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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 (8) 기도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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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2 ㅣ No.959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 (8) 기도와 일


기도와 노동, 그리스도인 성화 위해 뛰는 두 개의 심장

 

 

콜베 신부는 니에포칼라누프(성모의 마을)의 수사들이 성 프란치스코가 만든 회칙을 준수하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곳에는 그 밖의 다른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과는 원칙대로 충실히 지켜졌다. 프란치스코 회칙에서 말하는 일상의 규정은 크게 ‘기도와 일’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지며, 따라서 니에포칼라누프에는 항상 기도의 고요와 노동의 소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콜베 신부는 기도가 내적 성화뿐 아니라 내적 활동에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사도직의 성패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콜베 신부가 작업하는 모습.

 

 

사도적 삶의 원동력 기도

 

콜베 신부는 ‘기도’라는 주제에 대하여 신학적인 정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과 가르침 등을 종합해 보면, 기도야말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인도자이며 모든 사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세상의 온갖 유혹과 장애를 넘어서 그분과 대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은 거기에 응답하게 된다. 기도는 이처럼 신앙의 여정 안에서 직접적이고 일상적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랑의 대화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의 대화를 통해 인간에게 당신의 뜻과 사랑의 계획을 알려주시며, 거기에 대한 순종을 요청하신다. 이에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이는 언제라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릴 수 있다. 

 

따라서 콜베 신부의 기도는 기본적으로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다. 콜베 신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청원의 기도는 어떤 은총으로도 되돌아오지 않으며 오로지 늘 감사와 찬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치는 봉헌의 기도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덕행을 낳고 사랑을 강화하는 기도는 인간의 내적 성화의 여정인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사도적 삶의 여정,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해 자기 자신을 봉헌하기 위한 초석이 되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치료제’가 되어준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삶을 살도록 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바로 그 은총을 우리가 얻을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도움 아래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준비와 믿음과 가치를 하느님 앞에 드러내 보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진리와 사랑과 희망에 다시금 일치합니다.”

 

특히 기도로 자기 자신을 바치는 봉헌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통할 때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콜베 신부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항상 그 곁에 머물러 계시는 성모님을 관상하는 가운데에, 성모님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최상의 모범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는 먼저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일치를 이룬 후,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과 가장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을 기도의 최종 목표로 삼는다.

 

 

노동, 성화로 가는 수단

 

콜베 신부는 기도가 내적 성화뿐만 아니라 외적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사도직의 성패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니에포칼라누프에서 하는 모든 사업들, 예를 들어 좋은 설교나 단체의 설립 또는 금전적인 수익 등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은총에 도달하는 방법은 오로지 기도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외적 활동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이며, 우리의 내적 삶, 기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 기도 없는 좋은 설교나 활동은 어떤 열매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중요한 일이 당면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도에 우선할 수 없다. 진정한 성공은 열심히 하는 노동이나 인간적인 능력, 풍부한 자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들이 아무리 넉넉하게 충족되어 있더라도 기도의 부족으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유대가 약해진다면, 결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수사 소방대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콜베 신부.

 

 

따라서 니에포칼라누프의 모든 노동은 기도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며, 특히 하느님과 성모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할 때, 그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가 된다. “노동 역시 성화로 가는 수단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원칙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니에포칼라누프의 삶의 세부 규칙들이 작성됩니다. 모든 종류의 노동은 구원에 이바지합니다. 특히 순종 아래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더욱 그러합니다. … 믿음을 가지고 단 1분도 허비하지 말며 일을 닥치는 대로 하지 말고 오로지 선을 추구하시오.”

 

콜베 신부는 기도와 노동을 거의 동등한 가치로 바라보았다. 모든 인간은 영혼과 육신의 결합체인 만큼 기도와 노동이 따로 분리되지 않으며, 어느 쪽이든 순수하게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할 때에만 그 가치를 가진다. 기도를 통해 노동은 하느님과 성모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되며, 노동을 통해 기도가 관념적이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을 모두 바치는 궁극적 봉헌이 된다. 결국, 기도와 노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며 성화에 이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영혼이 성모님께 닿을 수 있도록 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모님께서 모두를 지배하게 되셨을 때 비로소 모든 인간 존재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11일, 최문기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유대철 베드로 수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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