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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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선교사 에델 퀸(Edel Qu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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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seongill] 쪽지 캡슐

2015-07-11 ㅣ No.299

[세상 속에서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들]

오래 전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신부가 한 젊은 여성을 차에 태우고 교인들의 모임에 가고 있었다. 그들은 도중에 강을 건너야 했다. 전날 쏟아진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다리가 잠겨 보이지 않았다. 신부는 차를 되돌리려 했으나 옆에 앉은 여성이 조용히 말했다. “성모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망설이던 신부는 물속으로 운전을 시도했다. 엔진에 물이 찬 자동차는 강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졌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놀랍게도 자동차는 다시 움직였다. 무사히 강을 건너 일행은 회합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 여성은 에델 퀸(Edel Quinn), 아일랜드에서 파견된 젊은 선교사였다. 이 일화는 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에델 퀸은 1907년 아일랜드의 코크에서 태어났다. 총명하고 예민한 에델은 동정심이 강한 아이였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방도시를 다니며 자라났고 영국에서 학교를 마친 다음 비서로 일하며 회사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이 깊었던 에델은 청년 사업가의 청혼마저 물리치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지만 폐결핵이 발병하는 바람에 요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결핵은 난치병에 속했다. 스무살 나던 해 에델은 더블린에서 평신도 사도직인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시작하여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이때 에델의 깊은 신심을 알아 본 레지오 마리애 창시자인 평신도 프랭크 더프는 해외 선교사직을 권유했다. 29세 되던 해 에델은 아프리카로 파송되었다.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병마와 싸우며 에델은 아프리카 구석구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잠시도 쉬지 않았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부터 탄자니아, 우간다, 말라위, 심지어 인도양의 모리셔스까지 선교범위는 확대되었다. 에델의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수백 개의 레지오 자립지부 (쁘레시디움)가 생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품에 안겼다. 건강이 악화되면 요양원에 입원했다가 병세가 조금만 나아지면 곧장 선교지로 달려갈 만큼 에델의 활동은 초인적이고 헌신적이었다.

그녀의 선교활동은 단순히 가톨릭 신앙의 전파만이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정신을 함께 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에델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영성에 감화를 받아 자발적으로 주변에 이 기쁨의 정신을 전하는 사도로 나섰기 때문이다. 에델은 1944년 나이로비에서 36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 후 아프리카 주교들이 그녀의 시복을 청원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에델을 가경자로 선포하여 현재 시복절차가 진행 중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지구 곳곳에 전하고자 기꺼이 나서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에델은 훌륭한 본보기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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