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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친구란 참 소중한 것, 내 친구 정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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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8 ㅣ No.1067

[영화 속 신앙 찾기] 친구란 참 소중한 것, 내 친구 정일우

 

 

어떤 만남은 일생을 관통하기도 한다. 만나던 당시에는 대개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리고 스스로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뒤에야, 그것도 간혹 드물게 깨닫는 일인 듯하다. 그 만남이 자신의 팔자를 바꾼 것임을, 끝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거의 그럴 것 같다.

 

운이 좋게도 최근에 어떤 만남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기회가 있었다. 김동원 감독이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를 본 뒤였다.

 

딱 한 번, 정 신부님을 뵙고 말씀을 들었다. 푸른 눈의 사제가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너무나 편안하게 걸치고 나타나던 순간, 그 또렷하던 발음과 이전에는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했던 놀라운 말들을 듣던 그 저녁을 기억한다.

 

“희망은 오직 가난뱅이에게만 있습니다. 가난뱅이가 교회와 이 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너무나 강렬해서 되레 당장 잊고 싶었다. 감당하기 힘든, 내 좁은 그릇이 깨져 나가거나 터지기 전에는 안고 갈 수 없는 말씀임을 듣는 즉시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잊은 듯이 살았다. 그 말씀들을 듣던 밤을 이후에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정일우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한 시절

 

책 「정일우 이야기」에는 이 괴짜 사제를 이렇게 표현한다. “온 동네를 잔칫날로 만들었던 개구쟁이,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랑을 나누었던 파란 눈의 신부, 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신뢰했던 종교인,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사회 운동가, ‘복음자리’ 딸기 잼으로 철거민들을 지원했던 민중의 벗, 평생을 빈민, 부랑아, 걸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판자촌의 예수’, 그리고 ‘진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이웃.”

 

영화의 주인공 정일우 신부는 미국 출신으로 1960년 서강대학교 교수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 젊은 외국인 철학 교수는 이후 사제가 되었다. 교수이자 신부로 생활하다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회의감을 극복하려고 서울 청계천에서 시작해 상계동으로 이어진 빈민 운동에 투신했다. 그렇게 ‘동네 외국인 신부님’이 된 뒤 유신 체제를 반대하다 잡혀간 학생들을 위해 단식 투쟁도 벌였다. 1998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뒤에는 충북 괴산에 터를 잡고 농촌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어느 결에 한국 사람이 되었다. 진짜배기 한국 사람 말이다.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친구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지, 순간마다 더 재미있고 더 웃으며 노는 듯이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었다. 영화 ‘내 친구 정일우’의 네 명의 해설자 중 하나로도 등장하는 김동원 감독은, 이 맛에 깊이 감화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철거민들의 모습을 ‘하루만’(1986년 10월 정 신부로부터 상계동 강제 철거 ‘증거 확보’를 위한 촬영을 하루 부탁받고) 카메라에 담기로 했던 청년 영화인은, 상계동에서 3년을 살았다. 그리고 영화 ‘상계동 올림픽’을 만들었고, 정일우 신부를 만나 팔자가 바뀐 사람답게 이 영화도 만들었다.

 

 

네 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정 신부의 나날

 

영화에는 예수회 한국관구 전주희 수사, 평생의 짝이었던 고 제정구 의원의 부인 신명자 씨( ‘복음자리’ 이사장), 괴산에서 함께 농사를 지었던 김의열 농부 등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해 저마다 ‘내 친구 정일우’에 대한 일종의 편지를 낭독한다.

 

영화는 정일우 신부의 나날을 쉽고 재미나게 알려 준다. 네 명의 해설자가 네 가지의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의 방식이 좋았다. 어쩌면 본질은 늘 똑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살았지만, 시기별로 투신의 양상이 조금씩 달랐던 정 신부의 삶을 들여다보기에도 친절한 방식이었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한국 사회의 현안이 그때그때 달라졌음을 정 신부의 삶이 온몸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선명히 보인다. 그가 들어가 몸을 눕히고 산 곳이, 그가 껴안고 함께 산 사람들이, 당시 사회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지켜야 할 ‘씨앗’ 같은 이들이었음을 말이다. 씨앗 같은 사람들이 더는 짓밟히고 빼앗기며 내몰리지 않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곁을 지킨 삶이었다.

 

또 놀라운 것은 그때그때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내 정처를 옮겼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이 들고 좋아도, 때가 되면 떠났다. 그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이 격동의 한국 사회가 당시 가장 깊이 파묻으려 했던, 가장 그늘진 곳의 미약한 나무들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도끼질 한 번이면 찍혀 넘어가 버릴 것 같은 곳에서, 그 마지막 도끼질을 막으려고 몸을 던지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때 지켜 낸 싹들이 어느덧 무성한 숲을 이루기도 했고,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시들어 버린 것도 있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도끼질만은 막아야 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도처에 가득하다. 세상은 점점 이런 존재들을 묻으려 한다. 아무도 외롭지 않고 가난하지 않으며 슬프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더 ‘나아진’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가난뱅이만이 희망이라고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생각했다. 나는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는’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맴돈 것은 아닐까? 거기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가난은, 과연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가? 한국 사회의 가난이라는 것은, 자꾸만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마을은 사라졌다. 아니 건물과 건물들 틈으로 위태롭게 발을 걸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숨어 버렸다. 가난은 상존하지만,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다들 말하기를 꺼린다.

 

상계동 사람들도 어느 때인가부터 모임 자체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날은 아예 싹 다 잊고 싶다고 한다. 그저 숨기고 있는 게 그나마 덜 상처받는 방법임을 알아 버렸기 때문일까?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힘이 나고 위안이 된다. 정일우 신부는 우리에게 소중한 희망을 전했다. 친구가 되어주는 법에 대하여, 타인의 이야기를 ‘발가락으로 듣는’ 깊은 몰입에서 오는 깊은 사랑, 그리고 할 만큼 하고 나면 떠난다는 신념, 영구히 거기에 뿌리박겠다는 자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날마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랑법 말이다.

 

그게 인간은 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우리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신 셈이다. 놀고 먹고 마시고 웃으면서! 그렇게 같이 사는 게 최선이며 더 좋은 다른 길은 없음을 말이다. 영화 말미에서 정 신부는 꿈꾸는 소년 같은 얼굴로 이야기한다. “살아오면서 아름다운 사람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아름다운 사람만 만났어요.”

 

정일우 신부님이 2014년 6월 2일 선종하셨을 때, 그 전에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오래 투병 중이실 때도 많이 안타까웠다. 간간이 매체를 통해 근황을 접하면 여러 생각이 오가곤 했다. 그래도 그분이 나와 무언가로 연결된 분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많이 당황스러웠다.

 

어딘가에 정을 붙이기도 어렵지만, 그 인연과 정을 이어 가기도 힘든 세상에서 신부님은 일생토록 누군가의 ‘친구’이고자 하셨다. ‘나한테 와서 기대라.’고 말하는 듯 변함없는 그 눈빛과 태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로받았을까?

 

강물처럼 돌고 돌아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철모르던 시절에는 잘 몰랐다. 그래도 어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고비마다 그 ‘마주침’들이 나를 잡아 준 끈이었음을 이제는 믿는다. 그래서 굉장히 잘 쓰고 싶어 욕심 부리다 결국 탈이 났던 이번 원고를, 마음을 비우고 모자란 대로 채우기로 하고서야 겨우 이어 나간 이 글을, 다만 이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 곁에 와서 친구가 되어 준 모든 인연들, 그간 읽어 주신 모든 독자 분들 참 고맙습니다.”

 

* 한 해 동안 ‘영화 속 신앙 찾기’를 써 주신 김혜원 님과 이대현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김혜원 로사 - 문화 평론가. 극예술을 통한 세상 읽기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2월호, 김혜원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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