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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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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11 ㅣ No.1017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공간

 

 

나에게 어릴 적 가장 가고 싶었던 공간은 성당과 영화관이었 다. 두 공간이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일상을 벗어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그려진 커다란 영화 간판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시작은 기대감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영화관은 내가 살아가는 일상과 공간이 카메라와 배우들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 다가오는 공간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혹은 어느 장소에서든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해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직도 영화관에 찾아가는 수고를 하는 이유는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공간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고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자체가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기보다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여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다양한 영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영화관은 없어질 것이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영화관은 우리들 일상 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 역시 일상을 벗어난 공간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시절에 성당은 영화관처럼 종합예술공간이었다. 미술관이었고 콘서트홀이었다. 스토리가 담긴 아름다운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일상의 빛을 천상의 색깔로 변화시켜 인간의 영혼에 와 닿았다. 성가대의 노래와 악기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평소에는 침묵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 일상의 소리를 천상의 음악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성경의 말씀은 하느님과 인간들이 함께 빚어내는 멋진 스토리텔링이었다. 미사를 드리는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평범한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신자들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배우였다.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일상으로부터 도피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 일상 안에 숨겨진 놀라운 하느님 손길의 의미를 발견했으며 그들의 일상이 영원과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창조(Creation)는 단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적 공간(Space)을 통해 인간들을 계속해서 창조(Recreation)해 나가셨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을 그 녹록지 않음으로 인해 즐기기보다는 버텨내야 하는 시간으로 느낄 때가 많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고 연달아 밀려 있는 프로젝트들을 계속 치러내야 하다보면 그 일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삶은 물론 나 자신을 돌볼 여유를 가질 수 없다. 텔레비전에서는 힐링을 주제로 한 온갖 프로그램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힐링이 된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자체가 공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흙탕물을 다시 맑은 물로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깨끗한 물을 붓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빨리 맑은 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많은 깨끗한 물을 더한다 해도 오히려 시간만 더 길어질 뿐이다. 흙이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시간의 여백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는 ‘꿈’(우리말의 ‘꿈’과 라틴어에서 ‘함께’라는 의미의 CUM)이라는 책을 만든다. 함께 작업하는 작가님이 책 제작을 의뢰해오는 분들을 설득시키기 힘들 때가 여백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책에 들어가는 내용과 내용 사이에 반드시 여백의 공간이 들어가야 읽는 사람들이 답답해하지 않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책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는 분들은 그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왜 이 곳을 비워 놓느냐?”며 하나라도 더 채워 넣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비어있는 공간의 중요성과 의미를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다.

 

음악이란 음표와 음표 사이의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쉼표가 있어야 아름답고 창조적인 음악이 될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더운 여름철에는 심각한 주제의 영화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많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나치게 액션만 계속되면 재미와 카타르시스보다는 오히려 피로감을 더할뿐이다.

 

우리에게는 여백의 공간(Space)이 필요하다.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하루를 하느님께서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찍으셨다. 그 쉼표는 당신이 이 세상의 창조를 끝낸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계속 창조를 이어 가시겠다는 표시이며 당신을 닮아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일러주시는 것이다. 일 년의 절반이 지나고 새로운 절반 앞에 서 있는 우리, 새로운 창조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할 때이다.

 

[월간빛, 2017년 7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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