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미사

[사순부활] 성삼일과 대영광송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7 ㅣ No.1624

[전례생활] 성삼일과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하느님의 삼위를 찬양하는 찬미가이다. 대영광송에 관하여 증언하는 믿을 수 있는 기록은 4세기 중반부터 나타나는데, 적어도 4세기 말에는 대영광송이 성탄 밤 미사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가장 성대한 미사인 부활 성야 미사에도 대영광송을 노래했을 것이고, 6세기에는 심마코 교황이 모든 주일 미사와 순교자 축일에 대영광송을 노래하도록 확장하였다. 교회의 오랜 전례 전통에서 대영광송은 대단히 경사로운 날에만 노래하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노래하지 않았다. ‘슬픈 대영광송’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의 대영광송을 슬픈 노래로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제가 선창하면 종과 오르간으로 요란하게 소리 내고 뚝 그친 다음에는 무반주로 ‘슬프게’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올바로 접근하려면, 먼저 성삼일이 무엇인지부터 올바로 인식한 뒤에 대영광송에 관한 예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논제와 관련하여 따로 작성한 글은 다음과 같다. ‘성삼일 전례’(「신앙과 삶」, 제12호, 153-193면), ‘한국 천주교회 성음악 분야에서 올바로 정리되어야 할 몇 가지 논제들’(「신앙과 삶」, 제25호, 186-193면), ‘전례 활성화의 원리’(「신앙과 삶」, 제29호, 184-193면).

 

 

성삼일과 그 준비 시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무덤에 묻혀 계시며 저승으로 가심을 기념하는 성토요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의 삼일을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하며 이는 전례주년 전체의 절정이다(‘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이하 ‘전례주년’], 18-21항 참조).

 

주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사도 시대부터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되었으며(1코린 15,3-4 참조), 교부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경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성삼일 전례는 3세기 무렵부터 거행되었는데, 교회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따로 분리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단일한 축제로 기념한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가 파스카 사건의 본질이므로 이 축제의 총체적인 성격은 슬픔이 아니라 충만한 기쁨으로 드러난다.

 

한편, 주일과 대축일은 그 전날 저녁부터 시작되며(‘전례주년’, 3항 참조), 성대한 대축일에는 전야 미사를 거행하는데(‘전례주년’, 11항 참조), 성삼일의 전야 미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성목요일 저녁에 거행하는 주님 만찬 미사이다(‘전례주년’, 19항 참조).

 

이 미사는 주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심을 기념하는데, 이를 통해 파스카 사건 전체를 예식의 차원에서 거행하며, 다가온 파스카 승리의 기쁨을 미리 알리는 전야제의 구실을 한다.

 

특히 이 미사 중에 부활 성야의 대영광송을 미리 부름으로써 임박한 파스카의 기쁨을 미리 선포한다. 그러므로 주님 만찬 미사의 대영광송은 부활 성야의 대영광송과 동일한, 지극히 성대하고 기쁜 노래이다.

 

4세기에는 전례주년의 절정인 ‘성삼일을 합당하게 준비하기 위하여’(‘전례주년’, 27항) 사순 제1주일부터 성목요일까지의 40일이 사순시기로 제정된다.

 

 

일탈과 복원

 

시대가 흐르면서 사순시기를 더욱 앞당겨 시작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7세기에는 재의 수요일이 시작일로 고정되어 사순시기는 44일의 기간이 되었다. 이후 참회하는 신자들의 맹목적인 열심으로 말미암아 사순시기의 시작일을 경쟁적으로 앞당기는 현상이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재의 수요일만을 사순시기의 시작일로 받아들였다(‘전례주년’, 28항).

 

한편, 6세기부터 - 오늘날 전례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 몇 가지 이유로 부활 성야 미사를 앞당겨 거행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7세기에는 성토요일 오후 2시에 거행하였고, 9세기에는 오후 1시에 거행하였으며, 12세기에는 오전 11시에 거행하였다. 16세기에 비오 5세 교황은 성토요일 정오가 되기 전에 이 미사를 마쳐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7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부활 성야 미사는 부활 주일의 미사가 아니라 성토요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부활 주일에는 따로 미사를 거행하였다. 또한 성삼일을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3일로 알아듣게 되었으며, 성삼일 전체가 사순시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결국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은 완전히 별개의 축제일로 분리되었으며, 사순시기는 성삼일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라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로 이해되었고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하여 성토요일에 끝나는 46일의 기간이 되었다.

 

이런 일탈의 과정에서 성삼일이 담고 있던 파스카 신학마저 혼란스러워졌다. 부활 대축일과 분리된 채 사순시기에 속해버린 성삼일은 마치 주님께서 수난하심만을 기념하는 듯했고, 주님께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따로 존재하는 사건으로 비쳤다. 성삼일 전체를 예식의 차원에서 조명하던 주님 만찬 미사의 성격도 수난의 슬픔만을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이날 노래하는 대영광송의 신원 또한 올바로 파악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니, 우리나라에서 ‘슬픈 대영광송’이니 ‘수난의 대영광송’이니 하는 이상한 표현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성삼일과 부활 대축일 중에 어느 것이 더 큰 축제일인가?’라는 잘못된 물음도 나오게 되었다.

 

1800년대 이후 전례학 발전의 도움으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왜곡된 전례의 본질이 밝혀졌다. 그 결과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전례 운동으로 이어졌고, 비오 12세 교황은 1947년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를 발표하면서 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1951년 이후로 여러 차례 문헌을 발표하여 성주간과 부활 성야 미사의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그 온전한 마무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후 반포된 전례서들을 통하여 성삼일은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의 3일이다.

 

교회는 부활 성야 미사는 부활 주일의 미사이며(「로마 미사경본」, 부활 성야 미사 예규 4항), 사순시기는 성삼일을 준비하는 시기임을 올바르게 천명하였다. 그에 따라 성목요일 저녁의 주님 만찬 미사 또한 다가온 파스카 승리의 기쁨을 미리 알리는 축제의 성격을 올바로 드러내게 되었다.

 

 

주님 만찬 미사의 대영광송 노래 방법

 

주님 만찬 미사의 대영광송은 부활 성야 미사의 대영광송을 미리 부름으로써 다가온 파스카 승리의 기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영광송은 부활 성야 미사의 대영광송을 부르는 방식과 동일하게 노래하는데,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동안 성당 종탑의 종을 울려 부활의 기쁨을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다만, 주님께서 죽으심과 묻히심을 기념하는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전통적으로 종과 악기의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이러한 금지가 시작되는 시점은 주님 만찬 미사의 대영광송을 모두 부르고 난 직후이다(「로마 미사경본」, 주님 만찬 미사 예규 7항). 그러므로 사제의 선창 직후에 종과 악기로 소리를 내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대영광송은 ‘무반주로 노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밖에 알아둘 것들

 

악기 사용이 금지된 기간에 본당에서는 무반주로 성가를 노래하기가 힘들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고충을 헤아려 악기 사용이 금지된 시기라 하더라도 신자들의 노래를 도울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로마 미사경본」, 주님 만찬 미사 예규 7항).

 

한편,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금요일과 성토요일 양일간에 주님 수난 예식에 참여한 이들이 하는 영성체와 노자성체 외의 모든 성사를 금지해 왔다. 그러나 2002년에 반포된 「로마 미사경본」 제3표준판 이후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는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을 막론하고 언제라도 집전할 수 있도록 예규가 변경되었다(「로마 미사경본」, 주님 수난 성금요일 예규 1-2항; 성토요일 예규 3항).

 

그 이유는, 안식일에 관해 주님께서 가르치심을 되새겨보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과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신호철 비오]



6,13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