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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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가톨릭상장례지도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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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25 ㅣ No.92

[배움터를 찾아]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가톨릭상장례지도사교육원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봉사 중의 봉사’

 

 

상장례(喪葬禮),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의례를 말한다. ‘흙에서 온 인간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거룩한 예식’인 그리스도인의 장례 예식은 가톨릭 정신이 담긴 상장례 절차를 따라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이가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다.

 

 

죽음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 입구에 적힌 라틴어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글귀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이해야 하는 과정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께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교회는 위령회(연령회)봉사자들이 가톨릭 정신이 담긴 상장례 절차에 따라 마지막길을 배웅할 것을 장려한다.

 

“자모신 교회는 장례 예식으로 죽은 이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릴 뿐 아니라 자녀들의 희망을 북돋아 주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천명해 오고 있다”(경신성사성의 교령).

 

그리스도교 장례식의 참된 의미는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경축하며,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세례로 한 몸이 된 신자들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로 옮아가게 하는 것이다( 「장례 예식」, 1항 참조). 곧 그리스도인의 부활 신앙은 “죽음은 그

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 제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의 문”이 되었음을 고백한다(이한택 주교, 2005년 위령 성월 교서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에로’ 참조).

 

 

가톨릭상장례지도사교육원의 염습 실습

 

“경건하게 시작합시다.”

 

지난 9월 24일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내 가톨릭상장례지도사교육원(이하 교육원)을 찾았다. 올 3월부터 시작한 6기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 과정의 수강생들이 염습 실습을 하는 날이다. 300시간을 수강해야 시험 없이 국가 공인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교육은 한 달에 2주, 토요일과 주일에 하루 여덟 시간씩 강의와 실습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강의는 광주가톨릭상장례봉사자회 회장인 이만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씨가 맡았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시간을 두고 충분히 익히도록 합시다.” 실습에 앞서 염습의 기초와 순서 등을 빔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다. 이어지는 실습은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남녀 마네킹을 이용해 수시(시신을 바르게 하는 일)부터 염습과 입관까지 시연을 반복하며 익힌다. 시연 과정에는 지난해 과정을 마친 5기 선배들이 도우미로 함께했다.

 

수강생들은 한지를 접어 매를 만들고, 등 싸개와 가슴 싸개, 턱받침과 베개 등을 차례로 준비했다. 염습은 주, 부로 나눈 두 사람이 대부분 진행하지만 머리와 발을 잡아 주는 이도 호흡을 잘 맞춰야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염습이 된다. 시연 과정마다 꼼꼼하게 메모하거나 촬영을 하는 수험생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주와 부의 손은 가운데를 넘으면 안 된다.”는 등 주의 사항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과 고귀한 주검을 대하는 태도’이다.

 

 

고인들의 마무리와 유족을 위로하는 상장례 지도사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상장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예식을 발전시켜 왔다. 전통적인 효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부활 사상을 전례 안에서 토착화해 오면서 이 땅의 상제례 문화의 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가톨릭 상장례는 한국 교회의 큰 자랑이자 자산이다.

 

위령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기도, 연도와 봉사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복음을 전하는 데 둘도 없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그 소명을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들이 한다.

 

지도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뒤 장례 상담부터 염습과 입관 등의 시신 관리, 장례 진행과 행정 관리, 조문객의 접대와 유족들에 대한 위로까지, 말 그대로 장례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사람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여러 교구에서 가톨릭 상장례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교회 정신에 맞는 지도사를 양성해 왔고, 2009년 문을 연 광주 교육원도 160시간의 교육을 통해 200여 명의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를 양성했다.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에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 규칙을 공포하면서 민간단체들이 발급하던 자격증을 국가 공인 제도로 바꿀 때는 유예 기간 동안 50시간의 추가 교육을 실시해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국가 공인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교육원의 발 빠른 움직임 덕분에 132명이 국가 자격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칫 일반 장례 지도사가 신자들의 장례 절차를 주관할 수도 있어 200년을 이어 온 아름다운 가톨릭 상장례 전통이 위기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국가 자격증 소지자 외에는 시신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6기 1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는 요즘은 30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교육원의 교육 내용은 장례 상담 절차와 유족 상담, 장사 관련 법규, 관리실과 장비의 위생 관리, 수시와 염습, 발인과 운구 등 장례의 시작부터 마침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다. 이런 의무 교육 외에도 가톨릭 상장례의 역사와 영성, 가톨릭 전례의 특성, 교회법 등의 내용이 추가된다.

 

교육원 과정을 마친 이들은 2014년부터 가톨릭상장례봉사자회를 만들어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때 팽목항에서도 봉사를 했는데 지도사들로 구성된 회원 10여 명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만실 씨는 그때를 이렇게 전했다. “끝까지 남아 있었던 건 ‘만일 이 자리에 주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니 그냥 철수할 수가 없었어요.”

 

 

죽음을 대하면서 삶이 더 소중해졌다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의 죽음을 많이 봐요. 제가 모셨던 분들을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상장례 지도사 교육을 받게 되었죠”(5기 조명순 클라라 씨).

 

“어르신들이 많은 농촌에 살아요. 외지고 소외된 곳이잖아요. 가장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하고 도움도 줄 수 있을 것 같아 배우게 되었죠”(성삼의 딸들 수녀회 김 아밀라 수녀).

 

이들처럼 교육원에는 각 본당의 위령회(연령회, 선종봉사회 등)회원은 물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공소 선교사들도 지도사 교육을 받으러 온다. 비신자나 이웃 종교 신자도 있고 멀리서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도 있다.

 

“5년 차 연령 회원으로 봉사하면서 하느님을 믿지 않던 이들이 믿게 되고 냉담교우들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걸 많이 봤어요. 이게 바로 자연스러운 선교라 생각해요. 또 죽음을 실제로 지켜보고 교육을 받으면서 더 낮은 자세로 고인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강부연 율리아나 씨(광주 봉선2동본당)는 죽음을 대면하면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신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오늘 살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힘들어도 내가 더 다가가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니 미운 사람이 없어요.”

 

 

진자리를 선택한 가톨릭 상장례 봉사자들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는 게 봉사겠지만, 상장례 봉사자들은 그중에서도 진자리를 선택한 이들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이들의 봉사를 ‘봉사 중의 봉사’라고 하지 않던가?

 

“불에 타 죽은 이, 교통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거나 부서진 뼈가 튀어나온 이 등 험한 상황을 많이 봐요. 주검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심리적인 거부감도 있고요.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죽음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느끼는 보람과 감사, 은총 등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힘이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해마다 20-30차례 장례 봉사를 나간다는 이만실 회장은 시신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이 다시 하느님께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상조회가 난립하면서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꾸미려는 이질적 장례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요. 상조회에서 먼저 도착하면 가톨릭 예식과 부딪쳐 장례가 힘들어져요. 가톨릭 정신에 따른 장례 예식이 되려면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들이 그 일을 맡아야 해요. 교우가 돌아가시면 상장례 봉사자는 30분 안으로 도착하라고 강조해요. 상주도 그 어디보다 먼저 본당에 연락을 해 줘야 하고요.”

 

많은 쉬는 교우가 상가 봉사와 연도 봉헌을 받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며,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아름다운 전례와 기도 그리고 봉사에 감화되어 교회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때 상장례 봉사자들의 보람은 크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장례 지도사라고 하고 우리 교회에서는 상장례 지도사라고 부르지만 저희는 상장례 봉사자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한생을 살고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교우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회원들에게 강조하는 건 기술자처럼 잘하는 것보다 고인에게 정성을 다해 달라는 거예요. 그게 죽음을 대하는 상장례 봉사자들의 자세여야 하고요.”

 

11월, 이 위령 성월에 삶과 죽음을 묵상해 본다. 생명이며 부활이신 그리스도는 찾아가 만나주시는 분이셨다. 상실감으로 어둠이 드리워진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에 부활의 빛을 비추시며 그 안에 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게 하셨다. ‘찾아가 함께하는 교회’를 실현하고자 부활 신앙을 드러내는 교회의 아름다운 전례의 의미를 되새기고 죽음에 그늘진 모든 이에게 찾아가 봉사하는 가톨릭 상장례 봉사자들에게서 봉사의 참의미를 배운다.

 

“고인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갈 수 있기를, 고인을 떠나보낸 남은 가족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슬프기를 바랍니다.” 교육원에서 만난 상장례 봉사자들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기를….

 

문의 : ☎ 062-380-2210 가톨릭상장례지도사교육원

 

[경향잡지, 2017년 11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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