고 선을 미워하고 배신하며 무모하고 교만하며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면서 겉으로는 신심이 있는 체하여도 신심의 힘은 부정할 것입니다.”(2티모 3,2-5)

 

이천년 전에 선포된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한 구절 한 구절 펄펄 살아서 우리네 삶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마음이 더 찔리는데요. 그들은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1티모 6,4)라니… 그렇습니다. 덧붙여 설명할 것 없이 바로 지금, 우리 세태를 향한 주님의 판결이라 싶어 움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은 지극히 평화롭다가도 아주 짧은 찰나에 뒤집히기 일쑤입니다. 한껏 기분이 좋다가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 마음 온도가 내려갑니다. 더해서 무시하는 듯한 말이라도 들으면 속이 뒤틀려 버립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열에 아홉이 아니라 천에 구백 구십구 명 이상이 경험했으리라 싶은데요. 이렇게 속이 상하고 울화가 치밀면 표정까지 굳어집니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자신을 높이지 말 것과 교만으로 인하여 영혼이 불손하게 되지 않도록 애쓸 것을 권고하는 이유입니다.

 

교만은 자기 능력의 한계점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오만한 마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하여 상대에게 대항하는 허영심을 키우게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려는 욕망에 시달리게 합니다. 교만에 사로잡히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자신에 대해서 무한 만족을 하는 반면에 남을 업신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추앙받는 이들의 교만이 훨씬 무섭지요.

 

 

교만은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일을 거부해

 

더욱이 자기만족에 치우친 교만한 마음에는 허영이라는 살이 붙는데요.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가스를 집어 넣어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라는 표현에 예민해지면 좋겠습니다. 허영의 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마음을 잘 추슬러 살기 바랍니다. 허영에 지배당한 마음은 마치 바람 넣은 풍선 같은 허세로 부풀려져서 재생이 어려울 지경으로 마음을 파괴시켜 버리니까요.

 

무엇보다 교만의 가장 큰 잘못은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일을 거부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하느님을 외면하게 하여 ‘온전히 자립’할 수 있다는 유혹에 휘말리도록 합니다. 그런 만큼 교만이란 상대를 포함한 나 자신에게도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합니다. 교만이 얼마나 강한 악습인지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잠시 잠깐 교만한 생각을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은 일그러집니다. 누릴 자격이 없는 명예, 품위, 특권 등을 탐욕스럽게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듯 교만은 우리를 유혹하는 ‘괴물’이인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교만으로 인해서 마음에 허영이 들어차면 참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인데요. 어차피 주님께서 주신 숨결로 살아가는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고, 뭐 그리 특별하며, 뭐 그리 엄청나겠습니까? 그럼에도 허영심은 오직 영광과 명성만을 추구하도록 하기에 다른 이들이 자신의 공로를 알아주기를 끊임없이 기대하게 합니다.  이미 끝낸 일에 대한 치하를 듣기 원하게 하고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즐기도록 만듭니다. 교만에 젖어 이웃을 경멸하고 얕잡아보며 심지어는 조롱하고 다른 단원을 의심하고 남에 대하여 불평하며 타인을 비판하는 자기 말에 동조해줄 사람만 찾는 어리석음을 살게 합니다. 마침내 분열의 요인이 되어 단체를 앓게 만드는 나쁜 바이러스 노릇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 동안 땀 흘려 노력한 수고의 열매를 잃게 할뿐입니다. 교만한 마음에 사랑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열심한 기도 또한 헛된 공염불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도 레지오 간부가 된 사실에 우쭐해진다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으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봉사를 하면 늘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면 틀림없이 교만과 허영에 사로잡힌 모습임을 말씀드리고 싶으니까요.

 

 

레지오 단원은 하느님 은총을 통한 ‘겸손의 옷’ 입어야

 

한편 스스로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아주 한심한 현상이 있는데요. 무슨 일에서나 자신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힘들게 올라간 산이라도 잘못 올랐다 싶을 때엔 내려오는 게 백번 옳습니다. 그럼에도 교만의 악습에 빠진 사람은 ‘여기가 아닌 줄……’ 알면서도 주저대며 머뭇거립니다. 결국 레지오 단원이 향해야 할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상을 잃게 할 뿐 아니라 동료 레지오 단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니, 각별히 삼가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물론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일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인정받으려는 생각이 스며들면 악습에 길을 터주는 셈이라는 걸 명심하여 조심하고 또 조심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통한 “겸손의 옷”(1베드 5,5)을 입고 지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겸손은 모든 욕망을 제거하는 덕”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덕입니다. 겸손은 주님의 “강한 손”(탈출 3,19)에 의탁하도록 해주는 은총의 접착제입니다. 자기 의지, 원의, 기호를 버리는 데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때문에 자신을 버리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합니다. 바른 마음으로 꾸준히 청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틀림없이 그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이기에 “주님께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역겨워하시니 그런 자는 결코 벌을 면하지 못합니다”(잠언 16,5)라는 말씀을 늘 되뇌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에 비추어 나의 죄를 바라보고 그것을 인식한 ‘나’야말로 바닥에 내려앉는 겸손을 살아가게 해 줍니다. “아! 나는 죄인이구나”, “죄를 지었구나”, “하느님 뵐 면목이 없구나”라는 낮은 마음이 참회한 신앙인의 마음입니다. 겸손을 살게 되는 열쇠입니다. 결단코 악의 편이 되지 않도록 자신 안에서 교만의 씨앗을 깡그리 뽑아낼 때에, 교만으로 인한 갖은 이기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복음 정신으로 무장되어 모름지기 하느님의 편이 될 것입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기도로 글을 맺으며 마음을 모아 주시길 청합니다.

 

“저희를 선으로 창조하신 주님!

주님의 뜻대로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엉뚱하고 헛된 것에 마음을 뺏깁니다.

때문에 원망하고 한탄하는 어리석음을 살아갑니다.

제 마음에서 자라난 교만의 뿌리는 뽑아 내지 않고,

당신의 선물만 고대하는 뻔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 손수, 제 마음을 청소해 주십시오.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치워주십시오.

이제는 당신이 심어주신 것만 꽃피워 열매 맺는 축복을 살게 해 주십시오.

늘 저희 레지오 단원들에게 지혜를 선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5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1,22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